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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용기와 시
기간| 2019.11.26 - 2019.12.22
시간| 11:00 - 18:00
장소| 원앤제이갤러리(ONE AND J. GALLERY)/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가회동 130-1
휴관| 월요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45-1644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컨셉/안무:황수현 참여작가:김소철,이윤이,장서영,한진,황수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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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용기와 시> 포스터


  • 가든 프로젝트 1F_B1
    작품 중 일부

  • Wetland, Greencard, Trio_Yi Yunyi
    작품 중 일부

  • A.A. 12단계_이윤이
    작품 중 일부
  • 			원앤제이 갤러리에서는 오는 년 월 일부터 월 일까지 그룹전 용기와 시 2019 11 26 12 22 < >
    를 개최한다 김소철 이윤이 장서영 한진 작가가 참여하며 황수현 안무가의 퍼포먼스가 전시 마 
    지막 주에 4일간 진행될 예정이다.
    전시 <용기와 시>는 프랑스 철학자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Georges Didi-huberman이 자신의 책 『반딧불의 잔존 이미지의 정치학』 에서 인용한 이탈리아 철학자 아감벤 Giorgio Agamben의 문구로부터 시작된다. 위베르만은 이 책에서 아감벤의「동시대인이란 무엇인가 」라는 에세이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동시대인의 임무로 '용기-정치의 덕 -와 시'를 손꼽는다. 그의 해석에 의하면 동시대인은 시대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으며 시대를 바로 볼 수 있는, '도달할 수 없는 빛'을 지각하려는 용기를 가진 자이며, '언어를 부러뜨리고, 외관을 부수고, 시간의 통일성을 분산시키는 기예'로서의 시를 쓸 수 있는 자이다. 
    전시는 이러한 '동시대인의 임무'를 예술가의 임무로 변역하고 '도달할 수 없는 빛'을 아직 호명되지 않은 '고통 - 소수성 - 부조화'로 해석한다. 또한 작품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 이 고통들이 전시라는 것을 통해 발행되어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그로인해 아직 드러나지 않은 소수성들의 정치적 단위로의 진입을 상상한다. 
    
    김소철은 아르코미술관 담벼락을 허물거나 담배를 직접 키우고 만드는 워크숍을 진행하는 등 관객참여와 같은 미술 형식으로 사회문화를 비판하고 개입하며 시민사회 영역과 즐거움의 운동(conviviality)을 주로 다뤄왔다. 현재는 독립출판물을 비롯한 사회적 활동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매체들을 수집하며 그것들이 이용자들에게 텍스트로서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가벽을 활용해 공간을 구획하고 전시 관람의 경험에 개입한다. 영국의 스토우 가든과 건축가 라베스킨트에게 영감을 받은 이 가벽들은 자연의 환경에서 길을 헤매며 우연히 작품들을 발견할 수 있도록 관객을 유도한다. 또한 다양하게 꼬인 복도, 예리하게 꺽이는 벽과 갑작스레 맞닥뜨리는 공간들은 작업에서 나타나는 행위가 관객에게 변화를 요청하는, 위협적인 것으로 연출되었다. 
    
    이윤이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비서사적인 행동과 말을 수집하며 영상과 사진,설치 작업 들을 선보여왔다. 사적인 사건들로부터 발생하는 감정과 언어, 행동들이 작품 안에서 시화 (詩化)될 때 그것들은 일상적이고 진부한 언어에서 정치적 언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통로로서의 언어로 변모한다. 전시에서 소개되는 영상 <습지, 영주권, 트리오>은 함께 유학생활을 하던 남자친구가 영주권 문제로 갑자기 한국으로 떠나야하는 상황을 묘사한다. 남자친구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은 가벼운 사건일 수 있지만 영상 속 화자에게는 삶의 모든 형태들이 뒤바뀌고 분절되어 버리는 재난이 되어버린다. 또한 작가는 영주권을 받기 위해 오랫동안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실제 거주자의 목소리를 빌려 국가제도가 실제의 삶과 부조화 될 때 불안함으로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개인의 모습을 그려낸다. 
    
    스스로의 질병 연대기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장서영은 병명을 알 수 없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설명할 수도 없는 고통과 이질감 등을 통해 존재의 어것남과 어두움을 드러낸다. 병이 낫지 않고 불안과 고통이 끝없이 이어지는 작가의 상태, 보여지지 않음으로 인해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이 해결되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가야하는 상태들은 드러나지 않는 존재들, 스스로의 안식과 세상의 인식의 차이와 갈등 속에서 늘 두려움과 이질감을 느끼며 살아야하는 주변인들에 대한 비유로서 등장하기도 한다. 개인 질병의 연대기는 이로서 보이지 않는 고통들을 대변하고 그 삶들에 대한 사유를 제안한다. 
    
    한진은 중첩되거나 어지럽혀진 시간들 안에서 명료하게 몸(기억)에 남은 풍경들은 회화 또는 드로잉으로 재현한다. 그것들은 작가의 기억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의 어느 선상에서 어딘가에 존재하는 것들이며 그렇기 때문에 작가는 자신의 그림이 '재현'이며 분명한 대상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그것을 명확하게 표현해내기 위해 대상을 극한까지 따르며 탐구하고 표현하는데, 이는 몸에 새겨진 풍경을 다시 몸을 통해 재현하려는, 재현이 이루어지는 어떤 지점으로 작가가 몸소 다가가려는 것이기도 하다. 작가만이 알 수 있는, 모든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되어서야 작가는 붓을 놓는데 그림으로써 보는 이들은 작가가 재현한 풍경을 공유받게 되고 비로소 현재의 시간 안에서도 그것들을 볼 수 있게 된다. 
    
    황수현은 오랫동안 감정이 배제된 움직임, 코레오그라피로서의 움직임에 대해 탐구해왔다. 작가는 <우는 감각>,<아임 크라잉, 벗 아임낫새드>,<나는 당신이 느끼는 것을 생각한다.>,<검정감각>등의 작업을 통해 울음과 웃음이라는 강렬한 신체표현들이 아무 감정을 담지 않고도 표출되어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움직임들이 표출되는 순간, 감정은 어떤 방식으로든 무용수 사이, 무용수와 관객 사이에 발생하게 된다는 역설을 발견하게 된다. 의도적으로 감정과 신체반응을 분리해내는 것은 어떤 면에서 고통의 재현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부분, 완전히 분리할수도, 완전히 통합할 수도 없는 어느 지점에서, 알듯말듯한 - 하지만 결코 알 수 없는 - 어떤 고통의 지점에서 살아간다. 황수현의 퍼포먼스에서 보여지는 웃음은 기계적인 웃음을 전제하고 있으나, 그것이 완전히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고통의 어긋난 표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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