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욱,〈Karma, 업〉, 2023, oil, acrylic, spray-paint on canvas, 145.5x112cm
류현욱 작가는 지난 8월 《2023 올해의 중견작가》 전시를 통해 역량 있는 회화 작가로 자리매김했으며, 리안갤러리, 광주시립미술관 등에서 13여 회의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류현욱 작가는 얼굴 없는 인물들의 신체를 그리며, 첫 시리즈로 ‘날들 days’ (2001~2009)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에어브러시 드로잉과 다층적 기법을 선보인 ‘Layers’(2010~2014), 가까운 가족을 잃은 상실의 슬픔을 추상화한 ‘애도의 숲 The mourning Forest’(2015~2022), 그리고 길게 베인 틈이나 선을 주된 시각적 요소로 활용한 ‘Slit 슬릿’ 시리즈까지 다양한 회화를 선보이며 활발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2023년 시작된 류현욱 작가의 시리즈 ‘Slit 슬릿’ 은 불교의 karma(업,業), 반야심경의 ’색(色)과 공(空)‘)의 세계를 양자역학의 이중슬릿(double slit) 실험의 구조를 모티브로 회화 안에서 중층적으로 변환(manipulation)하는 데 그 지향점이 있습니다.
길게 베인 틈이나 선-line을 의미하는 ‘slit’이 그림에서 주된 시각적 요소가 되는데, 심미적인 층위의 레이어(layer)와 결합하여 양자역학의 ‘파동적인 것과 입자적인 것’, 반야심경의 ‘색과 공’에 대한 세계를 회화 안에서 은유합니다. Slit은 양자역학의 이중슬릿 실험의 이미지가 모티브가 되었지만 그림은 은유와 시적인 지점 사이에서 머무릅니다
1960년대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인 줄스 올리츠키(Jules Olitski, 1922-2007)스프레이를 사용한 회화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올리츠키는 스프레이를 회화에 최초로 사용한 작가로 당시 비물질화된 색면 추상회화를 제작하였으며, 작은 물방울들이 캔버스에 맺혀 구성된 색면 회화는 형식주의적 모더니즘에서 관람자의 지각을 중요시하게 되는 전환을 불러왔습니다. 류현욱의 작품에서 만나는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에게 생동감을 느끼게 하면서도 작가의 감정과 그가 겪어온 과거 사이의 대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진명 (비평) 中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