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HIBITION
김희욱 :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현현하는
기간| 2022.01.20 - 2022.02.06
시간| 10:00 - 18:00
장소|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충남
주소|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리 174
휴관|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41-414-4464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희욱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예술가의 자질
    2020 (이미지출처 = 화이트블럭) 단채널 영상 4분14초

  • Missing
    2021 (이미지출처 = 화이트블럭) 단채널 영상 14분20초

  • 예술가의 일상
    2021 (이미지출처 = 화이트블럭) 단채널 영상 3분 46초
  • 			작가노트
    ‌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후로 벌써 15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그동안 찾아뵙지 못해 정말 죄송합니다. 시간이란 게 정말 빠르게 지나가네요.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던 그 시절이 요즘 유독 생각이 나 이렇게 편지를 드립니다. 저를 포함한 모두가 눈을 반짝이며 ‘진정한 예술가’라는 것을 꿈꾸던 그 시절을 지금 생각하면 그립기도, 왠지 허망하기도 합니다.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만날 수 있다면 저는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요즘 저는 이런저런 생각에 젖어들며 제가 예술을 하는 이유들을 생각해 봅니다. 예술가의 길이란 것의 진정한 현실이 어떤 것인지 왜 누구도 저에게 말해주지 않았을까라는 대상 없는 원망감에 빠져들 때면, 동시에 나라면 과연 예술가를 꿈꾸는 어린 친구에게 현실을 말해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간 많은 예술가 동료들과 선배들이 예술계에서 사라졌습니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져 소식을 알 수 없는 이들도 있고, 예술가의 길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직장에 취직해 잘 지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직도 꿈을 좇는 저의 모습이 문득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제 자신이 사회 속에서 불필요한 인간으로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예술가라니 정말 멋지세요..!’ 라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비예술인들을 만날 때면 정신이 아득해집니다.
    선생님. 저는 왜 예술을 하고 있는 걸까요? 생계를 위한 최소한의 돈을 버는 시간 이외의 모든 시간을 예술에 투자하며 발버둥을 쳐보아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부터 점점 멀어져만 가는 느낌이 듭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한 치의 의심 없이 예술가가 되겠다고 다짐해왔습니다. 그런데 30대 후반이 된 지금, 저는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라는 질문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은 이제 저를 화가 나게 합니다. 제가 예술이란 것을 위해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을까요? 이 예술이란 것 하나를 잡고 있기 위해 제가 가진 거의 모든 것들을 놓아버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생의 모든 것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30대 후반, 저의 머릿속엔 온갖 질문들이 가득합니다. 요즘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선생님. 감기 조심하시고 언제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봄이 오기 전에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자 OOO 올림
       
    슬픔 활용법, 마음이 보낸 소식
       
    “랜드마크교육주식회사(LEC)는 사람들의 역량을 강화해준다는 3일짜리 강습 프로그램으로 연간 약 5,0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사업체다. 본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고, 전 세계 11개 국에 42개의 지사를 두고 있다. 자아실현이 (그리고 그 상업화가) 전지구적 사업이 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감정 사회학자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개인 삶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재구성하여 자아의 근육을 강화하여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이른바 감정 자본 산업의 출현을 주목한다. 세상의 중심이 우뚝 설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하여 감정 자본주의는 정신분석학을 활용하여 자신의 무의식적 행동을 반추하라고 요청한다. 이렇게 자신의 유년기를 되돌아보는 행위는 현재의 상태가 과거의 무의식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즉 현재의 문제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닌 자신의 과거에서 비롯되었기에 ‘자기 계발’을 통하여 시대가 원하는 개인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키우게 한다. 인간의 정신적 고통은 문명화된 인류의 등장 이래 지속된 증상일 것이다. 감정 자본주의는 자기 내러티브, 예컨대 자서전과 같은 방식을 통하여 누구나 정신적 고통을 겪지만 끊임없는 노력으로 감정을 조절하여 ‘진정한 자아’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가 “자아를 병리로 정의하는 내러티브, 곧 사실상의 질병 내러티브를 판촉확산함으로써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희욱의 작업은 일상에 만연한 자아와 질병 내러티브의 매듭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동시대 문화가 어떻게 감정을 매개로 타인과 교감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어떻게 자본의 이득으로 연결되는지를 질문한다. 특히 근작들은 사회심리학적 측면이 두드러져 보이지만, 그 배면에는 예술의 의미와 예술가의 정체성에 관한 애정만큼이나 물음으로 가득하다.
    
    메타픽션
    
    김희욱은 감정이라는 심리적 기제를 토대로 개인을 구성하는 내외부의 다양한 관계들을 작업의 단서로 활용하는데, 특히 현실을 미러링하여 리얼리티와 허구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작업 방식은 일종의 메타픽션의 세계관을 떠올리게 한다. 메타픽션이라는 개념은 고정불변할 것이라고 믿었던 진리가 실상은 권력과 정치, 자본과 지식의 담합으로 이뤄진 허구였음을 알게 되면서 나타난 1960~70년대 문학의 새로운 글쓰기 형태이다. 메타픽션 문학의 세계관은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지우고 저자와 소설 속 인물 간의 차이가 모호한 상태로 펼쳐지곤 한다. 이와 같은 모호한 세계는 독자에게 더 많은 역할을 부여하는데, 여기서 독자는 소설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구경꾼이 아니라 사건을 파헤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된다. 추리소설과 같은 장르 문학이 이에 해당한다. 김희욱은 특히 언어 (주어진 것)와 그것에 대한 반응 (길들어진 것)의 상호작용을 통하여 자아가 형성되는 내외부적 관계를 특정한 상황으로 가시화/공간화 한다. 이러한 작업 방식은 사건의 재현이 아닌 사건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보여줌으로써 관람객을 능동적인 참여자라는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영상, 인터뷰, 페이크 다큐멘터리, 조각과 사물 사이의 연출된 설치미술 또는 유사-무대와 같이 다양한 매체와 방식은 인간의 심리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자아와 무의식의 세계를 탐색하기 위한 미학적 장치이기에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가감될 수 있을 것이다.
    2021년 작업 “SOUL4ME”는 유사 쇼핑몰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서너 개의 감정을 보여주는 가면을 쓴 쇼핑호스트로 보이는 인물은 영혼의 휴식과 건강을 되찾을 수 있는 매우 주술적인 사물을 홍보한다. 쇼핑몰에서 판매하는 (영험한) 주술적인 오브제들은 대개 사용자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매개물로 척박한 현실의 삶을 지속할 힘을 준다고 설득한다. 이 사물은 인터넷으로 도면을 다운로드한 뒤 프린트하여 첨부된 매뉴얼에 맞춰 오리고 접고 붙여서 완성된다. 작가는 인터넷 쇼핑몰이라는 매우 친숙한 미디어 포맷을 차용하여 거래를 통해 인간관계를 맺는 동시대인에게 매우 익숙한 교환의 세계를 불러온다. 그러나 여기에서 판매하는 사물들은 변변치 않은 교재같은 공작물로 쇼핑호스트가 소개하는 치유의 기능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현실과 허구가 뒤섞인 쇼핑몰의 상품과 호스트의 설명은 실제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신상품의 설명과 효능처럼 전혀 낯설지 않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원하고 소비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연일 상품 리뷰가 쏟아지는 이유와도 맞닿아 보인다. 김희욱이 제시하는 세계는 현실을 풍자한다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참조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이처럼 헤아릴 수 없게 출시되는 상품들은 저마다 누군가의 욕구, 필요, 의지 또는 희망과 절망을 대변할지도 모른다. 상품의 존재론은 그 쓸모가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결핍된 무언가를 되찾거나 부재하는 것을 대신해주는 어쩌면 영혼이나 감정으로 비롯된 것은 아닐까?
    
    “훔쳐보는 암살자 part 1과 part 2”(2018~19)은 질투라는 감정을 구조화한 공간으로 제시한다. Part 1은 질투의 이면인 사교적 태도를 드러내기 위하여 온통 백색으로 채색된 공간에 상부와 측면에 구조물을 세우고, 여기에 “You are incredible”, “You are amazing”, “I love your life”, “I wish I was you”와 같은 문장이 적혀있다. 마치 리플리 증후군을 연상시키는 문장이다. 작가는 문장들을 통하여 질투라는 감정의 이중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Part 1, 2의 구조물 사이에는 도끼, 식칼, 망원경, 목을 조르는 철사를 비유하거나 연상시키는 형상들이 놓여 있다. 실제로는 누군가를 위협하기엔 너무도 부족한 이 ‘살인의 도구들’은 역시 질투라는 감정의 이중성을 반복한다. Part 2는 질투라는 본연의 감정을 연극적인 무대처럼 가시화한 작업이다. Part 1과는 달리 붉은색이 두드러지고 살인 도구들도 공격적으로 등장한다. 비정형적인 조형물을 관통하는 파이프는 혈관의 박동을 연상시키는데, 내면의 질투심은 한편으로 매우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처럼 보인다. “SOUL4ME”가 감정을 진정시키려는 인간의 나약함을 건드리는 풍자라면, 훔쳐보는 암살자는 자아를 지우고 남이 되려는 심리상태의 불안함과 이러한 불균형으로 비롯된 폭발적인 에너지를 동시에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결국 폭발해 버린 이후의 상태가 궁금하다.
    
    “집 짓는 남자”(영상, 5‘44“, 2014)는 상업사진을 찍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세 가지 유형의 언어로 구성된 영상 작업이다. 먼저 말하는 남자, 그는 직업의 특성상 개인 시간을 갖기 어려운 남자는 잠시 빈틈이 생기면 집짓기를 상상한다. 그리고 텍스트, 마치 무성영화의 자막처럼 등장하는 문장들은 보르헤스의 단편집 『픽션들』가운데 「원형의 폐허들」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마지막으로 부각의 시점으로 나타나는 남자의 손이 그리는 형상들이다. 남자는 현실에서 본 어떤 공터에를 떠올리며 집짓기를 이어간다. 작가는 작업의 모티브가 된 원형의 폐허들에서 가상임에도 불구하고 정교하게 인간을 만드는 상상의 장면을 집 짓는 남자의 이야기에 오버랩한다. 그의 상상은 현실을 초과한다. 상상과 현실의 경계는 무너지는데, 이는 김희욱 작업을 구성하는 공통적인 조형적 요소이자 허구와 실재가 교차하는 메타픽션의 세계관을 형성한다. 비교적 초기작에 해당하는 ”집 짓는 남자“는 개인과 사회, 현실과 허구 사이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묻는 작업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보인다. 비슷한 시기에 제작된 ”감동하는 사람“(2014)은 삶의 지침이 되는 오랜 경구의 문장들을 해체한 뒤 맥락 없이 문장을 만든 사운드 작업이다. 관람자들은 의미가 어긋한 문장들을 들으면서 스스로 의미를 해석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부수어진 문장은 의미를 산출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성은 부서진 것들 사이의 폐허들을 재조합하여 또 다른 의미, 그러나 이미 결론이 있는 의미를 향하여 나아갔다고 작가는 허탈하게 말한다.
    
    구경거리로서의 재난
    
    ”슬픈채널“(2019)는 슬픔이 소비되는 양태를 풍자한 영상 작업이다. 일상에서 슬픔은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TV방송 중간에 갑작스레 등장한 슬픈 사연과 구호 활동 홍보 영상은 감정의 흐름을 잔혹하게 절단한다. 순간 시청자 또는 영화 감상자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주로 중장년층이 선호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도 슬픔은 넘쳐난다. 반대로 일상의 소소한 ’한 잔의 커피의 여유‘와 같은 서사도 넘쳐난다. 이렇게 슬픔과 기쁨의 전형(stereotypes)이 넘쳐나면 결국 우리의 감정은 텅 비어버린다. 말 그대로 감정이 소비되고 그 자리엔 또 다른 욕구로 채워지게 된다. 실제로 동시대의 삶은 집 짓는 남자의 상상의 세계와 같은 ’소확행‘이라는 도피 유토피아와 반대로 슬픔, 아픔, 고통을 마주하면서 어떤 교훈을 삼으려는 다크투어리즘이 성행하고 있다. 그것은 때로는 역사를 마주하며 삶을 통찰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으나, 재난을 소비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마주하기 어려운 ’실재의 귀환‘이 아닐 수 없다. 윤고은의 소설 『밤의 여행자(민음사, 2013)는 재난여행 기획자 고요나가 퇴사 의사를 밝히자 상사 ‘김’이 권유로 떠난 재난여행지에서의 경험담이 주를 이룬다. 고요나는 여행사 ‘정글’의 10년 차 수석 프로그래머이지만 여행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들, 예를 들어 계약 조건과 구매자의 개인적인 사연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감정을 배제하고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이기도 하다. 짐짓 매뉴얼에 따라 기계적으로 응대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이 상처를 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익숙해질 뿐이다. 상사 ‘김’은 회사 내에서도 잦은 성추행으로 악명이 높은 인물이다. 게다가 그의 나쁜 버릇은 주로 자리가 위태로운 사람을 향했기에 경고와 다름없다. 그 나쁜 버릇이 고유나에게 향하자 그녀는 퇴사를 결심한다. 그러자 김은 퇴출 위기에 있는 재난여행 상품 다섯 개 중 하나를 골라 5박6일 여행 보고서를 제출하는 대신 한 달의 휴가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그렇게 고유나는 베트남의 무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무이는 오랜 기간 싱크홀과 활화산으로 재난이 일상화된 지역이다. 소설은 자본이 어떻게 재난을 역사 관광이라는 프레임을 씌어 의미 있는 스펙터클로 전유하고 있는지를 고유나의 시선을 통하여 소개한다. 여기에서 고유나라는 인물은 이중적으로 묘사된다. 피고용인이자 동시에 타인의 고통을 관람의 대상으로 만드는 기획자이기 때문이다. 산업의 발달은 대량생산시스템과 상품의 다양성을 만들어준 대신, 인간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되었다고 해도 세상은 개인을 존중할 수 없었다. 의당 개인은 가족, 지역, 국가, 종교 등을 위하여 존재할 뿐, 온전한 자신으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김희욱은 감정이란 심리적이고 사회적인 기제를 통하여 세계를 사유한다. 그리고 이 사유의 밑바탕에는 예술에 대한 애정만큼이나 그것의 가치가 무엇인지 우화적으로 되묻는다. 끝으로 일루즈는 감정이 심리 단위란 것은 분명하나, 그에 못지않게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라고 말한다. 즉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항상 문화적·사회적으로 규정된 관계이기에 감정을 통하여 인간됨(personhood)의 문화 규정들을 구현하게 된다고 보았다.따라서 김희욱이 전개하는 감정에의 탐구는 개인과 문화적·사회적 관계를 해체하고 재맥락화함으로써 예술이란 미학적 장치가 소비자본주의로 질주하는 동시대를 풍자한 우화적인 실천이다.
    
    ‌‌글ㅣ정현(미술비평, 인하대)
    
    (출처 = 화이트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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