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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
Exhibition Poster
기간| 2022.02.11 - 2022.05.28
시간| 화-금 14:00 - 17:00 토 10:00 - 17:00
장소| 스페이스99/서울
주소| 서울 구로구 온수동 155-1/평화박물관 2층
휴관| 일요일, 월요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5-5811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강신대
정현준
최대진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최대진 <So many people>
    2020-2022 (이미지 제공=스페이스99) 네온 설치 가변 크기

  • 강신대 <루드비코: 미적 향연의 이미지(Double Channel Ver.)>
    2014 (이미지 제공=스페이스99) 더블 채널 비디오, 스테레오 사운드 각각 3분 52초, 5분 28초 (사운드 트랙: Sebastian – Doggg(2011))

  • 정현준 <수족관>
    2017 (이미지 제공=스페이스99) 6채널 비디오, 루프
  • 			기획 : 박수지
    주관 : (사)평화박물관건립추진위원회, 성공회대민주자료관
    
    오는 2월 11일부터 3월 25일까지 구로구 온수동에 위치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관장 박만우)에서 전시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가 개최된다. 전시 제목은 한 사람의 기억력 혹은 기억하려는 의지보다 더 강력한 것은 어떻게든 기록하고, 남기는 것이라는 뜻 (廣記不如淡墨)이 담겨있다. 그것이 희미하든, 짙든 ‘잉크’로 본 것과 생각한 것을 써내려가는 행위가 무엇을 남기는가에 대한 질문 또한 들어있다. 
    
    전시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는 역사를 쓰는 주체로서의 지식인과 역사의 적극적인 목격자로서의 예술가가 어떤 선택을 통해 ‘쓰는 자’가 되는지를 주목한다. 이때 ‘쓰는 자’는 선택의 필요성/유효성/긴급성/중요성/진실성/목적성에 따라 자신의 태도와 관점을 스스로 시험하기도 한다. 이번에 전시되는 최대진, 강신대, 정현준 작가의 작품은 각각 세월호 침몰사고, 미얀마 민주화운동, 국민보도연맹 학살사건, 소비 문화로 전락한 인터내셔널가, 오키나와 학살사건 등을 다루며 기억과 기록 사이를 더듬는다. 
    
    부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에 열심이었던 최대진은 어느날 프랑스로 떠나게 된다. 프랑스에서 우연찮은 계기로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5년의 프랑스 거주기간 동안 서양 지식 기반의 예술을 받아들이며, 그곳에서 나온 충돌의 공간으로부터 작업의 자양분을 얻어왔다. 드로잉, 설치, 영상, 조각 등 매체의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작업으로 세계를 마주한다. 모든 매체는 최대진에게 있어 일종의 드로잉이다. 움직이거나 멈춰있고, 뾰족하거나 듬성듬성한 최대진의  작품은 몽타주 된 드로잉으로서 매번 그 형식을 달리한다. 매체에서 접할 수 있는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슈들을 작업에 담기도 한다. 최근 최대진 작가는 그의 친조부께서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으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 전시 ⟪또렷한 기억보다 희미한 잉크⟫에서는 최대진 작가의 아버지가 작성한 진상규명신청서가 그의 작품으로 번안되어 전시 될 예정이다. 또한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군부의 총탄을 맞고 사망한 7살 소녀를 그린 회화도 신작으로 선보인다. 이 그림은 최대진 작가가 20년만에 다시 시도하는 유화로 깊이와 세월을 같이 쌓아올린 작품이다. 
    
    강신대의 관심은 ‘정치’보다는 ‘정치적인 것’에 있고, 작품의 형식을 그 내용으로 삼는 작가다. 때문에 그의 작품은 작품 안에 갇힌 정치의 내용을 항변하기보다, 작품으로 인해 발생하는 효과에 오히려 방점을 찍는다. 우리에게 익숙한 시청각 미디어의 언어로 소비되는 사회의 재난은 강신대 작가의 작업 동력이자 귀결점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의 구작 중 전시의 기획 의도와 밀접하게 연결되는 작품을 선별해 재구성 했으며, 작품의 형식으로서 내용 말하기를 다시 시도하고자 한다. 인터내셔널가를 동시대 뮤직비디오로 번안한 작품, 집안에 틀어박혀 헤비메탈을 들으며 ‘밀리터리 덕후’로 지내는 사람들, 밀려닥치는 파국에도 공회전하는 세계를 작품으로 보여준다. 이미지의 생산과 유통, 소비의 시스템은 그의 작품에서 여전히 작동되며 세계의 비참을 반복한다. 
    
    정현준은 자신의 개인사 및 주변인과 연결된 질문으로부터 모든 질문을 출발시킨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 변덕스러운 어머니,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지인까지. 이렇게 작가와 근거리에 있는 이들이 만들어내는 질문은 이내 더 큰 세계들과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임이 밝혀진다. 정현준이 보는 세계는 작가의 눈에서 출발해 구성되고 편집된 현실로부터 재구성되며 기존의 관념에 동요를 남긴다. 이번 전시에서는 아픈 근현대사를 가진 오키나와의 최대 관광지인 수족관의 구경꾼을 담은 영상을 통해 근과거의 비극을 내면화 할 수 없는 자신을 직시하는 작품과, 세월호 사건이 있었던 날 자신의 기억을 찾을 수 없어 가족과 지인을 통해 기억을 찾아나가는 로드무비 형식의 영상을 보여준다.
    
    더불어 이번 전시에서는 서지 자료, 페인팅, 영상, 설치 등 각각의 작품이 갖고 있는 다큐멘터리성이 어떻게 작품의 형식, 내용, 구성, 재료가 되었는지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때 예술가의 현실에 대한 인식과 예술작품으로서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 사이의 간극에 있어, 각각의 작품들이 구성된 형식이 구사하는 내용은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비평이 되기도 한다. 전시장 안에는 ‘실제’와 ‘증언’으로 구성된 무빙-이미지와 그와 관련한 서지기록이 매개된다. 작품의 감각 재료와 낡고 빛바랜 갖은 기록들은 현실이라는 빈틈없는 노트에 공백을 만들어 새기는 ‘잉크’와도 같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희미한 잉크 모임 (Faint Ink Gathering)
    희미한 잉크 모임(Faint Ink Gathering, 이하 FIG)은 다큐멘터리성을 작품의 주요 형식으로 구현시키거나, 현실 세계의 시스템을 작품에 적극적으로 전용하는 예술인들과 함께 하는 대화 모임이다. 이때 서지기록부터 푸티지까지, 기존의 기록물은 예술 작품의 창작에 어떤 재료로 사용되는지 질문하는 시간을 갖는다. 변형 불가능한 재료인 기록물은 예술 창작에서 어떤 과제를 발생시킬까? 작가의 선택을 보여주는 편집과 구성은 기록물의 아우라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 FIG에서는 다큐멘터리성을 가진 다른 영화를 감상하고, 1976년부터 80년까지 발행되었던 잡지 <뿌리 깊은 나무>에 있던 일부 글을 함께 강독하며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쌓아가는 시간을 갖는다. 다양한 층위로 남은 ‘희미한 잉크’는 과연 지금의 예술가에게 어떤 알레고리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모임 일정
    2월 19일 토요일 오후 2-5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기억 안 하고 싶은 걸 기억을 해버리면 잠을 못 자” (영화 <김군>)
    2월 26일 토요일 오후 2-5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뿌리 깊은 나무』 읽기 모임
    3월 5일 토요일 오후 2-5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옛날 세상 돌아올까 싶어서 겁이 나는 거라” (영화 <레드 툼>)
    3월 12일 토요일 오후 2-5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뿌리 깊은 나무』 읽기 모임
    3월 19일 토요일 오후 2-5시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내가 봤어” (영화 <기억의 전쟁>)
    
    참여 신청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홈페이지에 신청 링크 게시(http://www.peacemuseum.or.kr)
    
    
    참여작가
    
    최대진 (b.1974)
    
    작가 소개: 부산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대학을 다니다 프랑스로 떠났다. 우연히 미술을 하게 되었고, 시각예술가가 되었다. 오랜 기간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의도치 않게 나의 조부와 역사의 비극을 이야기하며 섭리와 운명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최대진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
    
    Q. 다양한 형식의 작업을 하시는 최대진 작가님은 설치든, 영상이든, 드로잉이든, 유화든 각각의 작품이 일종의 ‘몽타주된 드로잉’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은 어떤 태도 혹은 방식의 몽타주를 지향하시는 편인가요? 
    
    A. 몽타주는 영화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프랑스어로 ‘짜맞추다’, ‘결합하다’ 혹은 ‘상승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상승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합니다. 처음 박수지 큐레이터께서 이 전시의 제목으로 정할 뻔 했던 에이젠슈타인 감독 <전함 포템킨>(1925)의 ‘오데사 계단 장면’은 바로 변증법적인 상승작용의 상징적인 시퀀스이기도 하죠. 이러한 구성과 결합 방식이 제가 구현하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언어 안에서는 하나의 매체에 집중하여 편집하는 방식이 아닌, 좀 더 우연적이면서 파편적인 것으로 드러납니다. 제 개인의 시선은 무작위적으로 선택된 매체를 통해 보여지죠. 이런 방식으로 제작된 작업들을 전시에서 디스플레이하는 과정에서 똑같은 원칙들이 적용됩니다. 그래서 저에게 전시 설치 과정은 작업 제작 과정만큼 어떤 때는 그보다 더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두 가지 이상의 개념 혹은 의미를 충돌시켜 감정을 상승시키고 극대화하는 방식이 제가 말하는 기본적인 몽타주의 기본이 되는 과정입니다. 전지구적으로 이러한 감정의 극대화가 이루어진 비극적 사건 중 하나가 뉴욕 9.11 테러의 이미지가 아니었나, 갑자기 그런 생각도 드네요.
    
    Q. 최근 운명과 섭리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운명과 섭리를 생각하게 만든 ‘나의 조부와 가족과 역사의 비극’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A. 저는 정치·역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작가이지만, 작업이 작가의 정치적인 태도로 비춰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 작가 개인의 내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개인적인 원칙을 혼란스럽게 하는 일이 최근에 생겼습니다. 전시를 준비하는 동안 아버지가 쓰신 신청서 한 통을 문자로 받게 되었어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보내는 진실 규명 신청서에 제 아버지께서 직접 쓴 할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전부터 집안에서 말조차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가 그 안에는 쓰여 있었어요. 할아버지께서 해방 전후 전라남도 장흥, 벌교 일대에서 좌익 활동을 하셨고, 한국 전쟁 발발 직후 <보도 연맹 사건>이라 불리는 당시 정부의 대대적인 정치적 학살 사건의 희생자라는 것을 이 서류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산에서 대학생일 때 학생 운동에 약간 몸담은 적이 있었습니다. 1996년에 당시 ‘연세대 사태’ 혹은 ‘한총련 사태’라고 불린 8·15 범민족 대회를 서울 연세대에서 겪고, 체포·구금되어 있다가 2주만에 부산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할아버지 제사가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께서 저에게 할아버지의 이름 석 자를 손으로 종이에다 써 준 것이 기억 났습니다. 이 일이 있은 뒤, 저는 학교를 휴학하고 프랑스로 떠났고, 거기서 우연히 미술을 시작했고, 시각예술가가 되었고, 오랜 시간 유럽과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이야기들을 저의 작업에서 정말 많이 다루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근현대사에 관련한 제 조부와 부모의 비극에 대해선 거의 아는 게 없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70년이 지났고, 이제 노환으로 고생하고 계시는 아버지께서 남은 여생 안에 할아버지 죽음의 진실이 규명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이 전시에서 이 이야기를 다룬 작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Q. 예술 작품의 의미는 예술 작품의 내부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술 작품을 보는 외부의 누군가 혹은 상황이 의미를 발생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예술 작품의 의미는 내부와 외부 모든 상황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 작품은 신이 아닌 인간이 만드는 창조물이기 때문에 의미를 발생시키는 인간의 의지는 예술 작품의 의미를 만드는 데 기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개인의 차원에서 기억과 기록은 어떤 차이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기억과 기록을 놓고 어느 하나가 더 진실하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A. 제 생각에는 기억과 기록 모두 진실이라는 말과 어떤 의미에서는 대립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기억이란 것조차 개인에게는 주관적인 무언가일 수 있고, 그런 주관적인 생각을 흔적으로 남기는 게 기록이니까요. 하지만  기억을 기록하는 행위와 시간은 너무나도 중요하고 이것들이 결국은 인간과 문명의 유산인 것이죠. 저에게 진실이란 말은 너무 무겁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진실한 사람의 마음은 언제나 평온하다”라고 했는데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것 같습니다.
    
    
    강신대 (b.1987)
    
    작가 소개: 미술계 언저리를 맴돌며 알바를 하고 근근이 작업도 한다. 주로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강신대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 
    
    Q. 2016년 작품 <파국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나온 뒤로 세계는 더욱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16년의 파국과 2022년의 파국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우리들의 자세’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아니면 아무런 변화가 없을까요? 
    A. 코로나 이후 우리의 일상에는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 변화는 누구나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감각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선 어떠한 낌새조차 느끼지 못해 대처하기 어려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파국을 넘어 실시간으로 ‘수치화된’ 파국을 마주합니다. 이미지가 아닌 날씨와 경제 뉴스를 보듯 그래프와 숫자들로 추상화된 파국을 마주합니다.
    
    Q. 우리는 오직 하나의 스크린으로 전세계적인 이슈도 보고, 유명인의 개인사도 보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내용이 하나의 형식(장치)에 수렴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본격 시대정신 밴드 컨템포러리 – 인터내셔널가(하즈X펄펄 Ver.)>은 이미 작품 제목에 뮤직비디오임을 언급하고 있는데요. 예술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미지가 널리 퍼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서 고안된 적합한 형식을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혹은 예술 작품은 의미 전달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A. <본격 시대정신 밴드 컨템포러리 – 인터내셔널가(하즈X펄펄 Ver.)>은 아웃풋이 뮤직비디오 영상일 뿐 퍼포먼스 작품에 가깝습니다. 자본주의 너머를 상상한 상징과도 같은 민중가요인 ‘인터내셔널가’를 가상의 프로젝트 밴드가 동시대적으로 리메이크하고 뮤직비디오를 제작, 배포하여 소비되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일환입니다. 동시대의 문화 현상을 비판적으로 재고해 보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뮤직비디오라는 보편적인 형식을 차용함으로써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얻고자 했습니다. 
    낯설게 하기는 제 작업의 주된 방법론입니다. 낯설게 하기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그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뿐 아니라 작품을 둘러싼 환경까지 고려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스크린의 지지대일 수도 혹은 관람의 방식이거나 작품이 배포/유통/소비되는 과정 또는 작품을 둘러싼 세계일 수도 있습니다.
    
    
    Q. 강신대 작가님의 관심은 ‘정치’보다는 ‘정치적인 것’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때 ‘정치’와 ‘정치적인 것’은 어떤 차이를 갖습니까?
    A. 어떠한 작품이 ‘정치 예술’로 분류될 수 있다면, 여기서 ‘정치’란 하나의 장르 혹은 테마일뿐 그 작품의 효과는 정치적일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회/정치가 하나의 ‘제도’라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술가가 아니라 제도를 유지/관리할 ‘전문가’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그 효과가 정치적인 것이길 기대합니다.
    
    정현준 (b.1991)
    
    작가 소개: 김해 장유 사람이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였다. 2019년 아홉수인 己亥년에 서울로 상경하였다. 고향 생각날 때 최백호의 영일만 친구를 듣는다.
    
    정현준 작가와의 짧은 인터뷰
    
    Q. 정현준 작가님의 2017년 작품 <수족관>에는 많은 ‘구경꾼’이 보입니다. 영상 속 인물들이 ‘구경’하는 것이 위험한 것인지, 비탄에 잠길만한 것인지, 대단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무언가 흥미롭고 ‘볼만한’ 것이 있는 것 같은데요. <수족관> 작업을 하셨던 때와 지금 다시 예전 작품을 볼 때 작품의 주제와 관련한 생각에 변화가 있으신가요? 
    A. 과거 작업노트를 먼저 적어봅니다. 
    
    <빈방>
    작업을 해보겠다고 펼친 책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오키나와라는 지역은 나에게 그저 그런 관광지였다. 책에서는 많은 사람의 얼룩진 피가 시간 순서로 텍스트화 되어있을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이런 내 시선을 보고 처음 떠오른 이미지는 세계지도였다. 수많은 나라는 자신의 것 그리고 남의 것이라는 울타리를 쳐놓았다. 이러한 형태를 갖추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것을 책으로 보고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서 보고 있다. 거리감의 장벽을 넘어서기엔 꽤 단단한 무언가가 내 앞을 지키고 있었다. 
    
    <한 발자국 물러서서>
    멈춰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은 움직이는 것을 볼 차례다. 오키나와를 관광하러 갔다면 어디를 갔을까 가서 난 무엇을 보려고 했을까 고민하던 중 츄라우미 수족관이 떠올랐다. 처음 눈에 띈 것은 움직이지 않는 단단한 유리벽이었다. 유리벽 넘어 말하지 못하는 물고기, 아니 어쩌면 말하고 있지만 유리벽 때문에 반대편에 있는 나에게 들리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유리벽 안으로 움직이는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을 보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다시 한 발자국 물러서서> 
    이 거리감으로 작업해야겠다. 누군가 설치해 놓은 유리벽은 너무 단단했고 또 이 빛은 너무 눈부셔 어디서 누구를 향해 비추는 빛인지 볼 수 없다.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오키나와 사건에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여전히 충돌하여 튕겨 나옵니다. 당시 제가 할 수 있었던 건 수족관의 유리벽을 두고 이곳과 저곳을 관계 지어보는 것과 누군가의 시선을 기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지난 비극이나 사건을 다시 보고 기억하기에 있어 따뜻한 마음을 간직한다고 될 일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입 밖으로 나와 누군가의 귀나 눈으로 들어가야 기억하지 않을까요.
    
    Q.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 대해 우리는 당연히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백한 폭력을 옹호하는 입장도 타인의 다른 의견이기 때문에 존중하며 살아야 할까요? 타인이 명백한 폭력을 옹호하고 있다고 여기는 것 자체가 나만의 입장일 뿐일까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별로 존중하지 않는 편에 속하지만, 가족이나 친구 몇몇이 그러한 폭력에 옹호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특히 아버지가 그렇습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기도 했지만, 의견이 다른 사람과 침묵보다는 대화든 뭐든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Q. 예술 작품에 목적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A. 선입견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통해 특정 대상이나 집단을 다르게 가시화하고 싶습니다. (왜요?) 한 곳에 정지되어 있는 게 싫습니다. 착한 사람이 나쁘게도 변하고 나쁜 사람이 착하게도 변합니다. 비가시적 대상을 가시화하는 작업은 많습니다. 미술관에서 작가들은 각자가 뻔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저도 뻔하지 않기 위해 웃겨봅니다. 하지만 웃을 일은 아닙니다. 어떤 때는 무섭게도 해봅니다. 누구든 멈춰 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러한 저의 생각과 위치가 의심스럽습니다. 그래서 이 질문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한참을 고쳐 씁니다. 지금은 이 정도가 목적입니다라는 핑계를 남겨봅니다. 그럼 수지님 명절 잘 보내시고요. 혹 해주실 질문이 있으시면 마음껏 해주세요. 뒷목이 당기지만 재밌습니다. 질문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기획자
    박수지 (독립 큐레이터)
    큐레토리얼 에이전시 뤄뤼(AGENCY RARY)를 운영하며, 기획자 플랫폼 웨스(WESS)를 공동 운영한다. 학부는 경제학을, 석사는 미학을 전공했다. 부산의 독립문화공간 아지트 큐레이터를 시작으로, 미술 문화 비평지 『비아트』 편집팀장, 제주비엔날레 2017 큐레토리얼팀 코디네이터, 통의동 보안여관 큐레이터로 일했다. ⟪토마⟫, ⟪7인의 지식인⟫, ⟪줌 백 카메라⟫, ⟪어리석다 할 것인가 사내답다 할 것인가⟫, ⟪유쾌한 뭉툭⟫, ⟪우정의 외면⟫ 등을 기획했다. 이전에는 현대 미술의 정치적, 미학적 알레고리로서 우정, 사랑, 종교, 퀴어의 실천적 성질에 관심이 많았다. 이 관심은 수행성과 정동 개념으로 이어져, 이를 전시와 비평으로 연계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예술 외부의 질문에 기대지 않는 추상의 가능성, 예술의 속성 자체로서의 추상에 대해 고민한다. 
    
    (출처 = 스페이스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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