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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음보다 선명한 메아리처럼 윤여준(독립기획자) 원음이 없는 메아리는 없다. 메아리는 원음과 다르다. 원음의 반사인 메아리는 원음보다 더 크고 작은 데시벨을 지니거나, 더 길게 진동하거나, 더 오래 반복하며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온다. 이렇게 메아리는 원음과 다른, 하지만 원음을 잊지 않은 소리를 지닌다. 류지민의 작품은 마치 메아리처럼, 실제에서 시작하지만 조금 더 크게, 혹은 조금 더 오래 반복하며 다른 모습의 실제를 화면에 담고 있다. 류지민은 찰나의 순간에 핸드폰을 들어 눈앞의 장면을 수집한다. 그렇게 특별했던 순간은 핸드폰 속 숱한 이미지 중 하나가 되고, 작가는 카메라 앵글 뒤에서만 보았던, 즉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던 사진 속 장면들에 시선을 멈춘다. 그리고 핸드폰 사진을 원음 삼아 메아리를 만들어본다. 조금 더 길게, 그리고 조금 더 여러 번 반복하며. 작가는 이렇게 간직하고 싶은 순간을 사진 찍고, 핸드폰 속에 방치하고, 다시 사진 폴더를 열어 눈길이 멈추는 이미지를 찾아내는 행위를 습관적으로 반복한다. 그리곤 시선을 낚아챈 장면을 화폭 속에 자르고 이어 붙이며 새롭게 배치한다. <흩어진 색의 기억>과 <잡초들의 입장 정리>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류지민은 실제의 모습을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순간의 풍경을 기억 속 인상에 따라 콜라주하여 화폭을 구성한다. 작품은 실제의 기록인 사진 찍는 행위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엔 작가의 인상을 거쳐 재배치된 이미지의 조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류지민은 자신의 두 눈보다 카메라를 먼저 내밀어 수집한 사진 더미 속에서, 직접 눈에 담지 못한 허전함을 아쉬움으로 남기지 않기 위해 순간의 이미지를 자신의 화폭으로 소환한다. 그리고 그 순간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감각을 경유해 새롭게 이미지를 조합하고 표현한다. 류지민의 작품에는 잡초가 자주 등장한다. <그림자를 먹고 자란 잡초>, <시든 나무를 지탱하는 건>, <잡초의 푸른 그림자> 등 다수의 작품에서 잡초가 등장하는데, 작가는 잡초가 마치 핸드폰에 방치되어 있다가 어느 날 눈을 멈추게 한 사진과 닮았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관심받지 못한 채 자라나다 갑작스레 커져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잡초를 보며, 숱한 이미지 속에서 눈길을 사로잡았던 자신의 작품 속 사진 조각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사진첩에서 이미지를 찾아내고 그 모습을 작품으로 소환하듯, 수많은 수풀 사이에서 문득 시선을 사로잡은 잡초를 화폭에 옮기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류지민은 잡초를 원음 삼아 새로운 메아리를 만든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 모르는 잡초에 마치 이름을 붙여주는 것처럼. 메아리는 원음 그 자체가 스스로 만드는 소리가 아니라 주변의 환경에 부딪히고 공기와 진동하여 퍼지는 공명이다. 그렇기에 주변에 단단한 지형이 있을수록 더욱 큰 메아리가 울리곤 한다. 메아리가 그러하듯, 류지민은 형상의 실제의 모습 그 자체에 집중하기보단 더욱 큰 메아리가 울릴 수 있도록 주변의 모습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며 화면을 채워나간다. 작품의 주가 되는 형상의 묘사를 덜어내고, 주변의 그림자와 빛, 질감을 더욱 두드러지게 표현하는 작가의 화법은 클로드 모네(Oscar-Claude Monet)가 <수련> 연작을 발표하며, 자신이 그린 풍경을 ‘물과 물그림자가 있는 풍경이라 언급한 것’을 연상시킨다. 모네가 수련 그 자체보다 수련이 떠 있는 물과 물그림자에 집중하였듯, 류지민 역시 형상 주변의 빛과 공기, 온도를 세밀하게 표현하며 작품 속 순간의 인상을 보는 이들에게 전달한다. 그렇게 그는 지형에 따라 바뀌는 메아리의 소리처럼 주변의 색을 켜켜이 쌓고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며, 메아리가 더욱 크게 울릴 수 있도록 주변의 환경을 단단하게 다진다. 원음이 없는 메아리는 없다. 류지민은 습관적으로 사진을 찍고, 수집하고, 다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며, 발견한 실제를 원음 삼아 메아리를 만든다. 그렇게 마치 수풀 속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잡초처럼 어느 날 문득 눈에 들어온 이미지를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원음으로 가져온다. 그리고 그 원음이 더 선명하게 메아리칠 수 있도록 빛과 그림자 그리고 그 주변의 색을 모은다. 원음보다 더 큰 메아리가 울리도록. 원음보다 더 선명한 메아리가 울리도록. (출처 = everyArt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