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
2001년 베네치아 비엔날레 출품
2003년 영국 내셔널 갤러리 전시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66)의 극사실주의 조각은 진짜 사람보다 더 사람 같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관객들은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처음에는 기괴함 때문에, 그 다음으로는 이렇게 사실적인 조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탄하면서, 마지막으로는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에 직면하면서”(영국의 미술평론가 마리나 워너).
뮤익은 장난감을 만드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손재주 덕분에 뮤익도 영화와 텔레비전, 광고에 쓰이는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을 하며 업계의 각광을 받을 수 있었다. 데이빗 보위가 출연해 화제가 된 영화 ‘라비린스’의 특수 효과를 제작하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37살이었던 1995년 그는 미니어처를 만드는 일을 갑작스레 그만뒀다. “다른 사람이 만든 이야기만 하는 게 싫었다. 나만이 표현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들고 싶었다.”
시나리오 작가인 아내 캐롤라인 윌링과 시각예술가인 장모 폴라 레고의 영향도 한 몫 했다. 가족 휴가 때 해변에서 딸들에게 모래로 거대한 용을 만들어주는 뮤익의 실력에 깜짝 놀란 이들이 그를 미술계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다. 레고는 자신의 전시에 뮤익의 조형물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이를 본 전설적인 갤러리스트 찰스 사치가 곧바로 뮤익의 다른 작품을 구입했다고 전해진다.
이런 우연이 겹치면서 뮤익은 1997년 미술계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데뷔했다. 사치가 런던 내셔널갤러리에서 연 소장품전 ‘센세이션’에서 자신이 구입한 뮤익의 작품 ‘죽은 아버지’를 내놓으면서다. 뮤익이 자신의 작품을 대중 앞에 선보인 건 이 때가 처음이다. 전시장에는 실물보다 약간 작은 크기의 남성 사체를 묘사한 조각이 자리했다.
‘센세이션’전은 훗날 현대미술계의 전설이 된 전시다. 데이미언 허스트, 트레이시 에민 등 ‘현대미술 슈퍼스타’들의 각축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명 작가였던 뮤익은 자신의 작품으로 그 모든 스타들을 제치고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다. “비평가나 큐레이터의 어려운 설명 없이도 그의 작품은 충격적인 신비로움을 전달한다”는 찬사를 받으면서.
뮤익은 이후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며 현대미술계에서 독자적인 위상을 구축하고 있다. 그의 작품이 한국에서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2021년 리움미술관 재개관전인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의 첫 부분에 그의 작품 ‘마스크 Ⅱ’(2002)가 전시되면서다. 내년 초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그의 대규모 전시가 예정돼 있다. 보기만 해도 탄성이 나오는 뮤익의 작품세계를 만나볼 기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