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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홍세진 : 숨은 언어들
기간| 2021.09.02 - 2021.09.29
시간| 화-토 10:00 - 18:00 *수요일 10:00 - 21: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홍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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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출처= OCI미술관)
  • 			차갑게 와 닿는 사물
    
    서울에서 작가들이 재료를 구하기 위해 자주 찾아가는 을지로 골목을 쏘다니다 보면 반짝이는 전구 조명만큼 흔하게 보이는 게 철제 산업용품이다. 철근이나 쇠파이프가 수십 개씩 포개어진 풍경은 바로 그 재료로 무언가를 만들려는 사람들에게가 아니라면 특별히 시선을 끌지 않는다. 전선 더미와 각종 부속 자재가 복잡하게 널브러진 실내에서 가늘고 뾰족한 철근과 파이프의 선이 반복되고 교차되는 모습. 홍세진은 왜 그런 풍경에 눈이 갔던 걸까?
    그는 차갑고 딱딱한 촉감에 익숙하다. 어린 시절부터 청력 장애로 인공 와우 수술을 하고 오랫동안 보청기를 사용해왔다. 기술의 발전으로 기능이 개선된 보청기를 4-5년에 한 번씩 바꿔왔지만 이 장치는 여전히 번거롭고 불편하다. 시력을 보조하는 안경과 비교해보면, 보청기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전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매일 두 번씩 배터리 관리가 필요하다. 내 몸과 연결된 기계 장치. 일상생활에서 무심코 잊어버릴 수도 없는 가깝고도 먼 이 장치의 존재는 작가로 하여금 감각에 관해 새롭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에게 작업은 자기 경험에서 나온 감각을 대상으로 회화적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소리에는 채널이 많다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하는 사물을 먼저 살펴보면, 선풍기나 물탱크와 같이 회전하는 물체가 먼저 눈에 띈다. 이런 장치들은 전력이 흐르지 않거나, 수조에 물이 들어있지 않을 때 소리 없이 정지한다. 작가는 그로부터 보청기의 배터리를 교체하는 동안 청각이 정지한 듯한 감각을 연상한다. 농구 코트나 그리드 바닥 형상도 자주 나타난다. 이러한 선은 규칙을 지시한다. 아주 어린 시절, 그가 신호등과 횡단보도가 지시하는 금지와 허용의 기호를 처음 이해했던 순간 이래로, 선은 혼란스럽고 위험한 세계의 사물들에 규칙을 부여해서 불안정한 주체에게 일시적이나마 안정감을 부여하는 기호가 되었다. 화면을 넘어 설치로 확장하며 도입하기 시작한 하얀색 구체는 인공 와우와 보청기의 메타포라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그림이나 설치에 등장한 형상의 도입 배경을 일일이 짚어가며 이해하는 것은 설명문을 읽지 않는 이상 불가능할뿐더러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홍세진의 그림에서 시각적으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개별 형상의 묘사나 그것의 상징적인 의미보다도, 한 화면에서 그렇게 이질적인 형상이 어우러지고 있다는 사실과 절묘한 구도와 질감으로 구축한 공간성에 있다. 작가는 20여 년간 보청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보청기를 사용할 때마다 소리의 환경이 업그레이드되며 새로운 소리들을 획득했다고 설명한다. 구 모델 보청기를 사용할 때 들리던 기계 소음이 새로운 모델로 교체하면서 사라지게 되거나, 잘 들리지 않았던 영역의 소리들이 새롭게 의식되기도 한다. 이렇게 세월의 변화에 따른 보청기 기술의 발달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작가는 ‘소리에 채널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평균적인 청력을 지닌 인간에게 있어 소리란 대부분 조화로운 전체로서 다가온다. 반면, 보철 장치를 이용해 귀를 변형하고 확장한 작가에게 소리는 마치 개별적으로 분리해서 조작이 가능한 정보이자 재료처럼 인식되는 것이다.
    소리를 채널로, 환경을 소리뿐 아니라 여러 감각의 다채널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면 홍세진이 구축한 복잡하고 때로는 부조리해 보이는 화면의 구성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다. 작가는 평소에 찍어둔 사진에서 몇 장을 골라, 잡지나 인쇄물을 보면서 오려둔 사진과 함께 놓고, 겹치거나 잘라내어 화면을 구성한다. 물탱크가 기대어선 건물 안에 잎이 무성한 나무가 심어지고, 철근 재료가 벽에 기대어진 실내 바닥에 텔레비전이 나란히 놓이고, 야외 풍경을 가로막는 원형 창문의 프레임이 여러 그림에서 반복된다. 이렇게 익숙한 사물들이 이질적으로 조합된 낯선 화면이 만들어진다. 자세히 보면 세부의 질감이 다르다. 물감이 투명하거나 두텁고 여러 가지 레이어가 있다. 형상 뿐 아니라 질료적으로도 다양한 ‘채널’의 분리와 조화를 포착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방법적으로는 이토록 평이하고 낯설지 않은 과정을 통해,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차갑고 낯선 감각에 부여할 수 있는 시각적 언어에 착실히 다가간다.
     
    그림자가 길어지면
     
    청력 교정기를 사용하지만 청각이 아주 자유롭지는 않아서 작가는 자신이 시각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늦은 밤에 길을 걷다가 눈앞의 그림자가 길어지면 뒤에서 자동차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피한다. 누구나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일이지만, 시각과 청각의 기능이 동등하지 않아서 시각이 극대화되어 있을 때 그림자는 얼마나 강렬하게 각인되는 것일까. 빛의 떨림, 명멸, 움직임은 작가의 세계 이미지에서 단지 감수성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인지와 행동의 차원에서 좀 더 각별할지도 모른다. 그런 각별함이 필름을 잘게 조각내고 조명을 비춰 만들어낼 그림자 설치 작업으로 풀려 나온다. 작가는 필름 조각을 두고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하나의 완성된 상보다도, 그것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작은 파편들의 소란스런 집합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자에 많이 회자된 어느 책에서, 소설가 김초엽과 변호사 김원영은 서로의 장애에 관해 대화를 나누며 자신들이 각각 보청기와 휠체어라는 기계와 결합한 유기체라는 점에서 사이보그적 존재라고 밝혔다.1 이들의 ‘사이보그 선언’은 자연스럽게 홍세진에 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데, 먼저 비평문을 남긴 평론가 정현은 도나 해러웨이의 을 인용하며 ‘젠더 없는 세계관’이라는 개념에 빗대 홍세진의 작업이 ‘장애 없는 세계관’으로 이어진다고 서술한다.2
    그런데 이렇게 참조되거나 은유되기 이전의 해러웨이의 논의로 돌아가보면 “우리 시대, 신화의 시대인 20세기 후반에 우리는 모두 키메라로, 이론과 공정을 통해 합성된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 곧 사이보그다. 사이보그는 우리의 존재론이며, 정치는 여기서 시작된다.”3 즉, 사이보그는 특정한 신체적 조건이나 상태에 있는 사람들에 한정되지 않고 인간 일반의 현대적 삶과 정치에 연관된다. 이로부터 홍세진의 작업을 작가의 특수한 고유성에서 비롯된 것으로 제한하지 않고,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시선―총체화하지 않으면서도 파편적이고 모순되고 혼란스러운 것을 포용하는 관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분명하게도 인간의 개별적인 신체는 저마다 다른 고유성에 대한 지극한 존중을 요청한다. 이런 인식의 전환은 외려 보편적 이해의 실패와 불가능성을 상기시킨다. 매 순간, 낯선 주체의 낯선 감각의 언어에 부딪혀 아주 작은 것 하나를 겨우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작가의 개별적 경험이 강조되는 작업에서는 익숙한 언어와 상상을 요하는 감각 사이에 역전이 일어난다. 자, 어깨 너머에서 누군가 희미한 빛을 비추며 다가와 눈앞의 그림자가 길어지고 있다. 우리가 영문을 모르고 빛과 어둠 속에 두리번대고 있더라도 그림자는 계속해서 움직인다. 그것이 길어졌다가 다시 짧아졌다 하는 사이에 우리는 그림을 볼 것이다.
    
    1김초엽, 김원영, 『사이보그가 되다』, 사계절, 2021.
    2정현,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의 경계에서」, 2020.
    3도나 해러웨이, 「사이보그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2016), p.19.
    
    김정현(미술평론)
    
    
    
    (출처 =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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