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문수만 : The Immersion
기간| 2021.09.10 - 2021.10.14
시간| 09:00 - 18:00
장소| GS타워 더스트릿 갤러리/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역삼동 679/GS타워 1층, 지하1층
휴관|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2005-1173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문수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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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몰입을 통한 자유 의지의 표출’

김성호(KIm, Sung_Ho, 미술평론가)


프롤로그

작가 문수만의 이번 개인전은 작가의 이전 작업과 최근 작업의 대표작을 함께 선보임으로써 작가의 조형적 세계를 한 눈에 들여다 볼 수 있게 한다. 그의 최근작인 〈Cloud〉 연작은 쌀알을 동심원의 형식으로 화면 안에 무수히 증식, 배열한 추상 회화다. 이 작품은 그의 초기작인 ‘나비나 새 형태의 꽃 그림’을 위치시키기 위한 청자 등 한국적 배경에 대한 여러 조형 실험의 결과로부터 기인했던 유물 이미지로부터 발전한 것이다. 즉 청자, 토기 등 한국적 유물의 3차원 형상을 2차원으로 평면화하는 〈Simulacre〉 연작으로부터 유물의 질감을 탐구하는 〈Fractal〉 연작으로 전개되고 이 연작들이 표방하는 원형(圓形)의 이미지를 작은 쌀알 이미지로 집적하는 방식으로 극대화하는 〈Cloud〉 연작이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일견 달라 보이는 이 연작들이 지속하는 일관된 조형 의식과 그 미학은 무엇인가?


I.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기 - 시뮬라크르 연작

화가들은 오래전부터 풍경이나 인물 그리고 입체의 사물을 평면에 담기 위해서 일루전(illusion)을 생성하는 재현(representation)의 언어를 구사해 왔다. 평면 위에 마치 실제의 사물이 있는 것처럼 만드는 눈속임(trompe-l’œil) 기법을 통해 3차원의 실재를 2차원 위에 감쪽같이 재현한 것이다. 따라서 3차원의 실재를 ‘이미지의 환영’으로 복제하는,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위상을 견지하는 시뮬라크르(simulacre)의 속성이란 본질적으로 평면이다.

그렇다면, 작가 문수만이 〈Simulacre〉 연작에서 선보이는 재현의 방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작가의 언급처럼, “환조를 평면으로 펼쳐낸 전개도처럼 화면 안에 담고자 한 시도”가 된다. 이른바, 지구와 같은 구체(球體)를 “원기둥꼴이나 원뿔 모양으로 싸고, 시점을 지구 중심에 두었다고 가정하여 경위선을 평면에 투영하여 표시하는 지도 투영법”과 같은 전개도법developed projection)의 방식으로 그는 도자기와 같은 사물을 평면화한다. 따라서 그의 작업에서 고대의 유물들은 마치 방패와 같은 원형의 이미지로 펼쳐져 평면 위에 왜상(anamorphosis)으로 가시화된다. 지도라는 것이 지구를 평면의 좌표 안에 안착시킨 왜상의 지표(index)이듯이, 그의 〈Simulacre〉 연작은 유물 외형의 이미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원형의 평면 안에 펼쳐낸 왜상의 지표가 된다.

그런 면에서 그의 작업은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허구’의 시뮬라크르의 철학적 개념을 비틀어 품어 안는다. 그것은 다분히 시점(視點)의 문제와 연동된다. 즉 재현의 환영이 표방하는 시뮬라크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하나의 특정 시점에서 투시 원근법으로 만들어낸 마술적 허구’인 반면에, 문수만의 〈Simulacre〉 연작은 지도에서 구현된 전개도법처럼 ‘사물의 중심에 설정한 가상의 시점을 통해서 ’탈(脫)투시 원근법으로 구현한 허구’가 된다. 달리 말해, 일반적인 조형적 시뮬라크르가 ‘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세우는 일’인 반면에 문수만의 〈Simulacre〉 연작은 ‘탈투시 원근법을 통해 평면 위에 입체를 눕히는 일’이 된다.

3차원으로부터 2차원으로 변형된 그의 〈Simulacre〉 연작은 마치 둥그런 방패 위에 문양이 그려진 작품처럼 인식된다. 여기서 도자기 문양은 평면 위에 납작하게 드러누운 채 서로의 거리를 잃고 동일한 크기로 편재화된다. 작품 〈F1-4-2 Simulacre(241804)〉을 보자. 중심축을 기점으로 한 몇 개의 동심원도 그러하지만, 그 안에서 방사형으로 포진된 다양한 문양들은 그의 시뮬라크르 연작이 다만 중심축을 지닐 뿐, 어떠한 주인공도 없이 그저 패턴화된 문양처럼 편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어떠한 문양도 어떠한 이미지도 어느 것 하나 주(主)가 되거나 종(終)이 되지 않는 상황을 통해서 민주적으로 재편한 새로운 지표로 등극한 셈이다.


II. 질료의 자기 유사성 - 프랙탈 연작

작가 문수만의 또 다른 작품인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이 지닌 문양의 반복적 패턴과 같은 이미지를 계승하면서도 물질감을 극대화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이러한 두 연작은 〈Gate of Time〉, 〈Finding Flow〉, 〈Coherence〉, 〈Potter's wing〉 등 또 다른 제명의 연작들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작품들은 〈Simulacre〉 연작에서 발견되는 ‘납작한 원형의 평면화’가 지닌 시뮬라크르 속성을 공유하면서도 일정 부분 저부조의 마티에르 속성을 지닌다. 이러한 저부조의 마티에르는 미디엄이 안료와 만나 이룬 물질감이라는 물리적 속성뿐 아니라 다양한 문양이 반복 생산되는 흐릿하거나 또렷한 패턴 이미지들의 시각적 속성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드러난다. 작품 〈F1-1-0 Simulacre(191804)〉에서는 문양들의 주종이 없는 이러한 민주적 편재 양상이 더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기하학적 문양 외에 식물 문양 그리고 저부조의 마티에르가 함께 같이 어우러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Fractal〉 연작은 〈Simulacre〉 연작의 후속편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프랙탈(Fractal)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차원 분열 도형’이라 불리기도 하는 이것은 “전체를 부분으로 쪼갰을 때 부분 안에 전체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기하학적 도형”을 지칭하거나 “작은 구조가 전체 구조와 비슷한 형태로 끝없이 되풀이 되는 구조”를 지칭한다. 여기에는 부분이 전체의 모습과 닮아있는 ‘자기 유사성(Self-Similarity)’과 ‘재귀순환성(Recursiveness)’이라는 속성을 지닌다. 유형상으로는 ‘결정형 프랙탈’과 ‘비결정형 프랙탈’로 구분되는데, 전자는 대개 수학적 규칙이 적용된 ‘자기유사성’이 높은 도형에서 발견되고 후자는 대개 브로콜리, 고사리, 해바라기, 조개껍질, 벌집 등 ‘자기 유사성’이 낮고 ‘재귀순환성’의 속성을 지닌 자연물에서 발견된다. 특히 자연물에서 발견되는 프랙탈 이미지는 질서와 무질서과 교차하는 가운데 드러난다. 자연의 본성이란 무작위성과 복잡성을 기초로 하는 까닭이다.

문수만의 〈Fractal〉 연작에는 이러한 두 속성과 유형이 한데 겹쳐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반복, 증식이라는 특징의 프랙탈 도형이나 당초문(唐草紋)과 같은 유기적이지만 대칭적인 식물 문양이 함께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비대칭적으로 보이는 저부조의 마티에르가 동심원의 ‘밖/안’을 향해 방사형으로 ‘확산/환원’하면서 전체적으로 대칭적인 프랙탈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한 차원에서 그의 〈Fractal〉 연작은 ‘이미지의 자기 유사성’에 국한되는 프랙탈의 한정적 의미를 비틀어 ‘질료의 자기 유사성’ 그리고 ‘자연의 무작위성과 복잡성’의 개념을 덧붙여 확장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다.

아울러 〈Simulacre〉 연작과 〈Fractal〉 연작이 영향을 주고받는 〈Gate of Time〉 연작은 전통 유물의 이미지를 통해서 과거의 시간을 ‘지금, 여기’에 소환한다는 점에서 공간의 개념을 시간으로 확장하기에 이른다. 문수만의 작업이 이미지, 물질, 시간과 공간이 한데 어우러진 작업으로 특징되는 셈이다.


III.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 - 클라우드 연작

회화는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의 분석 이래 조각, 건축 등과 함께 근대기 동안 별 의심 없이 공간 예술로 간주되어 왔다. 당시까지만 해도 회화에서의 시간은 역사적 내러티브를 담거나 시간적 상징을 부여하는 도상학적 차원으로 연구되었다. 모든 것이 탈장르를 표방하는 오늘날의 예술 현장에서 우리는 회화를 더 이상 공간 예술로 속박하지 않는다. 키네틱 오브제를 부가하는 방식을 통해서 실제적 움직임(real movement)을 부여하거나 옵티컬한 효과를 노리는 장치나, 영상과 혼성하는 방식을 통해서 가상의 움직임(virtual movement)을 극대화하는 회화는 이미 시간 예술의 영역과 교차한다.

문수만의 회화, 특히 〈Cloud〉 연작은 회화 안에서 ‘쌀알 이미지’인 작은 모듈의 무수한 집적이 이룬 화면을 통해서 어른거리는 환영을 제공하고 그것이 가상의 움직임을 창출하면서 시간성을 견인한다. 하지만 옵티컬 효과를 통해 시간성을 품는 것은 그의 연작에서 본질이 아니다. 그는 쌀알을 모듈로 해서 더디고 고된 노동을 이어가는 창작 과정과 그 결과물인 멀티플 이미지가 품는 순환의 시간성 개념에 더욱 골몰한다. 그는 ‘작은 쌀알’이라는 모듈의 집적을 마치 ‘클라우드의 폴더에서 모듈을 꺼내어 부분으로부터 전체로 구축해 가는 과정’을 수행하듯이, 천천히 이어지는 창작의 시간성에 몸을 싣고 고된 노동을 묵언 수행하듯이 진행해 나간다.

그런데 왜 쌀알인가? 그는 〈Simulacre〉 연작과 〈Fractal〉 연작의 연장선상에서 고구려와 역사와 유물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쌀’이란 소재를 발견하고 그것의 조형적 언어와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3차원 유물의 입체 문양을 2차원 평면으로 변환하는 골몰했던 당시의 작업에서 문양 대신 쌀알 이미지로 치환하는 새로운 〈Cloud〉 연작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생존을 이끌어온 오랜 양식이자 한민족의 주식인 쌀! 길쭉한 비대칭 타원형에, 한쪽에 유사한 형상의 작은 쌀눈을 품은 오묘한 형상! 문수만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이러한 쌀알의 형상 자체는, 대칭의 프랙탈 도형이나 비대칭의 당초문과 같은 식물 문양을 함께 등장시켰던 그의 〈Fractal〉 연작을 조형적으로 계승한다.

흥미롭게도, 그의 전체적인 창작 과정은 매우 복잡하지만 캔버스 위에서의 시각화의 방식은 비교적 간결하게 이루어진다. 다양한 조형 실험을 거친 후 정착된 그만의 조형 방식인 셈이다. 그는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 이전의 〈Cloud〉 연작에서 떼어낸 후 디지털 아카이브로 저장한 쌀알의 이미지를 클라우드 폴더에서 가져와 컴퓨터의 그래픽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병렬 배치하는 여러 시뮬레이션 과정을 먼저 거친다. 이후 신작에 대한 구상과 밑그림을 컴퓨터에서 마친 후, 컴퓨터에서 구상한 ‘멀티플-쌀알’의 이미지를 기계 장치로 옮겨 그대로 타공한 시트지를 캔버스에 붙이고 물감을 일시에 바르는 방식을 사용한다. 명상과 수행의 과정으로 이미지의 하나하나를 만들어 가는 티베트 불교의 ‘모래 만다라(Sand-mandala)’의 창작 방식을 디지털 방식으로 체계화하고 순간의 붓질로 변형한 것이지만, 만다라 회화가 지향하는 명상과 수행을 향한 정신 자체는 별반 다르지 않다. 일시에 그려진 회화에 부가되는 다양한 회화 장치를 통해 이러한 정신을 계승하는 까닭이다. 그는 일률적인 모노톤의 동심원에 변화를 주기 위해 물감을 덧바르거나 닦아 내기도 하고 애초부터 전체를 복잡다기한 색상으로 구성하여 한 작품을 위해 여러 장의 타공된 시트지를 수차례 사용하기도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다. 이처럼 일견 단순하지만 실제로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 그의 〈Cloud〉 연작에서, 모듈로 사용된 ‘쌀알 이미지’는, 작은 캔버스에 그리거나 커다란 캔버스에 그리거나, 나아가 3폭의 제단화처럼 이어진 멀티플 대형 캔버스에 그리거나, 언제나 쌀의 실물과 유사한 크기의 이미지로 등장한다. 동심원의 중심으로부터 외부로 확장해 나가면서도 쌀알의 크기를 동일하게 유지하면서 ‘경계를 순환하는 모듈의 민주적 편재’를 지속하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조형의 형식이 낳은 ‘공정, 평등, 모두’와 같은 민주적 소통의 메시지라 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쌀의 한자인 ‘미(米)’의 형상이 지닌 사통팔달(四通八達) 구조와 더불어 그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이것은 쌀이 지닌 내적/외적 본성을 왜곡 없이 드러내려고 작가의 조형 실험이 낳은 심층의 메시지로, 이제 ‘순환’의 세계관으로 나아간다.

에필로그 - 몰입이 표출하는 자유 의지

작가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향하는 ‘순환의 세계관’이란 그가 직접 말하듯이 니체(F. W. Nietzsche)의 철학적 메타포인 ‘영원회귀(Ewige Wieder-Kunft)’의 세계관과 만난다. 이 세계관은 “영원한 시간은 원형(圓形)을 이루고, 그 원형 안에서 일체의 사물이 그대로 무한히 되풀이되며, 그와 같은 인식의 발견도 무한히 되풀이된다”는 내용이다. 니체의 이 개념은 마치 문수만의 〈Cloud〉 연작이 지닌 조형 세계에 대한 해설처럼 보인다. 니체에게서 ‘유일한 실재는 생성의 전체로서의 자연이며 생의 유일한 원리는 힘에 대한 의지’이듯이 우리의 삶 속에서 ‘힘에 대한 의지’는 '더 많은 힘을 원하는' 본성으로 되돌아오길 거듭한다. 니체는 이러한 생로병사가 가득한 ‘현실의 삶을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순간을 충실히 살아야 한다는 운명애(Amor Fati)’를 요청한다. 이것은 그의 철학 전반을 차지하는 ‘허무주의 사유’를 극복하는 유일한 긍정적 사유로 가히 ‘디오니소스적 긍정’이라 평가할 만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문수만의 작가노트를 살펴보자: “세월은 유수와 같다고 했던가. 마치 유체역학에서 공기 저항은 속도에 제곱 비례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인생의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진다. 그만큼 역경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많아지고 몸에 부딪히는 맞바람은 더욱더 매섭게 다가온다.” 반백을 넘은 작가의 이 같은 진술은 종교 대신 예술을 택했던 그의 삶의 어려운 현실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러나 니체가 영원회귀론을 통해서 운명애를 요청했듯이, 작가 문수만은 예술가로서의 삶에 대한 선택과 그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긍정’을 통해서 오늘도 운명애를 가슴에 안고 창작에 나선다. 그것은 예술 안에서 몰입을 통해서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작가의 문수만의 작업관과 맞물린다. 이러한 차원에서 관객은 일견 이미지로 가득한 것으로 보이는 문수만 작업의 본질이라는 것이 ‘몰입 속 자유 의지가 남긴 여백’임과 동시에 ‘삶의 대한 성찰의 일단’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겠다.

“나의 여러 시리즈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몰입을 통해 자유롭고 싶은 의지의 표출’이다. 몰입은 무한한 상상력으로 캔버스를 지배하게 만든다. (...) 화면은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부품처럼 가득 차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체보다 여백의 공간을 더 중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즉 질서 속에 반드시 자유가 존재하며, 그 속에서도 여전히 규칙은 존재함을 의미한다. 질서와 규칙, 공간과 자유에 대한 표현은 화가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들이 반영된 것이다.” 


(출처= GS타워 더스트릿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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