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그 많던 털들은 어디로 갔는가 - 쇠는 허물어지고 흙으로 간다. 그 흙에서 털이 자라고 털도 흙으로 돌아간다. 쇠가 들어선다. - 성남시 수정구, 내가 사는 동네는 5년 뒤에 사라진다. 재개발로 철거가 예정된 이 장소는 시한부 운명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동적이다. 집 옥상에 올라가 반대편 동네 골목을 마주하면 사라진 동네가 보인다. 빈집들로 꽉 찬 풍경 - 모두 허물어져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만이 주검처럼 늘어져 있던 모습 - 지금은 새로운 뼈대들이 꼿꼿이 세워지고 있다. 나는 곧 사라질 장소에서 이미 사라진 장소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긴다. 언젠가 내가 사는 이 동네도 저렇게 되겠지. ‘언젠가는… 언젠가는…’, 입가에 맴도는, 단순한 미신 같지 않은 이 말이 나를 움직이게 한다. - 자칭 소문난 뚜벅이인 나는 틈날 때마다 어디론가 떠난다. 주로 내가 가보지 않았던 미지의 장소 위를 걷다가 생경한 풍경을 마주한다. 그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상상하기도 하며, 삶의 근본적 질문을 떠올리기도 한다. 종종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들을 만난다. 그 존재들을 가만히 응시하다 보면 그로부터 소우주를 발견하기도 한다. - 실제 탐험을 하며 채집한 더미, 잔재, 표류하는 것들을 거푸집 모양을 한 설치물과 결합하였고, 푹신한 사진 조각을 설치물 주변 곳곳에 배치하였다. 관람객 분들이 설치물 안과 밖을 드나들고 곳곳에 배치된 이미지와 오브제를 살펴보며 탐험하기를 바란다. 우리 주변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 그 곳에 남겨진 것은 무엇일까. 낯익지만 낯선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바쁜 현대사회에서 무뎌진 감각을 되살리는 경험을 하는 전시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부친다. (출처= 옥상팩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