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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19 CRE8TIVE REPORT
기간| 2019.01.10 - 2019.02.23
시간| 화요일 – 토요일: 오전10시 – 오후6시 수요일 연장개관: 오전10시 – 오후 9시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강훈
라오미
사윤택
김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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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전시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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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시전경
    Exhibition view
  • 			사실 ‘레지던시 입주’의 의미는 ‘물리 작업 공간 확보 및 비용 절감’과 같은 숫자 논리보다, ‘맥락이 생기고, 그 맥락의 주인공 중 하나가 된다’는 점이 훨씬 크다. 짧으면 두어 달, 길어야 간신히 연 단위인 입주와 이사의 반복 역시 작가에겐 일종의 비용이다.
    작가들은 입주 동기로 서로 인연을 맺고, 함께 작업실을 꾸려 나가고, 보고전과 같은 구체적인 목표를 공유하고 일 년간 장기 레이스를 펼치며, 지칠 땐 널브러진 사람들끼리 자연스레 대책을 상의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사방으로 튀는 아이디어나 자극이야말로 작가 생활을 잇는 원동력이다. 모여서 큰 강을 이루어야 멀리 가지 않겠는가. 그래서 더 풍부한 맥락을 작가에게 안길 방도를 늘 궁리한다. 평론가 매칭, 워크숍, 중견 작가 초대 시간, 오픈 스튜디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러하다.
     
    《2019 Cre8tive Report》는 그 맥락이 한 데 모이는 강어귀와 같은 전시이다. 강줄기를 되짚으며 여덟 군데 발원지를 하나씩 들여다 본다.
     
    김남훈의 작업 중 하나이자 최근 개인전 제목인 “단지 우리의 위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뿐이야”는 특정한 어딘가에 자리한, 그래서 다른 지점을 더듬어 자신을 찾는 그의 시각을 적절히 대변한다. 그의 눈길은 볕과 같아서 쥐구멍을 즐겨 향한다. 작고, 보잘것없고, 소외되고, 하찮고, 사소하고, 잊히고, 밀려나 주목받지 못하는 것들을 주목한다. 건물과 땅의 갈라진 틈을 청테이프로 치료하고, 알아줄 이 없는 허공에 신호를 밤새 깜박인다. 길에 난 잡초를 주인공으로 발탁하고, 날벌레의 최후를 국립묘지처럼 오와 열을 맞춰 모신다. 어느 담벼락이며 길바닥에 주름살처럼 돋은 ‘금’은 그에게 수십 시간 3D 프린터를 돌리고 모서리를 다듬어 마치 위인의 전신상을 캐스팅하듯 공들여 남길 ‘특종’이다. 잘게 쪼갤수록 고해상도가 되듯, 그 시선의 가닥이 미미하고 섬세할수록 좀 더 미세한 쥐구멍에 잘 들어갈 수 있다. 그는 수많은 작은 쥐구멍에 들어찬, 외면된 많은 사연을 단지 스캔하려던 것 뿐이다.
     
    김민주의 산수풍경은 ‘상상이 섞인 풍경’이라기보단 차라리 ‘풍경이 섞인 상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싶다. 여기서 ‘상상’은 작가의 ‘생각 나뭇가지’의 생김새, 곧 전반적인 심리 상태나 개인의 독특한 사유 메커니즘을 뜻한다. 그는 산수와 현대 풍경의 접점들을 더듬어 찾고, 자연스레 중첩을 시도한다. 형태와 의미 양면에서 현실과 이상의 절충, 합의, 단일화된 형상을 제시함에 주목하자. 이 ‘이상’은 현실에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상처를 치유할 뿐만 아니라, 창밖으로 비어져 나오는 나뭇가지와 같은 이미지로의 전이와 같은 일종의 ‘일탈’까지도 포괄한다.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는 ‘담아낸 것’과 ‘휘저은 것’의 융합이다. 물리 공간을 호출하는 이미지와, 사유의 내용이나 리듬을 풍경 형태로 전이한 일종의 생각 얼개, 생각의 생김새 사이에 접점을 내어 버무린다. 이러한 양면성은 그 정도와 내용이 다를 뿐, 전통 산수와 자연스레 공유 혹은 그를 계승하는 속성이다. 때문에 넓게는 동시대의, 좁게는 그만의 ‘산수’라 여전히 칭할 만하다.
     
    보이고 잡혀야 잘 그리는 사람이 있다. 좋게 보면 가감없이 냉정히 임하는 셈이지만 한편으론 현실, 현상, 실재에 늘 얽매이는 기분도 들 것이다. 김수연은 그 한계를 극복하고 작업을 확장하는 자기 방편을 찾아내었다. 우선 검증 안 된 상식, 미신, 옛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상상과 가당찮은 시도에 주목한다. 오래된 상식 백과에 등장하는, 영 불안한 생김새에 얼마 날지 못할 듯한 비행선, 썩 신뢰가 가지 않는 천체 모델은 좋은 소재가 된다. 도감이나 사진 속의 본 적 없는 동식물을 만난다거나, 춘화첩(春畫帖) 등 낯선 곳에서 입수한 색다른 모티프 역시 그의 확장에 힘을 보탠다. 방법론에서도 확장과 탈피가 두드러진다. 소재를 ‘적당한’ 입체 모형으로 제작하고, 그것을 모델 삼아 그려 낸다. 일반적으로 회화는 입체에 해당하는 정보량으로 평면의 결과물을 내지만, 이와 반대로 김수연은 그림, 사진, 설계도 등 평면의 정보량으로 입체를 확보하고, 대상의 부분이 시점 전체를 차지하기도 하는 등 각도와 배치를 새로이 한다. ‘시선의 미장센(mise en scene)화를 통한 다방면의 원본 극복 실험’이라 정리해도 좋을 법하다.
     
    사윤택의 최근 작업에 목격되는 시각적 단서 중 하나는 텍스트 기록의 흔적과 모식도이다. ‘흔적’인 이유는, 형식이 텍스트일 뿐, 주변의 드로잉이나 모식도, 휘갈긴 연결선 등과 뒤얽혀 하나의 이미지로도 기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어구의 나열이나 불분명한 맺음은 순간의 몰입을 생생히 전달한다. 그 내용은 마치 꿈의 전개처럼 제풀에 흐르고 전환하기 일쑤인 바 온전한 이해는 욕심이겠으나, 감상자 각기 눈에 띄는 단서를 건지기엔 충분하다. 반면 순간의 포착이나 중첩된 형상은 상당 부분 진술의 성격을 겸한다. 즉 이미지와 텍스트 각각뿐만 아니라 이미지화한 텍스트, 텍스트화한 이미지까지 4개의 축으로 진동한다. 단지 ‘시간’, ‘동작’과 같은 키워드에 가두는 것은 무리가 있다. 깜박이는 건 입장과 생각과 상황이다. 모든 인식 주체는 같은 순간 각자 서로 다른 우주를 대하며, 그 우주는 종종 서로 교차한다. 또 다른 차원에 접속하는 듯한 순간의 오묘함이야말로 매 순간 다른 우주와 조우하는 사건에의 말초적 감응이다. 간헐적으로 찾아오는 미묘한 느낌은 그 순간 무언가 맞닿은 때문이 맞다. 그 ‘연속적 불연속성’을 회화로 포착하려 한다.
     
    청계천에서 금강산을 구경할 순 없을까? 라오미는 이러한 환상을 실현한다. 2010년 폐관한 청계천 바다극장은 사라져가는 것이면서, 사라진 것을 부르는 ‘무대’의 속성을 동시에 갖춘 오묘한 공간이다. 또한 그는 20세기 초반 한국의 대표적 무대미술가 우전 원세하(雨田 元世夏, 1903-1970 )의 무대 연출에 주목한다. 이에 영감을 얻어, ‘금강산’이란 ‘환상 섞인 실경’을 유람하는 이야기를 회화와, 설치, 오브제, 음악, 아카이브 영상 등의 다양한 형식의 조합으로, 폐관한 극장을 배경 삼아 마치 하나의 입체적 무대처럼 풀어낸다. 무대란 일종의 공인된 환상이다. 곁에 없는 것을 부르는 통로이다. 그것은 지나간 추억, 낡고 뒤처진 옛 것, 소외/방치되어 잊힌 것일 수도 있고 욕망, 염원, 다가갈 수 없는 것, 이상향에 이를 수도 있다. 따라서 무대로서의 금강산은 ‘합의된 소환’이며, ‘볼 준비가 된, 일시적 현실 공간’이란 점에서 실제 금강산과도, 일반적인 금강산 그림과도 양방으로 차별화한다. ‘무대 그림’이 무대 소품이나 배경으로서의 그림을 뜻한다면, 그의 그림은 ‘무대 그림 그림’이라 부를 만 하다.
     
    종이가 찢어지도록 동심원을 그어대거나, 맹렬히 다리를 떠는 사람이 종종 있다. 심적 압박이 특정한 동작으로 표출하는 순간이다. 안준영은 강박, 신경증, 불안, 초초와 같은 심리적 부하를, 자세나 동작을 넘어 특정 대상, 구체적 형상으로 투사한다. 양, 죽은 새, 곤충, 인체 골격, 최근엔 신체 장기에 이르는 일련의 형상들은 그 자체로도 무미건조하고 황폐하며 섬뜩하지만, 그에 더해 표면 구석구석마저 ‘동심원 긋기’나 ‘다리 떨기’가 능숙하게 무르익은 듯 가지런하며 촘촘한 펜 선 해칭으로 가득하다. 아무리 그어도 아무리 떨어도 나아가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무는 그 속성은 나약함, 불안과 주저의 이미지와 박자를 맞춘다. 몸을 둘러싼 비가역적인 기제로 그는 시간과 기억을 더듬는다. 시간은 피할 수 없이 다가오고 떠난다. 기억은 통제를 벗어나 상황을 재소환하고, 불안 강박 그리고 초조의 감정까지 재조성한다. 이런 비가역적 일방성에 주목하여 최근 그는 형식 다각화를 시도한다. 드로잉 작업이 정적이며 기법과 형상, 대상의 속성 등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단편 영화 작업은 상대적으로 동적이며 상징과 분위기, 내용 전개에 무게를 둔 형식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은 이강훈에게 좋은 작업 동기가 된다. 맹인들이 아무리 떠들어야, 코끼리 머리에서 발끝까지 어디에서도 답은 정해지지 못하고 표류한다. 생각도 제각각 다르고, 서로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길도 없다. 인생에 정답이 없고 완전한 소통은 불가능하다. 그의 작업 속 크고 작은 기하학적 형상은 각도와 거리, 조명에 따라 평면 실루엣으로 보이기도, 강렬한 입체감을 과시하기도 하며, 모양새에 답을 정하지 않고 부유한다. 각각의 형태는 공간 위에 덧없이 떠 있는 개별적, 독립적인 개체로 보이다가도, 조금 물러서 전체를 한눈에 담으면 어느 순간 그 외곽선이 암시하는 소실점을 따라 거대한 하나의 체계를 차리곤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선 반투명한 형체를 공중에 매다는 본격적 공간 설치와 더불어, 음향, 조명, 센서를 적극 활용해 감상자와 실시간 감응하는 체험형 인터랙티브 작업을 선보인다. 감상자는 저마다 이미지와 실체의 경계, 주관과 객관의 경계, 개별 경험 사이의 간극을 맛본다. 단일한 조형을 개별 체험으로 분해하는 작업인 셈이다.
     
    기억은 대상이나 상황의 모든 정보를 다 기록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주된 ‘이미지’만을 간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기억은 흐려지기도 하고 과장 축소 왜곡을 반복하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끊임없이 변하곤 한다. 그런데 기억이 담은 그런 시시콜콜한 내용을 애써 호출하기보단, 그 기억의 생김새와 색상, 맛과 점성, 질감, 모양, 냄새를 펼쳐 보면 어떨까. 기억이 곧 이미지라면, 지희킴은 ‘이미지의 이미지’를 더듬어 낸다. 어항의 물고기는 곰으로, 곰 가죽은 다시 텁텁하게 흘러내리는 기억의 색상으로 변모한다. 거듭 다시 잇닿는 기억의 이미지는,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이며 동시다발적으로 펼치는 이미지 놀이로 진화한다. 서사의 파생물 중 하나가 기억이라면, 그의 놀이는 그것을 가장 반서사, 비선형, 비 순차적으로 사방에 색색들이 착즙한다. ‘책 드로잉’ 시리즈를 벗어나 보다 자유롭게 벌이는 최근의 작업들 역시, 정형화한 형태와 선형/순차적 내용 전개의 틀, 책의 틀을 깨는 시도로 받아들일 수 있다.
     
    레지던시 운영의 보람과 기쁨이라면 작업에 직접적으로 기여하여 좋은 결실을 선보이는 것이 첫째요, 한정적인 입주 기간을 마치고도 여전히, 아니 더욱 순탄하고 활발히 더 좋은 작업을 이어나가는 작가를 바라보는 것이 그 둘째일 것이다. 첫 번째에서 그칠 게 아니라 부디 두 번째 기쁨과 보람으로 옮겨 가기를, 강어귀와 연안을 넘어 인근 해역과 대양으로 퍼져나가는, 미술계의 큰 물줄기가 되길 늘 기원한다.
     
    김영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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