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우리는 서로 모이게 되면 무엇을 주고받을까? 누군가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라고 말을 꺼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야기’라는 것에 호기심을 보이지 않을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야기 본능을 가진 존재인 ‘호모 나랜스’이기 때문이다. ‘호모 나랜스’는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된 이야기에는 우리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이해가 담겨있다. 이야기는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다. 러시아의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1904~1987)은 우리의 삶 자체가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서로 섞여가는 대화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이야기 사이’ 전시는 현대미술작품을 통해 나의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서로 섞여가는 대화의 장을 열어보고자 기획하였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자연’, ‘생활’, ‘ 환상’, ‘기술’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펼쳐보고, ‘꿈’을 통해 이야기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작가 내면의 자신과의 대화,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의 대화, 그리고 작가와 수용자간의 대화를 포함하고 있다. ‘이야기 사이’ 전시장에서 다채로운 작품들을 통해 작가들의 이야기 사이의 이야기들을 찾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덧입혀서 꿈의 이야기를 완성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길 기대한다. 홍경택이 만들어내는 화면에는 형형색색의 선명한 색상 이 가득하고, 사물들이 밀도 높게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릴 때 그림과 나를 떼어 놓고 생각하지 못하고, 그림과 나를 별개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 이야기 할 만큼, 그의 작품에는 심리적이고, 개인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대형 회화 작품 서재-비둘기 날 때(2016)에서는 색색깔의 책들이 빼곡이 꽂혀있는 도서관의 복도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소년을 만날 수 있다. 이 소년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회화 작품 속에는 비둘기, 해골, 버섯등의 다양한 상징적 요소들이 등장한다. 이것들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오래전 그림에서 책은 예술과 학문, 해골은 죽음과 덧없음을, 비둘기는 평화와 안식을 상징하였다. 홍경택의 서재-비둘기 날 때(2016) 에서도 이러한 뜻으로 그려진 상징일까? 그림 앞에서 상징의 의미들을 발견해보고, 그림 속 소년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어보자. 강애란은 지식을 상징하는 책, 그리고 책과 관련된 모티브로 작업을 진행한다. 책 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고,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지식을 얻는다. 작가의 디지털북프로젝트는우리가 앞으로 마주하게 될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에 대한 성찰을 목적으로 다양한 이야기와 시간과 공간을 담고 있다. 작가는 실제 책 사이즈의 투명한 오브제 책을 만들고, 그 안에 LED 라이트를 장착하여 빛을 발하는 책을 만든다. 이렇게 제작된 디지털 책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고, 하나의 공간이며 시간을 상징한다. 깊이와 넓이와 부피가 있는 디지털 개념의 공간인 것이다. 작가의 디지털 책을 바라보며 앞으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새로운 공간과 시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보자. 강요배는 자신의 고향,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주제로 작업 활동을 펼친다. 그의 풍경화는 다양한 자연의 풍경을 단순히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 스스로의 변화를 읽어 자연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화면에 담아낸다. 작가는 삶의 풍경에 따뜻한 날, 평화로운 날뿐만 아니라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릴 때가 있는 것처럼 작품에도 저마다의 감정들이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가 그려내는 제주의 자연에는 변덕스러운 제주 날씨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 같다. 3m가 넘는 대형캔버스에 일렁이는 푸른 파도는 마치 우리가 푸른 제주의 바다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2차원 평면에 그려진 회화작품이지만, 바람이 부는 바닷가의 소리와 감촉을 그대로 느껴지게 한다. 작가가 자신의 일상 속 풍경을, 풍경이 놓여있는 다양한 상황들의 이야기를 담아 표현해 낸 작품 앞에서, 자연과 마주하며 있었던 우리의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노석미는 읽히는 그림을 그리는 회화작가이다. 회화 작업 뿐 아니라 다양한 일러스트 작업도 하고, 책도 쓰는 팔방미인 작가이다. 그녀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야기가 들리는 것 같다. 거창한 것보다 소소한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작가는 2018년 자신의 생활 이야기가 담긴 먹이 는 간소하게를 출간하였다. 먹이는 간소하게(2018) 에는 작가의 텃밭과 그곳에서 나는 농작물, 그것과 연관된 다채로운 이야기가 담겨있다. 전시된 12장의 일러스트는 책의 삽화들 중 일부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동안 작가가 직접 짓는 농사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곳에서 수확한 재료들로 작가만의 소박한 요리 법을 공개하고 있다. 2가지 이야기- 복숭아나무 , 고양이들과 나눠 먹는 한 마리 닭-에서 느껴지는 우리네 생활 속 이야기의 온기를 느껴보고, 그 외 일러스트를 감상하며 어떤 생활 속 이야기들 이 담겨있는지 상상해보는 즐거운 감상이 되길 바란다. 이이남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옛 명화를 재해석하는 흥미로운 작업을 보여준다. 작가는 디지털 기술은 신통하게도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 준다. 고 이야기하면서, 다른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불가능한 만남을 시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해 준다. 조선 초기의 대표작가 안견의 몽유도원도(1447) 를 작가 특유의 시선과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신-몽유도원도(2018) 에 서는 작가가 꿈꿔 온 몽유도원도의 이미지를 안견의 몽유도원도 속에 재현하였다. 안견은 몽유도원도 를 1447년에 안평 대군(1418~1453)의 꿈 이야기를 듣고 3일 만에 완성하였다고 한다. 몽유도원도 의 구성을 살펴보면, 화면의 왼쪽 아래에 서부터 오른쪽 위로 꿈속에 나타났던 장면들이 점층 구조로 펼쳐지는데, 왼쪽에는 현실 세계가, 중간에는 무릉도원으로 가는 동굴과 험난한 길이, 오른쪽에는 복사꽃이 만발한 무릉도원이 펼쳐진다. 이이남 작가의 신-몽유도원도 에는 시원하 게 폭포가 쏟아지고, 산과 들에 알록달록 꽃이 피며, 하늘에는 무지개도 등장하고, 멋진 설경도 보인다. 현실 세계의 잔잔 한 호수와 이상세계의 화려한 복사꽃을 보면서, 환상의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작품을 감상해 보자. 팀보이드는 젊은 미디어아트 그룹으로 로봇을 활용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작업은 산업로봇을 이용해서 연극의 한 장면을 연출한 듯한 영상과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장면 속 로봇은 빠르게 움직이다 순식간에 속도를 줄이는 영화 속 슬로우모션 장면처럼 움직인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에게 낯선 광경으로 매력 적으로 다가온다. 로봇 인 더 미러(2015) 는 동물의 거울실험 을 바탕으로 기획된 영상작품이다. 동물의 거울실험은 동물이 거울을 보고 자신을 인식할 수 있다면 자의식이 있다고 판단하는 실험으로, 작가는 과연 로봇이라면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한다. 로봇도 거울을 보고 아, 이게 나구나! 라는 인식이 가능 하면, 로봇으로 대변되는 기계들도 자의식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상상을 하게 됐고, 기계의 오작동 (입력값 이외 의 다른 움직임)을 기계가 자의식을 갖는 포인트로 대입하여,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 구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가의 상상력이 기술과 만나 생경한 장면을 연출하며,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백남준은 1932년 서울에서 태어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2006년 1월 29일 타계하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함께 광범위한 작업을 했다. 특히 백남준은 수 많은 모니터의 사용을 통해 비디오 설치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설치미술의 가능성에 새로운 차원을 더했다. 작가는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정보매체로서의 가능성을 어두운 밤하늘을 비추는 달에 비유하며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달에 사는 토끼(1996) 는 달과 텔레비전을 하나의 정보매체로 바라본 백남준의 여러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TV 모니터 안에 둥근 달이 떠 있고, 나무로 만들어진 토끼가 화면 속 달을 바라보는 작품이다. 달은 인류 최초의 텔레비전. 이라는 작가의 말을 토대로 제작 된 작품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달에 토끼가 산다는 상상을 하였다. 그 달에게 소원도 빌었다. 그래서 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였고, 달에 사는 토끼는 그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청자였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청자였던 토끼가 대화의 상대인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건네는 것 같다. 자신이 들었던 수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일까? 자신만의 이야기를 달에게 들려주는 것일까? 강익중은 3인치의 미니캔버스를 연결하여 설치하는 작업으로 유명하다. 3인치의 미니캔버스에 작가는 자신의 일 상 속 오브제, 풍경, 기억 등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리고 그것을 모아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또한 작은 캔버스를 벗어나 커다란 정사각 캔버스에 작가는 연결이 라는 주제의 달항아리를 그린다. 달항아리는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각각 만들어, 하나로 붙여 굽는 방식으로 제작된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알고 있는 항아리의 제작 방식과는 사뭇 다른 제작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달항아리를 작가는 너와 나, 남과 북, 나아가 전세계를 잇고 싶다는 작가의 희망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달항아리, 빨강과 파랑(2018) 은 이런 작가의 희망과 꿈이 담겨있는 대형 회화작품으로 반짝거리는 달항아리만큼 그 의 희망과 꿈의 이야기들이 속삭이듯 반짝거리는 것 같은 최신작이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반짝거리는 희망과 꿈을 담아 표현해보고, 소망과 염원을 담아 작가의 희망과 꿈도 함께 응원해 보자. 경기도미술관과 강익중 작가가 함께한 5만의 창, 미래의 벽(2008) 어린이벽화프로젝트는 2008년 시작되어, 2018년 10주년을 맞이하는 공공미술프로젝트이다. 전국의 5만 어린이들의 꿈을 담아, 33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함께 완성한 대형벽화는 경기도미술관의 찾는 관람객들과 10년간 마주하며 시간을 담아가고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담아,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인 대한민국의 통일을 염원하여 강익중 작가가 전 세계에 진행하고 있는 어린이벽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작가는 대한민국이 통일이 되는 그 날까지 어린이들의 꿈을 계속 모으고, 모인 꿈들로 통일 된 대한민국에 꿈의 다리를 연결하고자 한다. 우리도 5만 어린이들의 꿈을 감상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 꿈, 현재의 꿈, 미래의 꿈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보는 시간 을 가져보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