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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2019 GAP (GlassBox Artist Project)展
기간| 2019.03.08 - 2019.03.30
시간| 10:00 - 19:00
장소| 봉산문화회관/대구
주소| 대구 중구 봉산동 125
휴관| 월요일, 설, 추석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53-661-350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최선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installation views_최선_1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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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GAP_천국보다 낯선
    
    평범한 사람들에게 현실은 녹록지가 않다. 낯설기만 한 이(현) 세상, 열정적이고 의지가 강할수록 더욱 그렇다. 그래서 천국을 꿈꾸지만, 다시 말해 신세계를 꿈꾸지만, 천국이라 생각했던 그곳(미국) 역시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 혜화동 독립영화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던 것인지..., 멜랑콜리했던 세월이 대변되는 듯했다. 새로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이방인처럼,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에게 이 세상 혹은 저 너머의 세상은 신기루처럼 멀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갈구한다. 영화관람 후, 영화는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영화 제목을 수차례 마음속으로 되뇌며, 알 수 없는 세상과 삶 사이에서 나름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 세계를 추구하는 일이 하염없이 두렵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는데, 여전히 이 세상이 낯설기에… 그때를 회상하며, 2019년 <천국보다 낯선>이란 타이틀로 전시를 소개하려 한다.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유리상자를 통해 소개된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서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인간 삶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부분 뭔가 결여되거나 비판적인 모습들이었다. 모더니즘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고, 일탈을 추구하면서 이 세상에 대해 외침과도 같았다. 이러한 내용을 하나로 전달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 다시 역으로 주제에 가깝게 작업하는 작가들을 우선으로 주목했다. 영화 <천국보다 낯선>이 필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이러나저러나 같은 결과를 얻게 되는 회의적인 현실 세계를 마주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본적 없는 천국이란 이상세계에 대한 낯선 믿음과 자신의 위치를 찾아 헤매는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젊은이들의 고뇌와 열정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픈 이야기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고민하고 작품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럼, 작가들이 말하는 세상 혹은 바라보는 곳은 어떤 곳일까!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곳이기에 작가들의 해석으로 만들어진 세상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는 듯 보이기도 하고, 좀 더 나은 이상을 추구하기도 하며, 현실을 미적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이 또한 낯선 풍경이지만 멋진 세계다. 제각각 다른 형태와 내용으로 펼쳐지는 작품들이 뒤섞여 새로운 풍경 속으로 관람객을 인도한다. 이 모든 것들은 우리 사회의 풍경이면서 구조적 사회란 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이기도 하다.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본 풍경은 낯설지만 부조리한 우리네 풍경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 참여해 준 작가들의 작품들을 살펴보면 현실(일상)에서 사용되는 사물 혹은 대상의 특징을 탈각시킴으로써 조형미를 구현해내는 특징이 있다. 특히 뒤샹이 이루고자 했던 탈맥락화 전략과 닮아있는데 오브제 투르베(Object trouve)의 미학적 접근으로 시작하고 있으나 조형적으로는 미적 환영의 또 다른 재현을 통해 상상의 깊이를 더한다. 때론 인식의 대상인 물질에서 질료로 거슬러 올라가 접근하는 작가들의 시도는 실험적이며 기발하고 순수하다. 그러한 측면에서 정기엽과 최선은 가장 필자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작가의 예술을 통한 사회적 발언, 특히 표현 방법이 남다른데 각각의 특징에 대해 생각하면서 전시장별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1전시실을 가득 채운 최선의 회화는 회화가 아니다. 어떠한 정보도 없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하면 누구든 쉽게 추상미술로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을 가만히 들여다보거나 작품캡션을 보면 붓으로 그리는 그림이 아닌 생명체가 남긴 흔적들로 인간 본연에 가치를 두고, 침, 입김, 숨, 똥 때론 식물 또는 동물의 분비물이나 사체, 뼈다귀 등을 이용해 만들어낸 설치미술임을 알게 된다. 그럼, 이 정도의 정보를 통해 이 작가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면 분명, 모더니즘 회화의 본질적인 가치나 의미를 부정하고 타파하는 듯한 아방가르드적 작품세계로 비추어질 것이다. 최선은 추상회화가 안고 있는 문제점 또는 한계를 아주 근본적으로 지적하면서 자칫 허무주의로 기울 수 있는 추상회화의 한계를 넘어서는 시도가 엿보이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모호한 듯 분명한 그의 작품은 시각적으로 완성도를 가진다. 그의 작품은 가치나 의미를 부정하는 듯하나 작품 하나하나가 가지는 의미는 그 어떤 작품보다도 강렬하다. 그래서 그의 언변과 작품 앞에 서면 숙연해진다. 바로 그의 비판의식과 실천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상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극단적인 욕구의 현상이자 결과물인 추상회화의 본질을 끊임없이 실천하기 때문이다.
     
    <지렁이 글씨>, <자홍색회화>, <흰 그림>, <멀미>, <소금은 말한다>, <동아시아의 식탁> 이렇게 7개의 작품이 소개되는 1전시실에서 필자가 최초 주목한 작품은 <자홍색회화>였다. 구제역으로 생매장된 돼지 숫자 332만 마리, 돼지의 등급을 나타내는 숫자를 높이 2.8m, 가로길이 23m가 되는 천에 마젠타 잉크로 찍어 설치한 작품이다. 생매장된 돼지의 숫자에도 놀랍지만, 그 수를 채운 최선의 <자홍색회화>란 작품도 놀랍다. 인간 중심적인 이 세상의 상황에 침묵하지 않고 그 진실을 작품으로 구현해내는 최선의 시도는 아름답다. 이어, 작은 열에도 쉽게 녹거나 굳어버리는 돼지기름으로 그린 <흰 그림>은 감상을 위해 그림 앞으로 다가설수록 감상자의 체온으로 녹아서 흘러내리는 작품이다. 그래서 이 그림은 많은 사람이 볼수록 눈앞에서 흘러내리는 다시 말해 사라지고, 사람이 작품으로부터 물러나면 다시 흰 고체의 회화가 된다. 인간의 존재는 어쩌면 다가서는 것만으로도 돼지를 눈물 흘리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회화의 환영과 장식성을 넘어서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는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예술의 의미를 묻고 구축해내고자 하는 작가의 신념과도 같다. 특히 숨, 체온, 바람, 냄새와 같은 보이지 않는 감각적인 질료를 사회적인 현상의 부조리함으로 대변되는 대상 혹은 사건과 연결해 미술이라는 카테고리 안에서 풀어내고 있다.
     
    오월과 유월 사이, 작가는 청와대 앞길을 지나다가 오디 열매가 바닥에 떨어져 생긴 흔적을 발견하게 된다. 검붉은 오디가 떨어진 자리를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며 생긴 얼룩이 작가에겐 핏빛으로 얼룩진 민중의 모습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특히 4.16, 5.18, 6.25 등 가장 아름다운 계절에 총알 자국이 남기고 간 핏자국처럼 보인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유월의 오디>는 청와대라는 국가의 최고 권력이 통하는 상징적인 곳에서 마주치게 됨으로써 우리의 기억 속의 아픈 역사의 풍경화로 재현된다. 이어, <동아시아의 식탁>은 작가가 일본에 있을 때 ‘동아시아의 꿈’이란 주제로 작품을 출품해 주길 원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냉랭한 기운이 감도는 세계정세 속에서 특히 한국, 중국, 일본이 서로를 갈구하는 꿈같은 이야기를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작가는 삼국의 어떤 공통된 무엇을 찾아야 했고, 그 안에서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그것은 뼈를 우려낸 국물을 먹는 공통된 음식문화였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한식당, 중식당, 일식당을 오가며 뼈를 모아 방부 처리해 전시장에 소개하게 된다. 우리가 이 작품에서 느끼게 되는 점은 공통된 문화를 가진 어쩌면 동족일지도 모르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다툼이다. 특히 닭뼈, 돼지뼈, 소뼈의 나열은 상징적인 이미지로 하나로 모여있는 우리네 풍경이기도 하면서 서로 싸우고 남겨진 잔여물 같기도 하다.
     
    2전시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작품은 정기엽 작가의 <제주예수 2019>로, 제주의 알파벳 표기인 Jeju를 jesus로 잘못 읽은 경험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제주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보통 아름다운 자연 즉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이란 사실만 인지하고 제주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나 제주는 4.3사건으로 대규모 학살이 일어난 아픔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또한, 지금 제주의 모습은 이전과 또 다르다. “노른자 땅은 중국인들이 차지해 카지노가 들어서고 전망 좋은 곳은 일반인이 들어가기 힘든 고급리조트가 차지해 버렸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유치하기 짝이 없는 테마파크들이 난립해 있다.” 정기엽은 제주가 자본에 의해 겪는 희생이 4.3사건이라는 역사적 희생과 다르지 않아 더욱 처량하다고 전한다. 청정의 이미지로 판매되는 제주를 대표하는 물, 삼다수는 우리나라 시장점유율 일위의 생수로 자본의 힘을 반영한다. 작가는 제주의 희생을 위로(?)하는 제의적 장치로써 ‘물의 묘’를 만들었다. 평소 한국도시의 야경을 보면 쉽게 접하게 되는 수많은 붉은 십자가. 서구에서 십자가는 묘지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인데, 한국의 밤 풍경은 붉게 빛나는 거대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한다. 작가는 이렇게 제주의 풍경이 담긴 작품으로 제주삼다수 50팩을 모아 십자가 모양으로 설치하고 그 안에서 붉은 불빛이 새어 나오게 해 제주의 아픈 기억을 전하고 있다. 십자가로 대변되는 ‘희생’ 체험관인 작품 <제주예수>는 테마파크처럼 십자가 위에 관객이 누우면 세워진 모니터에 자신의 모습을 통해 제주의 또 다른 모습을 경험하게 한다.
     
    3전시실에서 소개되는 정기엽의 <닥쳐올 내일들이 나는 이미 그립다 2019>는 곧 허물어지고 사라질 현재 혹은 과거의 것들에 대한 애착과 아쉬움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의 작품은 가습기와 포그머신을 이용해 신기루처럼 형성된 안개 속에서 아른거리는 풍경을 접하게 한다. 빔프로젝트를 통해 형성된 안개 속 이미지들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자 우주의 섭리를 나타내는 정자와 난자의 이미지, 대성당의 장미창, 석굴암의 부처 등 종교의 본질들을 나타내는 문양 그리고 작가가 어릴적 살던 집과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소리는 공기 중에서 340m/초로 우리에게 들리고, 빛은 진공상태에서 299,792km/초로 우리에게 보인다고 한다. 별빛은 이백만 광년 전의 빛을 보는 것이라고 하는데... 과거의 빛을 현재로 인식하는 것과 같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정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과 이미지로 살짝 어지럽다. 동시에 그 빛 속으로 빨려가듯 느껴지기도 하는데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안내한다. 정기엽은 이렇듯 빛, 물, 공기, 소리와 같은 자연 발생적인 질료를 통해 조형의 미를 구축한다. 그래서 특정 공간에서 연출되지 않는다면 눈앞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듯 신기루와도 같은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의 시도는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현시대하고는 너무나 다른 이미지를 제시하는데 낯선 천국의 풍경처럼 아득하다. 이 작품을 보면서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의 저서 『오래된 미래』가 떠올랐다. 엘레나 노르베지 호지가 제시하는 오래된 미래는 라다크 전통사회가 지향했던 공동체의 삶이야말로 미래에 있어야 할 우리의 이상적인 세상임을 소개한다. 앞서 소개한 작품<제주예수 2019>도 그런 것처럼 과거의 것을 재개발이란 명분으로 부수고 파괴해 과거와 현재를 부정하고 있는데 개발로 인한 부작용을 익히 알고 있음에도 행해지고 있는 현 실태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빛의 속도로 시간을 이야기한다면 과거 현재 미래는 나누어진 것이 아닌 모두 동시성을 가졌다고 이야기하는 작가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 항상 근원(뿌리)을 찾아 헤매는 정기엽은 신기루를 만들어낸다. 이는 꼭 사람들이 근원을 쫓지만, 빛의 속도로 맞이하는 본질의 의미를 찰나에 잊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듯, 이 세상은 꿈처럼 몽롱한 세상이다.
     
    국내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하면서 유리라는 매체를 작업의 주요 재료로 사용했던 정기엽 작가는 최선 작가와 유사하게 형태보다는 대상의 질료에 좀 더 치중한 추상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오고 있다. 다만 모더니즘의 환영이 아닌 재료가 가진 특징을 통해 그 재료가 가진 본연의 가치를 드러내고자 한다. 뜨거운 상태의 유리에 대롱으로 숨을 불어 넣어 기포를 만드는 행위를 불어로 수플라쥬(soufflage)라고 하는데‘불기’가 숨을 전제로 하는 입김, 숨결뿐 아니라, 기(氣), 영감이라는 뜻도 품고 있기에 생명의 원리로서의 호흡과 구약의 인간 창조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며 유리제작의 숨은 의미를 강조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리는 숨이 남기고 간 공간이자 결국 사라진 숨에 대한 기억임을 역설한다. 이번 전시에 유리작품은 출품되지 않았지만, 작가가 재료를 통해 접근하고자 하는 근본원리는 같다. 공기 중에 만들어진 이미지들은 기계가 멈추면 이내 사라지는데, 이는 공(空)을 강조하는 작가만의 조형적 특징이자 예술작품이 우리에게 남겨줄 것은 기억의 한 자락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천국에서의 이방인들, 어쩌면 누구에게는 천국일 수도 있는 이 세상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작가들, 그들이 삶과 예술을 대하는 태도와 용기를 존중하고 흠모한다. 나은 세상을 꿈꾸고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애달픈 목소리가 담긴 이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마음으로 전달되길 바란다.
     
    누스페어 동시대미술연구소장 강효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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