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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김신애 | NOT JUST TINY BUT ABSTRACT
기간| 2019.05.16 - 2019.06.08
시간| 10:00 - 18: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신애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installation view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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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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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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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
  • 			Episode #1
    이 문장은 동그라미로 시작해서 점으로 끝난다. 하나의 문장에는 다양한 선과 모서리가, 또 여러 형태의 집합과 여집합이 존재한다. 문장의 점과 선, 형태를 그리며 시작한 이 글은 의미 전달체로서의 문장이 아닌 존재 자체로 경험의 요체가 되는, 그러니까 문장의 선과 점이, 그 형태와 구도가 직관적으로 경험을 촉발시키는 망상적 장면을 떠올려본다. 아무것도 없는 모니터 화면 위 깜박이는 커서를 응시하다가 쓰이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자기 번복과 논쟁의 흔적으로 새겨지는 문자의 집합. 그 집합은 제한된 의미가 아닌 순간적 사건의 정서적 군집으로 인지될 수 있을까? 특정 의미나 내러티브에 봉사하지 않겠다는, 외부로 향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글의 이중성은 애초에 설득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눈으로 대상을 본다. 하지만 그 대상의 인지는 주로 의미체계 내에서 이뤄진다. 지금 이 문장을 읽으면서 그것의 직선과 곡선, 꺾임과 모서리, 공간과 구조에 몰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의미 전달을 위해 쓰여진 글을 형태가 아닌 의미로 읽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글을 읽는 듯한 인지의 과정을 대상에 상관없이, 그러니까 대상이 어떤 의미를 전제했느냐 혹은 하지 않았느냐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적용시키고 있는지 의심해볼 수 있다. 마치 습관처럼 대상을 의미로 기억하고 있는지 자문해볼 수 있다. 그리고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눈앞의 세계는 실제로 존재하는가? 모든 대상이 결국 의미체계로 수렴된다면 눈앞의 대상은 그 자체로 온전히 존재한다고 볼 수 있는가? 인지되지 않는 대상, 의미화할 수 없는 대상은 그 존재성도 부정당해야 하는가?
     
    하나의 대상을 특정해보자. 지금 서있는 전시장. 말끔하게 정리된 벽과 단단한 바닥 그리고 높은 천장, 그 안에서 작품을 감상하거나 텍스트를 읽고 있는 관객들. 그것이 전시장이 공개하는 물리적 환경이자 일반적 행위이다. 하지만 별다른 게 없어 보이는 그 장면에는 습관적 인지패턴이 포착하지 못하는 무수한 대상과 세계들이 존재한다. 만약 전시장에 여러 관객들이 있다면 혹은 오프닝과 같은 행사가 진행 중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상상해보자.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관객들, 대화가 뿜어내는 동경과 실망, 동의와 조소, 누군가의 가방 속 노트북과 먹다 남은 음료수, 행사를 위해 전시장에 비치된 의자와 테이블, 그 위에 아무도 먹지 않아 말라버린 빵과 과일, 아직 공간에서 완전히 빠져나가지 못한 페인트 입자들, 그 입자의 냄새에 취한 벽 뒤의 벌레, 또 공간을 돌아다니고 있는 감기 바이러스와 그 옆에서 분열하는 세포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대상들까지 포함한다면 실로 무한한 세계가 하나의 대상-공간에 펼쳐진다. 이들은 서로 관계를 맺으며 또 고립되며 전시장이라는 하나의 대상, 세계를 구성한다. 그렇게 습관적으로 이해, 정리되는 눈앞의 세계는 인간의 인지 범위보다 훨씬 넓은 영역을 점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pisode #2
    이 종이는 앞뒤로 면을, 위아래 양 옆으로 선을 갖는다. 얼핏 그렇게 보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종이의 옆 날은 나름의 면적을 가지므로 선이 아닌 면으로 봐야 한다. 종이는 선과 면이 아닌 아주 얇은 덩어리로 존재한다. 종이뿐 아니라 3차원의 세계에서 인지되는 대부분의 선과 면은 면적과 부피를 갖는 얇고 긴 덩어리 혹은 그 부분이다. 어쩌면 선과 면은 개념으로만 혹은 수학적 수치로만 존재하는 허구의 대상일지 모른다.
     
    그럼 다시, 지금 서있는 전시장. 그곳에서 보이지 않는 무수한 점과 선을 상상해본다. 개념과 수치로만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시성의 신화를 위해 새워진 공간을 인지해보려 한다. 먼저 전시장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길이를 측정한다. 하나의 공간에는 여러 높이가 존재한다. 보가 지나는 곳과 2 층까지 뚫려있는 곳, 그리고 천장에 있는 조명 레일, 냉방 장치, 그 외 여러 용도로 만들어진 구멍 등을 생각한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장의 여러 높이들을 기록하고 이를 L1부터 L7까지, 총 7가지로 정리 분류해 본다. 그리고 각 높이와 같은 선상에 존재하는 점을 헤아린다. 여기서 말하는 점은 선과 선이 만나는 지점, 예를 들어 공간의 모서리, 천장의 보와 벽이 만나는 곳, 천장에 뚫린 직사각형의 꼭짓점 등이다. 그렇게 전시장의 높이들, 또 같은 높이의 모든 점들을 기록 분류한 후 이를 일종의 데이터로 변환해 책으로 엮는다. 전시장의 높이-선을 기준으로 점들을 기록해 가상의 면을 만들고 이를 차곡차곡 쌓아 볼륨-공간을 갖는 책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존재하지 않는, 하지만 감각 가능한 공간의 점과 선은 실제 면과 볼륨으로, 또 다른 공간으로 전환된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비슷한 접근이 추가된다. 전시장 도면 위에 삽입 가능한 사각형을 그려보고 그것의 총 길이를 컴퓨터 프로그램 상의 색상 값으로 변환시켜 같은 색의 입체를 만든다. 또 천장에 뚫린 정체 모를 사각형 구멍, 그리고 벽과 바닥 사이에 존재하는 긴 틈의 감각을 영상으로 송출한다. 전시장에 존재하는 모든 선의 길이를 측정하고 같은 길이의 실을 뭉쳐 공간 한 곳에 위치시키는 등의 행위도 가능하다.
     
    위 시도는 상상적 세계인 점, 선, 면을 실제 대상-전시장을 인지하는 경로로, 또 다양한 인식의 태도를 환기시키는 장치로 설정한다. 실제로 전시장에서 기록 분류한 선과 점들은 여러 의미장을 개방하는 방식으로 형태적 매체적 전환을 맞는다. 우선 높이와 그 점들은 원래 위치에서 탈각되어 책 안으로 재배치된다. 마찬가지로 전시장의 본래 길이는 색상 값으로 그리고 다시 조형적 구조와 질감을 갖는 덩어리로 변형된다. 또 공간 속 선의 가변성은 거창하지 않은 미세한 움직임을 드러내는 영상으로 재생된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점, 선, 면의 세계에서 돋아난 현재의 인지를 허구적인 것, 상징적인 것으로만 이해해야 할까. 실제와 허구를 구분하는 것은 인간의 지각일 뿐 두 세계 모두 분명히 존재하는 실재는 아닐까.
     
    Episode #3
    그리고 이 종이는 비스듬히 접힌다. 하얀 종이가 반으로 비스듬히 접히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종이는 접히면서 또 다른 면과 선을, 공간과 입체를 만들어 낸다. 접힌 두 개의 면 사이에는 분명한 선이 드러나고, 하나가 되지 못한 면들은 공간과 볼륨을 만들어 낸다. 여기서 접힌 두 개의 면을 구분해내는 선은 일종의 흔적이다. 종이가 접히지 않았다면, 접힌 면이 사라져버린다면 그 선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처럼 선은 사건을 통해 출몰하는 아주 작고 추상적인 세계이다. 때때로 점과 선은 특정 이론과 관점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한한 세계로 정리되어버리곤 한다. 어떤 대상이 무한하다고 받아들여지는 순간 관련 사고는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허무하게 녹아버린다. 종이를 접는 행위는 그렇게 무한의 세계로 다가오는 대상에 특정 관계를 가설하려는 시도이다. 전시장의 여러 물리적 환경적 요소를 점, 선, 면의 성질로 해석하고 이를 데이터로 변환해 시각적 형태와 매체로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은 관계로 도드라지는 특별한 관점으로서의 대상-전시장을 공유한다. 하얀 종이를 비스듬히 접듯 점, 선, 면이라는 무한의 대상을 실제 세계로 특정해내는 것이다. 그렇게 얼핏 공허하게 또 건조하게 다가오는 행위들은 전시장에 가설 가능한 다양한 인지의 단면을 공유하며 그것이 언제든 다른 사고로 전환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행위에서 전체, 총체의 개념은 성립되지 않는다. 공간의 모든 높이와 길이를, 점과 면을 기록하는 과정은 대상을 전체로 묶어내려는 시도가 아니라 대상과의 관계를 포괄하고 그 정황을 시각화하기 위한 행위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결국 전시장의 사건(episode)이란 급진적이고 유일무이한 발생이 아니라 반복된 행위와 통제된 기호로 전달되는, 대상의 다양한 성질과 보이지 않는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관계의 축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상에 근본적으로 접근하는 방식, 습관적 사고가 은폐해왔던 세계를 재발견하는 길은 쉽게 대상화될 수 없는 것과의 관계를 설정하며 비로소 가능해진다고 설명한다. 공간에 무수하게 그려지는 상상적 선과 점들은 전시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도, 자기만의 신화를 축성하려 애쓰지도 않는다. 그것은 쉽게 감각되지 않지만 결코 의미 없는 세계가 아니다. 확인했듯 그 세계는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한다. 지속적으로 재발견되는 거대한 세계, 전시의 사건은 그 세계를 남김없이 소비하지 않는다. 다만 절제된 사고와 축적된 관계로 전달할 뿐이다.
     
    권혁규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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