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 사각형, 세상을 품다 김순선 사각형은 두 개의 수직선과 두 개의 수평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수직선은 따듯함을 수평선은 차분함을 품고 있다. 또한 수평선의 윗선은 유연성, 경쾌함, 해방감을 느끼게 하며, 아랫선은 농밀함, 무거움, 묶여있는 느낌을 준다. 수직선 중 왼쪽 선은 수평선의 위쪽 선과 마찬가지의 느낌을 불러일으키며, 오른쪽 선은 수직선의 아랫선과 비슷한 느낌을 주지만 그보다 더 센 느낌을 준다고 한다. 왼쪽을 향한다는 건 먼 곳을 향한 움직이며, 오른쪽은 휴식을 위한 집으로 향하는 움직임이라고 한다. 또한 사각형 안에서 볼 수 있는 대각선은 그 기울기에 따라 긴장의 정도를 달리한다고 한다. - 칸딘스키, <점·선·면 - 회화적 요소의 분석을 위하여>, 차봉희 역, 열화당, 2019, 103-113쪽 참조 우리의 주변을 둘러보면 사각형이 참 많다. 태극기 및 그 안의 쾌, TV, 스마트 폰, A4용지, 노트북, 책, 테이블, 캔버스, 위에 조감한 피라미드, 빌딩과 그 유리창, 바둑판, 논, 몬드리안, 권투의 링... 이 사각형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가? 사각형 안에는 칸딘스키의 말에 따르면 네 개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유병호의 그림에서 노란색이 위에 있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의 그림에는 삼원색 중 붉은색이 드물다. 과연 없는 걸까? 그리 짐작할 수도 있겠지만, 파란색은 붉은색을 품고 있다. 푸른 지구가 붉은 마그마를 품고 있듯 말이다. 어쩌면 태양은 자신을 이 세상에 드러내기 전에 파란빛을 먼저 던져놓는지도 모른다. 노란빛은 아마도 그 전초병일 것이다. 비와 눈은 찬 공기와 뜨거운 공기의 만남의 결과이다. 비는 메마른 대지를 적셔 초목이 자라게 하고, 눈은 땅 밑의 생명을 따스하게 감싸고, 서서히 자신을 녹여 혹독한 겨울 속 뿌리를 적신다. 이것이 Blue Jazz다. 냉정과 정열의 춤이며 변주다. 사각형이 인간의식의 산물이라면, 곡선으로 이루어진 면은 자연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곡선은 하나의 힘이 반영된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힘이 다양한 방향에서 작용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는 삶의 흔적이기도 하다.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고대인은 그 흔적으로 점을 치지 않았던가. 이 전시에는 두 면이 만난다. 그 충돌이 비가 되었으면 한다. 이 대지에, 이 세상에 생명의 비가 되었으면 한다. ⓒ (출처 = 모리스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