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HIBITION
조경옥 개인전
기간| 2022.03.30 - 2022.04.05
시간| 10:00 - 19:00
장소| 갤러리이즈/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관훈동 100-5
휴관| 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6-6669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조경옥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이미지출처 = 갤러리이즈)


  • (이미지출처 = 갤러리이즈)
  • 			음악을 그리다.
    
    1. 음악을 분해하고 조립하다.
    
    미술은 감정과 생각을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작가가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음악회의 소리와 느낌이다.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중고등학교, 
    대학, 해외 연수 시절까지 이십여년 동안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했고 수없이 많은 연주를 듣고 보았다. 하루 10시간 이상의 연습을 한 작가는 음악회 
    에서 더 입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듣고 느낄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자신이 듣고 느끼는 음악을 캔버스에 담고 싶었다. 앞에 서면 음악이 들리고 감동이 
    느껴지는 미술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작가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했던 다빈치를 추적했다. 그는 제스처를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모티 코르포 
    랄리(moti corporali)라 부르는 몸동작을 자주 그렸다. 하지만 그가 더 주목했던 것은 ‘아티 에 모티 멘탈리’(arti e moti mentali)라고 하는 ‘마음의 
    태도와 동작’이었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언제나 허리띠에 작은 수첩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과였다.
    작가는 음악을 유심히 관찰하고 고민을 거듭했다. 음악가로부터 음악은 관객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관객은 음악과 음악가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작가는 음악을 수없이 분해하고 조합하면서 음악에 대해 철학적 해석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철학을 캔버스에 옮기기 위해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그 오랜 사유와 고통의 결과물이 이번 전시이다. 
    
    2. 다섯 손가락
    
    2-1. 소리의 무늬를 시각화하다.
    미국의 언어학자 벤자민 리 워프(Benjamin Lee Whorf)는 소리의 정형화(patternment of sounds)에서 언어의 의미가 시작된다고 했다. 즉, 소리에 
    있는 무늬를 의미의 단초로 본다. 무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소리의 무늬고, 다른 하나는 시각 무늬다. 그런데 작가는 소리의 무늬를 시각화
    하려고 시도했고 결국 성공했다.
    작가는 선과 색으로 음악의 무늬를 그려낸다. 음악가의 연주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선과 색을 선택했다. 격정적인 음악가의 선과 색은 매우 
    빠르고 거칠며 부드러운 음악가의 선과 색은 여유있고 우아하다. 그 작업을 통해 음악가의 연주는 캔버스에서 생동감 있게 나타난다.
    
    2-2. 음악가의 내면을 드러내다.
    주변에 많은 음악가를 둔 작가에게 있어 연주는 음악가 그 자체이다. 연주는 음악가의 내면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러면 음악가의 내면을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을까? 작가는 연주에서의 느낌을 시각화해보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오랜 고민 끝에 작가는 손글씨에 주목했다. 손글씨는 
    성격 등 내면을 드러낸다. 음악가의 손글씨에 그의 내면이 드러나 있으니 연주의 느낌과 손글씨를 함께 분석하면 내면을 시각화할 수 있을 것이다. 
    화면을 분할하여 한 면에는 음악가의 연주를 구상으로 표현하고 다른 한 면에는 내면의 선을 추상으로 표현했다. 추상에는 음악가의 손글씨와 연주의 
    느낌을 분석해서 찾은 내면의 선을 형상화했다. 구상과 추상은 서로 같은 느낌이기도 하지만 다르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구상과 추상이 조합되면 
    음악가의 내면은 있는 그대로 밖으로 드러난다.
    
    2-3. 부분의 합으로 전체를 뛰어넘다.
    피아니스트의 손은 가슴보다 작지만 실제 연주에서는 손이 몇 배 더 크게 보이기도 한다. 또 지휘자의 얼굴은 정면을 향하지만 때로는 손은 반대 
    방향을 향한다. 이러한 시각과 관점은 서양의 전통과는 정반대이다. 서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전체를 먼저 설정하고 그 안에서 부분을 찾는 방법을 
    취해왔고 원근법을 진리로 여겼다. 그러나 그런 원칙을 고집하면 음악을 시각화하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작가는 먼저 부분을 보이는대로 그렸다. 
    부분이 완성되면 그를 합한 것이 전체가 될 뿐이다. 작가의 시각과 관점에 따르면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를 뛰어 넘는다. 
    이것은 시각과 관점의 혁명이다.
    
    2-4. 여러 개의 장면을 하나의 화면에 담다.
    관객은 음악가를 정지된 모습으로 인식하지 않지만 움직임을 그대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관객은 음악가의 인상 깊은 장면에 꽂히기도 하고 그 이전의 
    연주 장면을 마음 속에 갖고 있기도 한다. 그러면 그 장면은 현재의 연주 장면과 오버랩된다. 작가는 음악가의 몇 개의 모습을 하나의 화면에 배치하여 
    실제 연주에서와 같은 감흥을 표현한다. 같은 음악가의 모습이 2개, 3개가 되어 하나의 퍼포먼스를 만들어낸다. 언뜻 보면 비현실적이지만 이런 
    장면이 현실에 더 가깝다. 작가의 작품을 보면 실제 음악회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진다.
    
    2-5. 관객의 참여로 작품을 완성하다.
    음악이 연주되면 관객은 호응하고 그 호응은 다시 음악가에게 전달되어 공연이 완성된다. 곧 음악가와 관객의 상호작용으로 음악이 완성된다. 
    그런데 미술 작품은 관객에게 보여지기 전에 작가에 의해 이미 완성되고 관객은 작품의 완성 이후에 감상만 할 수 있어서 작품 제작에 관객이 
    끼어들 여지가 없다. 마치 연주 현장이 아닌 녹화 동영상을 보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미술에서 관객이 작품 제작에 참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작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품의 완성을 관객에게 맡긴다.
    관객은 음악회에서 음악가의 얼굴, 손, 다리, 악기 등을 유심히 나누어본다. 얼굴을 보다가 손을 보았다가 악기를 보기도 하고 다시 얼굴을 본다. 
    이렇게 보지 않으면 훌륭한 연주를 제대로 감상할 수 없다. 그래서 작가는 음악회를 여러 개의 캔버스에 나누어 그렸다. 이들을 연결하면 전체가 
    되지만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으로서의 기능만을 담당하지는 않는다. 부분은 전체를 이루는 구성 요소뿐만이 아니다. 부분을 그린 화면은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 관객은 그 여러 개의 부분들을 재배치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그 재배치는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작가의 의도와 전혀 
    다르기도 하다. 이제 관객은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고 작가와 분리된 존재도 아니다. 관객은 작가가 되고 작가는 관객이 된다. 
    
    3. 혁신은 역사를 만들 것인가?
    
    작가는 이렇게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새로운 세상에 도전했다. 하나하나가 새로운 장르를 만들 정도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런 혁신적인 시도는 
    지금까지 미술 역사에 없었고 음악사에서도 없었다. 이렇게 굵직한 새로운 시도들이 한 번의 전시회에 나오는 일은 매우 드물다. 그것도 첫 번째 
    개인전에 나온다니 놀랍다. 세상에 없던 새로운 장르를 만든 작가는 미술과 음악의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앞으로 작가의 
    노력과 관객의 평가에 달려있다. ■ 현 우 현 미술평론가
    
    (출처 = 갤러리이즈)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팸플릿 신청
    *신청 내역은 마이페이지 - 팸플릿 신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부 이상 신청시 상단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확인
    공유하기
    Naver Facebook Kakao story URL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