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봄이 봄처럼 오다. 김혜린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봄은 봄처럼 온다. 봄처럼 오는 이 봄이라는 말에는 무수히 많은 봄이 있다. 무수한 것들에는 ‘봄을 봄’과도 같은 언어적 유희 또한 개입하면서 수많은 단어와 그에 따른 서정과 낭만, 이지들이 가지로 자라서 뻗기 시작한다. 우선 봄은 솔직하고 천진난만한 유아가 근사해 보이는 것에 대한 호감 표시를 하듯 원초적이면서도 꾸밈이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차가운 지성의 귀퉁이에서 한 시절을 보낸 봄은 뜨겁고도 솔직한 입 안에서 가장 먼저 맴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봄은 그 안에서 숨겨지듯 숨어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살얼음을 걷어내듯이 발음되어 분출된다. 지성이 하나쯤은 내어주는 조각을 붙잡아 두면서 때를 기다리던 봄이 눈으로 코로, 그 민감한 신경들과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입 안으로 안착한다. 말 되어지고 싶은 욕구는 마음을 동하게 한다. 혹은 기민한 감각들을 훑으며 깨우고 간 덕분에 마음이 동해서 말 되어지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봄이라는 말을 입속으로 굴리다가 밖으로 내뱉는 순간 봄은 세상을 물들이는 거대한 감각으로 전이된다. 감각들은 저마다의 아가미와 비늘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그것들을 통해 연약하지만 기민하고 섬세하게 호흡한다. 이는 한 겹 한 겹 살아있다는 것과 한 겹 한 겹이 모여 살아간다는 것과도 같다. 이 무수하게 감각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들은 수많은 봄으로 회귀됨으로써 끝없이 이어지고 전개된다. 하나의 담론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추은영은 이토록 호기심을 자극하게끔 소담하게 부풀어 오른 이 오래고 질긴 봄의 몸체를 보기로 한다. 나아가 온갖 감각이 활보하는 널따란 품에 접근하고 그 내부에 진입하고자 한다. 그곳에서 보는 것의 봄과 포용되어지는 돌봄과 그런가 봄으로 유추하고 추측할 수 있는 것들을 꿈꾸고 생각해 봄직한 것들에 대해 희망하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봄이 하릴 없이 많은 봄을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쩌면 은연중에 알고 있던 사실임에 기시감을 느끼거나 경탄할지도 모른다. 혹은 이지들로 판별하기에는 매우 많기 때문에 지극히 낭만적이거나 산만하다며, 이래서는 어느 것 하나도 그 무엇도 될 수 없다며 우울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또한 봄이 타고난 낭만이고 서정이므로 우리는 결코 봄을 외면할 수 없다. 차근차근 봄의 윤곽을 어루만져 주기로 하며 가늘고 뽀얀 새끼손가락을 걸어본다. 봄은 기어이 오고야 말았고 다시금 기어이 올 것임을 알고 있기에 약속한다. 약속에는 사랑이 있기 때문이다. 단지 봄을 봄으로서 말하는 봄을 위해 봄이 그 자체로 봄의 감각일 것을 약조한다. 덕분에 봄은 봄처럼 온다. - 작가노트 : 봄의 아름다움을 찬미하며 냉소적인 미의 향연을 소개했다. 숨죽여 웅크리고 있던 새싹들은 봄을 맞이하려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피며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봄의 서막을 알리며 시작된 사랑은 그 끝을 예측할 수는 없으나 영원히 지속할 수 없으므로 소중하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자연의 섭리를 잊지 않는다면 두려울 것이 없다. 대지가 오랜 침묵을 깨며 본격적인 자연의 대결이 시작되었고, 이 전시를 통해 작은 생명들의 반란을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다. (출처 = 갤러리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