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22.05.14 - 2022.06.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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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2:00 - 19:00 |
장소| | 스펙트럼 갤러리/서울 |
주소| |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211-22/Spectrum Gallery |
휴관| | 일, 월, 공휴일 휴관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2-6397-2212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가| |
설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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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사실 따지고 보면 그것은 정말이지 간단한 구성으로 이루어져있다. 네모난 틀, 그리고 그 안을 위아래 가끔은 조금 왼쪽으로 아니면 간혹 오른쪽으로 까딱거리는 손가락. (주로) 엄지와 검지가 쭉 펴지고 움츠러드는 동안 나머지 손가락은 가만히 무게를 지탱한다. 그렇게 아주 작은 부분만이 좁게 움직이는 동안 화면에서는 읽을 수 있고 없는 것들이 덜컥 등장했다 미련 없이 떠난다. 가령 메일앱을 켜서 받은편지함을 확인하고 메모장 모양의 아이콘 위에 손가락을 올려서 켠 후엔 사파리를 열었다가 인스타그램으로 흘러들어간다. 엄지를 위아래로 쓱쓱 미끄러뜨리다가 종종 어느 지점을 건드리고 이번에는 유튜브로…. 손가락이 한동안 문지르던 스마트폰 화면이 어느 순간 검은색으로 단칼에 뒤덮인다. 설고은의 작업은 그렇게 불쑥 사라져버리기 전에 보았던, 보았지만 고이지 않고 흘러가버린 것들에서부터 시작된다. 한참을 위아래로 미끄러뜨리고 켜고 끈, 영상과 그림과 문자와 소리가 뒤섞인 이미지가 한바탕 지나간 이후 시작된다. 우선 잔뜩 보았던 지난밤의 화면을 헤쳐 본다. 손가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던 이미지들은 하지만 그것과 맞바꾼 뭉텅이의 시간처럼 한데 뭉쳐 벌써 어렴풋해졌다.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다 시선을 옮길 때면 간신히 실루엣만 남은 뿌연 잔상이 두둥실 따라붙곤 한다. 마치 떠나지 말라는 듯이 눈에 매달리지만 깜빡임 몇 번에 금세 사라진다. 뭉글한 형상으로 얼핏 기억하는 잔상을, 그렇게 웅얼거리는 희미한 흔적들을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낚아채 캔버스에 뚜렷이 흡착시킨다. 네모난 화면이 까맣게 뒤덮이기 전 빛을 뿜어내던, 지난밤의 잔상들에 물감의 이름으로 색을 할당하고 순서와 투명도로 역할을 부여함으로써 미끄러져나가던 그것들을 붙잡는다. 다시금 이미지로 만들어낸다. 이제 이미지가 옮겨진 캔버스를 바라본다.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먼저 보인다. 모두 와글와글 빈틈없이 꽉 채워져 있다. 이제 좀 더 훑으며 구분하고 구별해본다. 설고은의 캔버스는 두개의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갖가지 네모들과, 이리저리 활보하며 벋친 얇고 두꺼운 곡선으로 뒤덮여있다. 붓 대신 에어브러시를 거친 물감은 발려있다기보다는 입자로 흩뿌려져있고, 그렇게 형상들은 미약하게 울퉁불퉁한 캔버스의 표면을 메꾸어가며 안착된다. 선명하게, 혹 반투명할지라도 뚜렷하게 각자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자리를 공유하며 겹을 이루더라도 물리적인 높이를 생성하지는 않는다. 쌓이고 쌓이지만 두툼해지지는 않는다. 대신 투사되듯 겹치고 겹쳐 캔버스 표면에 더욱 찰싹 달라붙는다. 미약한 움직임만으로도 옮기고 볼 수 있었던 이미지들이 남긴 잔상은 그만큼 미약하게 금세 어렴풋해지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미끄러지던 잔상들이 안착된 캔버스 위에서, 여기서는 사라지기는커녕 끝없이 불어난다. 계속해서 연결되는 캔버스만큼의 몸집을 불려간다. 그렇게 설고은은 쉼표를 사이에 두고 잔상(after)과 이미지(image) 사이를 겅중겅중 오가며 눈 깜빡임 몇 번으로 사라지지 않는, 잔상으로 일구어낸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최지원 (제공 = 스펙트럼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