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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곽아람 : Look from above
기간| 2022.06.07 - 2022.06.26
시간| 평일 11:00 - 18:00 주말 11:00 - 17:00
장소| 이목화랑/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가회동 1-71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514-8888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곽아람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곽아람 6:21pm
    2018 장지에 수묵채색 181.8 x 227.3 cm
    (이미지출처 = 이목화랑)

  • 곽아람 밤일기 드로잉
    2018 장지에 수묵채색 22 x 27.3 cm
    (이미지출처 = 이목화랑)

  • 곽아람 밤일기 드로잉
    2018 장지에 수묵채색 22 x 27.3 cm
    (이미지출처 = 이목화랑)

  • 곽아람 Gaze Of The Moon
    2022 장지에 수묵채색 45.5cm x 53 cm
    (이미지출처 = 이목화랑)
  • 			하늘 아래의 도시
    
    이선영(미술평론가)
    
    지도같은 사진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된 곽아람의 [look from above] 전에는 지도와 사진, 그림이라는 여러 이미지들이 수렴된다. 이 세 가지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실재와 관련되어 있다. 인간은 여러 방식의 반영 또는 구성을 종합하여 그 자체로는 모호한 실재를 추리하고 직관한다. 시각은 순수하지 않다. 당대와 지역의 지배적인 관습에 물들어있다. 회화는 기계를 통한 이미지의 대량적인 복제가 가능하기 이전의 지배적인 양식이었을 뿐이다. 순수한 시각성을 추구한 인상파 화가는 처음 눈뜬 상황까지 바랄 정도였지만, 그것은 희망 사항이다. 비록 당시의 지배적 관념에 물들지 않은 새로운 관점이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져왔을지라도 말이다. ‘세계의 발견’ 및 인쇄술 등의 발명에 의해 중세의 세계관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르네상스가 대표적이다. 특히 ‘미디어는 메시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미디어의 영향력은 커졌다. 이 언명의 주인공인 미디어 이론가 마샬 맥루한은 ‘지구촌’이라는 말도 정착시켰다. 소비자가 과자 한 봉지를 먹을 때 수많은 원료 수입국의 리스트를 보면서 세계화를 실감하듯, 한 장의 이미지에는 수많은 이미지의 형식이 내재해 있다. 오늘날의 미디어는 지구촌을 더욱 동시대적으로 만든다. 노동/자본의 불균형이 있는 한 세계화는 유토피아가 아니며 그 점은 곽아람의 작품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낳는다. [look from above]라는 부제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이전 작품처럼 도시풍경이지만 옆에서 위로 관점이 바뀌었다. 이전 작품에도 막을 씌운듯한 거리감이 있었는데 대상과 더 멀어진 것이다. 하지만 구글 지도 이미지는 길 찾기라는 목적에 익숙해진 시점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쯤 있는가를 알고 싶은 것은 길찾기라는 기능 뿐 아니라, 인생이라는 보다 긴 여로라는 맥락에서 상징적인 행위다. 지도가 아닌 그림으로 보자면 낯선 시점으로 그려진 일종의 풍경화다. 젊은 작가의 희노애락이 펼쳐지는 장이자 생태계인 도시는 낯설게 나타난다. 낯설게 하기는 전형적인 예술의 방식이다. 곽아람의 이전 도시풍경을 보면 슬퍼할 힘조차 빠진 분위기로 가득하다. 젊은 작가로서 가졌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밤 풍경에 집중됐다. 도시는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상호작용할만한 역동성 없이 현실감은 대폭 삭감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시리즈에서도 색감 외에 형태의 왜곡은 일어나지 않았다. [6;21 pm], [3월 14일]처럼 작품 제목으로 시간대나 날짜가 많이 선택됐다. 그때그때의 감정을 받아낸 A4 용지 정도인 22x27.3cm 크기의 작은 화면들은 일기나 비망록처럼 현실에 힘이 빠져가는 작가의 지지대가 되어 주었다. ‘건드리면 쓰러질 듯한 사람의 관점으로 그린’ [여린 밤]을 비롯하여, [밤 일기]로 붙여진 시리즈 작업은 희뿌연 밤의 풍경을 담은 것으로 미래에 대한 상념에 젖어있다. 낮은 채도의 색채가 만들어내는 축축하고 흐릿한 분위기는 감성적 풍경이다.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는 원래 반듯반듯한 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위성사진도 마찬가지지만, 더 자세히 보기 위해 확대하다 보면 흐릿해진다. 저 멀리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는 마치 신기루처럼 다가갈수록 멀어진다. 어디에서나 보이기는 하지만, 좀처럼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초고층 빌딩은 도시적 환경과 개인의 관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 직선이 아니라 울렁거리는 붓자국 그대로 남아 있는 풍경은 위성지도라는 객관적 대상과 작가의 주관적 느낌이 겹쳐진다. 불안한 풍경에 상응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표현이다. 풍경이지만 외곽선이 명료하지 않고 면을 사용해서 그린 점은 이번 전시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그려진 ‘그림일기’ 100개는 수평적으로 설치되어 단편들이 모여 끝없이 이어지는 파노라마를 만들었다. 그림이 무엇을 당장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작업하는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며, 더 나아가 ‘그림을 발판 삼아 다른 단계를 밟아’나가게 한다. 일기나 비망록같은 기록의 방식은 동어반복이 아니다. 그것은 불안을 해소하고 정신적 안정을 가능하게 했다. 작업이 아니었으면 그냥 흘러 가버렸을 시공간의 단편들이 수집되어 기념비화 된다. 그것은 ‘지금의 중요함을 깨닫는 것’이다. 지금이라는 단편이 충만하게 채워지는 만큼 미래의 불안함은 사라질 것이다. 기록된 현재는 시간이 흐르면 그 변화를 보여준다. 그점은 위성사진을 소재로 작업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2016-2018년 사이에 발표된 [밤 일기] 시리즈에서 2017년 [scene] 시리즈로 넘어가면서 도시를 대하는 시점은 더욱 높아지며, 최근 작업에서는 지도같은 차원까지 변화한다. 작품은 허구나 감성이지만 실제 세계로부터 출발하며, 곽아람의 경우 더욱 그렇다. 작가가 활용하는 위성사진은 지도보다는 구체적이고 풍경보다는 추상적이다. 그것은 지도의 기원에 내재한 자연 기호와 문명 기호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조르주 장은 [기호의 언어]에서 오래전부터 인간은 길을 찾는데 자연 기호를 이용했지만, 이런 지표들로는 충분치가 못했기 때문에 자연 기호에 문명 기호가 결합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문명 기호는 ‘수학적이고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가장 보편적인 언어’를 말한다. 고해상도의 위성사진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기술의 언어가 그러하며, 현재 세상을 보여주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 되었다. 지도는 일종의 기호이다. [기호의 언어]는 지도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지적한다. 하나는 단지 그림을 감상하는 것처럼 지도를 ‘보는’ 태도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를 용도에 따라 ‘읽는’ 태도이다. 곽아람의 경우 이전의 풍경도 그랬지만 보기와 읽기가 결합돼 있다. 물론 기호로서의 지도를 읽는 것은 길찾기가 대표적이지만, 작가는 거기에서 삶에 있어서의 위치 설정에 대한 관념과 정서가 배어든 읽기이다. 조르주 장은 초창기 지도를 만들 때부터 전통적인 제작술은 실체를 모방한 기호를 선호했다고 말한다. 실체를 모방한 그림으로 지도를 그리는 지도제작사는 동시에 화가였다고 밝힌다. 그렇지만 지도는 점차 추상화된다. 조르주 장에에 의하면 유럽인들이 ‘세계의 발견’을 위해 가지고 간 항해지도는 괴물들이 그려진 그림 지도가 아니라 도구 지도였다. 이때부터 진행된 세계화는 앎과 소유, 그리고 지배가 밀접한 탐험이자 전쟁의 발단이 되었다. 추상적인 도구 지도는 이러한 목적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 되었다. 지도가 다시 그림처럼 된 것은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여 비행기를 띄우거나 위성을 쏘게 된 이후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의 육체적 감각과 좀 더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명령어를 입력시켜야 실행되던 초창기 컴퓨터와 연필로 그리듯 입력되는 요즘의 컴퓨터를 비교해 보라. 현대의 사고방식을 대변하는 기호화는 양날을 가진 칼이 되었다. 더이상 저 멀리에 있는 미지의 대륙은 없다. 우호적이지 않은 세계와 대면한 인간은 멀리 가기보다는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재설정함으로서 돌파와 도전을 감행한다. 보이는 위치에서 보는 위치로의 전환은 전능한 창조에 대한 유비가 된다. 작가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고 주로 도시만 그려왔던 뼛속부터 도시인으로, 감정에 충실하든 관념에 충실하든 그 바탕은 도시였다. 위성사진에 바탕 한 일종의 지도역할을 하는 이미지지만, 길에 드리워진 건물의 그림자까지도 실감 나게 그린 방식을 그것을 일종의 풍경으로도 보게 한다. 도로가 보이는 장면은 다소 높은 건물에서 육안으로 본 풍경과도 같다. 도시는 직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지도의 역할을 하는 이미지는 점과 점을 잇는 기하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특정 대상을 알아볼 정도로 다가간 시점은 장소는 물론 계절과 시간을 느끼게 한다. 빌딩의 형태들을 알아볼 수 있는 근접 각도부터, 사각형 지붕들만 보이는 다소간 추상적인 화면까지 여러 층위가 있다. 희뿌연 광경은 대개 황사를 비롯한 오염 때문에 혼탁한 공기를 연상시킨다. 사람은 잘 안 보이지만 광경들은 특정 시공에 고유한 공기에 감싸여 있다, 시간 차를 둔 자료는 변화가 표시되며, 그 또한 작가에게 영감을 준다. 그것은 멀리서 봤기에 해상도가 흐린, 그래서 확대할 때 더 희미해지는 소재의 특성을 반영한다. 장지에 물감을 운용하는 방식도 흐릿하다. 대상을 알아볼 수는 있지만 명확한 선이 아니라 색 점들을 통해 암시된다. 점점이 찍은 색의 덩어리는 인덱스보다는 회화적 과정에 충실하다. 희미한 색/형태가 모이고 쌓여 대상이 된다. 작가가 밝힌 작업 과정은 ‘장지 위에 붓, 먹, 호분과 한국화 채색 물감을 사용해 보일 듯 말 듯 한 색으로 칠하고 말리는 행위를 반복해 색을 덧입혀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 간다. 연하게 칠해진 듯 하지만 물감이 종이에 스며 만들어지는 ‘한국화 특유의 깊이감을 활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자료인 사진과 결과인 회화의 차이를 극대화한다. 한순간에 고정된 사진적 시점과 겹쳐가며 쌓아가는 과정은 차이가 있다. 한국화에도 일필휘지가 있지만, 스케치부터 채색의 밀도가 최초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하지만 보여지는 그대로의 지금 이 자체의 세상을 크게 변형시키지는 않는다. 색은 작가가 좋아하는 청묵 계열로 약간 변화된다. 검정 먹보다는 청묵이 더 자신의 감정을 잘 표현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소간 어두운 현실은 암흑이기 보다는 뿌옇게 나타난다. 감정이 투사된 풍경은 톤이 변화될 뿐 큰 왜곡은 없다. 작가만의 방식대로 그리기 위해 다른 하나는 고정될 필요가 있다. 노동하듯이 쌓아 올린 오랜 작업은 대부분 인공적인 풍경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예술적으로 반복한다. 하지만 만든 세상은 파괴될 수도 있다. 세상 생각보다 쉽지 않죠 시리즈는 작가가 현대도시를 보는 관점이 거의 묵시록적이다. 이 연작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파괴적이고 황폐한 재난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허구적 측면을 더 강조했다. 지상으로 수없이 내리꽂히는 천둥 번개와 곳곳에 화염이 솟구치는 도시풍경은 요즘 뉴스에서 보는 재난 광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세상 생각보다 쉽지 않죠] 시리즈는 2020년 유례없던 긴 장마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고대 폼페이의 지진처럼 ‘한 치 앞도 모르는’과 ‘막을 수 없는’으로 대변되는 재난 그자체로 다가왔다. 미디어로만 접한 재난에 직면해서 전지전능한 초월의 시점을 생각하게 됐다. 프로젝트 스페이스 영등포에서 열린 전시 전경은 이러한 종말론적 풍경이 수많은 [악몽]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준다. 위에서 바라본 시선은 현대인의 생로병사가 일어나는 삶의 장을 레고 블럭처럼 보이게 한다. 이 거리감에 내재 된 전지적 시점은 도시에 관한 한 수동태에 머문 작가를 능동태로 전환시킨다. 어느 장소와 시간대를 어느 규모와 밀도로 작업할지는 ‘창조자’의 손에 달려있다. 회화라는 매체의 불투명성은 현실의 불투명성과 중첩된다. 곽아람이 관객의 면전에 세운 것은 과학기술의 총아, 즉 개념이지만 개념으로만 환원될 수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그것은 관념산수/실경산수 등으로 구별되기도 하는 전통과도 맥이 닿아있다. 주요 매체가 장지에 수묵채색이기에 전통과의 접목은 절묘하다. 최근 작품은 코로나를 포함하여 여러 부정적인 환경에 잠겨있지만 대체로 평화롭다. 얼마 전까지도 그렸던 불가항력적인 재난의 풍경이 남일 같지 않았다. 지금도 지구 한 켠에서 비극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작가가 활용하는 위성사진은 결정적인 가격을 위해 적을 염탐하는 폭탄 눈 시점과 관련된다. 서로가 서로를 손바닥처럼 들여다 보면서 힘의 균형을 유지하려 하지만 균형은 늘 순간적일 따름이다. 곽아람이 이전에 그렸던 재난 풍경은 그 원인이 자연이든 사회이든 균형의 깨짐을 전제로 한다. 요즘 뉴스에 잘 나오는 위성사진은 공격에 파괴되기 전/후의 사진 비교, 민간인 집단학살(genocide)의 증거 등이 담긴 음울한 광경이 대부분으로, 작가가 몇 년전부터 그려왔던 종말론적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상적 풍경도 마찬가지다. 레고 블록처럼 빽빽한 빌딩들은 많은 상념을 낳는다. 평생을 벌어도 내 집 마련이 힘들다는 난맥상으로 얽힌 곳에서 빌딩 숲 풍경은 집 없는 이들에게 박탈감을 줄 것이다. 젊은 작가는 저 자리에서 내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노동을 해야 할 것인가 작업을 해야 할 것인가를 매 순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때 풍경은 사회적 차원을 가진다. 또한 도미도처럼 배열된 상자들은 피할 사이도 없이 위험을 빨리 전파시킬 것이다. 같은 목표를 지향하는 다수의 경쟁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이전에 그렸던 우울한 도시의 밤 풍경과 연결된다. 이번 ‘위에서 바라본 시선’은 우울과 경악을 넘나드는 현실에 대한 감정에 다소간 거리를 두고자 한다. 작가가 주목한 경쟁과 전쟁은 현실이다. 그러나 작가가 하고 있는 작업은 이상이다. 최근에 제작된 작품 [Rainbow-filtered Big Waves]는 재난 이미지의 소비로 부터 피로해졌을 때 그러한 무기력을 타파하고 ‘파도 위에 씌운 무지개 필터로 일말의 희망을’ 담았다.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무지갯빛 파도는 고난과 희망이 밀물과 썰물처럼 치대며 함께 가는 현실을 상징한다.
    
    
    
    (출처 = 이목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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