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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신선우《환상특급 시즌 4 : 블루, 볼케이노, 썸머》
기간| 2022.08.25 - 2022.09.28
시간| 10:00 - 18: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신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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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헤테로토피아 파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인간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5차원의 세계가 존재합니다. 그곳은 우주처럼 광활하고 시간은 영원히 흘러갑니다. 빛과 그림자의 중간 지대이며 과학과 미신의 경계이자 인간이 느끼는 공포심의 저 밑바닥에서부터 지식의 꼭대기, 그 중간에 위치한 이곳은 한 차원 더 높은 공상의 세계입니다. 바로 우리가 환상특급의 세계라고 부르는 곳이죠.” – 환상특급 시즌 1의 오프닝 내레이션

이 전시는 일종의 희곡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회화, 조형물, 설치 등을 이용하여 만든 희곡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정확한 설명일 겁니다. 모두 두 개의 장으로 이뤄졌지요. 각 장 사이에는 일종의 막간극처럼 사이-공간이 존재합니다. 각 장은 독립적이면서 동시에 모종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희곡-전시의 표제는 “환상특급 시즌 4 : 블루, 볼케이노, 썸머”(이하 환상특급)입니다. 한국에서는 1980년대 중후반에 방영되었죠. 제 세대들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문화적 참조물이라 해도 과장은 아닐 겁니다. 이후 유사한 장르의 시리즈물이 양산되었죠. 최근의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블랙 미러, 엑스파일(The X-files) 등도 환상특급이라는 원형에서 파생되었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미국에서 제작한 이 옴니버스 형식의 시리즈는 1960년대에 제작된 후 1980년대, 2000년대 초까지 거듭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성공적인 프랜차이즈 시리즈였습니다. 한국 제목인 환상특급의 영어 원제는 “The Twilight Zone”입니다. 해석하자면 경계가 불분명한 지역을 뜻합니다. 원제를 환상특급으로 번역하면서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는, 그러니까 마치 은하철도 999를 연상시키는 어드벤처 스릴러라는 장르적 성격이 강해진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을 공상과학 소설로 번역한 것과 흡사합니다. 용어에 대하여 알려진 사실은 1959년에 창간한 일본의 SF잡지 SF매거진이 미국의 The Magazine of Fantasy & Science Fiction과 제휴를 맺으면서 판타지와 과학소설이 아닌 공상과학소설로 오역한 게 곧바로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겁니다. 신선우의 희곡-전시는 “번역”에서 출발합니다. “환상특급”과 “트와일라이트존” 사이에는 상당한 의미의 간극이 발생합니다. 당시 한국 풍토에 어울리는 문화적 번역, 또는 필요에 의한 의역이 이뤄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만약 이 둘을 직역한다면 “팬터지 익스프레스”, “경계지” 등으로 표기되었을 겁니다. 신선우는 이처럼 원어와 번역어 사이의 차이로 비롯된 선입견, 고정관념을 데리다가 얘기한 파레르곤(parergon)의 관점으로 전유하고 있습니다. 파레르곤은 주변을 뜻하는 그리스어 파라(para)와 작품을 뜻하는 에르곤(ergon)의 합성어입니다. 데리다는 질문했습니다. 어떻게 작품의 가치가 생성되는지를. 작품 자체로 충분한 것인지, 아니면 액자와 같은 장식, 혹은 장치가 작품의 충분조건인지를. 이런 질문도 파생되었지요. 작품은 주변과 구별되는가, 작품과 작가의 서명은 어떤 관계를 형성하는가.

사실 전시 표제로 명명된 의 영문명을 으로 번역한 것은 당시의 관습을 따른 것이 아닙니다. 신선우는 등가가 될 수 없는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서 발생하는 차이를 주목한 것입니다. 영어 원제를 한역하는 과정에서 “트왈라이트존”이 “환상특급”으로 바뀌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원제로만은 호기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없었거나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더 적합한 용어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신선우는 왜 원어와 번역어 사이에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오차를 드러내고자 했을까요? 아마도 번역 과정에서 파생된 덧붙여지고 지워진 의미들이 작품에 끼치는 영향력을 파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선 희곡-전시의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장
첫 번째 공간에는 기호학적 기제들이 즐비합니다. 세 마리의 조랑말 상이 관람객을 반깁니다. 맞은 편 벽면에는 아시아대륙의 52개의 국기가 색이 반전된 상태로 비스듬히 걸려 있고 #orientalove라는 단어가 적힌 LED 사인보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마치 만국박람회장을 키치적으로 둔갑시킨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있는 작품들은 시각적 기호이자 어떤 상황을 만들어주는 “비평적 장치”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 먼저 이 희곡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작가가 생각하는 환상특급은 추리물에 가까워 보입니다. 적어도 1장의 세계는 관람객을 사건의 목격자로 초대한 게 아닐까요? 여러분을 맨 처음 반기는 건 바로 “수상한 사람”(회화, 설치, 2022)입니다. “영국식 정원 살인 사건”(피터 그린어웨이 연출, 1982)을 연상시키는 작품이지요. 영화 속에서 조각-인간은 유일하게 살인 사건을 목격한 존재입니다. 수상한 사람은 일종의 살아있는 조각, ‘비인간’에 속한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그/것은 침묵합니다. 고전주의 회화에서 개와 같은 순수한 생명체에 증인의 의미를 부여한 것과 흡사합니다. 영화의 원제는 “소묘화가의 계약(The Draughtsman’s Contract)”이었답니다. 이번에도 상당한 의역이 이뤄졌지요. 영화는 17세기 귀족 가문이 화가를 고용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난해한 영화의 백미는 화가를 고용한 숨겨진 목적에 있습니다. 그는 고용인 신분이지만 동시에 이 집안의 모든 일상을 관찰하여 기록하는 일을 맡았기에 모든 걸 다 아는 유일한 인물입니다. 영화는 사건의 진위를 알려주지 않고 끝을 맺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려줍니다. 화가를 고용한 이유가 가문을 이을 사내아이를 얻기 위함이었단 사실이지요. 그러니까 화가의 그림과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정원은 치정극을 숨기기 위한 미학적 장치였던 것입니다. 영화는 끝까지 사건의 결말을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도 쉽게 결론을 알려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제 관람객이 이 사건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참여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전시장은 인디오의 얼굴, 가면, 아프리카 민속품, 국적 불명의 여인, 놀이동산 기구를 탄 탑승객, 선언하듯 우뚝 서서 화면을 압도하는 인물과 전시장 바닥에 세워진 한 점의 회화(수상한 물건, 2022). 그 외에도 칼을 쥐고 있는 손, 영화 토이 스토리의 한 장면, 전형화된 인류학적 이미지, 놀이기구와 미확인물체를 연상시키는 조형물까지, 나열하기에도 숨이 벅찹니다. 들뢰즈가 영화를 철학적 사유의 도구로 삼았듯이 신선우는 회화를 기반으로 한 전시의 형태를 이용하여 영화의 내부로 진입하기를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희곡에는 1장과 2장을 연결하는 막간극과 같은 사이-공간이 계획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공간은 실현되지 못했죠. 사이-공간이 들어갈 삼각형의 캔버스 9개를 하나는 역삼각 형태로, 다른 하나는 정삼각 형태로 구성한 회화 설치 작업은 그렇게 남은 빈 벽에 자리를 틀었습니다. 어쩌면 주제가 되지도, 주인공도 아닌 막간극의 정체를 제대로 보여준 것 같습니다. 세상이 만들어낸 질서에서 미끄러지는 것이야말로 신선우가 그리고 있는 환상특급이 아닐까요?

2장
이제부터 테마파크 내부로 진입합니다. 이곳은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를 현실화 한 세계입니다. 목적은 현실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 끊임없는 회전 속에 자신의 몸을 위탁하는 곳입니다. 사람들은 두려움을 위해 기꺼이 입장료를 지불합니다. 뱅글뱅글 돌아가는 수많은 기구는 알록달록하게 채색되어 있습니다. 겉모습에 속지 마세요. 만만하게 보면 안 됩니다. 퍼레이드가 곧 열릴 겁니다. 보세요. 태평양의 폴리네시아 지역의 민속춤이군요. 민속춤이란 식민화에 의하여 개발된, 그러니까 일종의 관광산업의 틀 안에서 기획된 문화적 양식이지요. 이국적인 몸짓과 육감적인 표현으로 이곳을 찾아온 손님들을 반겨주네요. 그러나 신선우는 정작 환상특급의 내용을 다루지는 않습니다. 여기엔 외계라든가, 괴물이라든가, 심리적인 환영으로 시달리는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오로지 시뮬라크르들의 묶음인 테마파크, 놀이공원 등의 클리셰를 끌어들입니다. 그에게 이곳은, 혹은 이러한 장르의 공간들은 푸코가 언급한 헤테로토피아와 다름없습니다. 불안을 야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죠. 실상 테마파크는 유토피아가 재현된 곳입니다. 허구의 세계를 현실로 재현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곳에서 불안을 느낄까요? 푸코는 “유토피아는 이야기와 담론을 가능하게 하지만, 헤테로토피아는 얘깃거리를 메마르게 하고 말문을 막고 문법의 가능성을 그 뿌리에서부터 와해하고 신화를 해체하고 문장의 서정성을 아예 없애 버린”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헤테로토피아는 유토피아의 세계관이 붕괴된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테마파크란 원래부터 그런 곳이었습니다. 슬픔이나 상실이 부재하는 곳으로 설계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픽션의 세계를 되찾고자 합니다. 오로지 행복, 환희, 만족만으로 형성된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사막에 세워진 라스베이거스는 일년내내 도박을 즐길 수 있습니다. 일확천금의 희망과 세계적인 스타의 쇼가 사시사철 열리는 도시입니다. 라스베이거스의 건물들은 창이 없다죠. 왜냐면 이곳에서는 자연의 시간은 불필요합니다. 그래서 시간을 없애버린 것이죠. 라스베이거스는 테마파크의 원형이기도 합니다. 과학적 진보는 자본과 결합하여 이익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그렇게 시간과 계절을 동시에 잊을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테마파크에 온 대개의 사람은 인공적으로 자연을 경험하고 공략하고 활용합니다. 자연의 시뮬라크르화, 그것이 테마파크를 세운 첫 번째 목적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세워진 테마파크는 인위적으로 자연현상을 디자인한 “번역된 자연, 혹은 감각의 번역”이 일어난 시공간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신선우에게 슬라이드란 용어는 크게 두 개의 의미로 다가옵니다. 하나는 테마파크의 워터풀에 설치된 거대한 미끄럼틀 기구이자 다른 하나는 전지구화된 시대에도 잔존하는 식민주의의 유령과 같은 이미지의 파편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슬라이드, 2002). 슬라이드는 낙하를 위한 오름을 반복하는 놀이로 쾌락의 강도와 노동/운동 에너지의 공평하지 않은 엔트로피를 일으키는 행위일 것입니다. 회화의 화면은 슬라이딩을 즐기는 (흑인) 아동과 다양한 민속물, 유물이 혼재하는 이미지 파편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후기
1장이 사건 현장이라면 2장은 꿈과 환영의 공간처럼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사이-공간은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잇는 통로가 아닐까요? 사실 미리 얘기하지 못한 게 하나 있습니다. 본 희곡-전시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2001)를 느슨하게 차용하고 있습니다. 영화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에서 자동차 사고를 겪고 살아난 리타가 기억상실증을 겪는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베타가 리타의 기억을 되찾도록 도움을 줍니다. 신선우는 꿈과 현실이 기이하게 얽힌 낯설고도 모호한 영화의 상태를 자신이 속한 지금 여기의 현실과 이어붙이고자 했습니다. 이국적 풍경, 비현실적인 세계를 그린 회화는 더 나은 미래라는 꿈에 포획된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전시 은 헤테로토피아의 재현이 목적이라기보다 생명을 담보로 한 생명정치로 파생된 현상(인종주의, 노화, 임신과 낙태, 난민 등)에 관한 회화적 연극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 정현(미술비평, 인하대 교수)

(출처 =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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