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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수지《LIMINAL PHASE : 4장과 5장 사이》
기간| 2022.08.25 - 2022.09.28
시간| 10:00 - 18: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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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동시대의 아우라, 작동하는 예술

1930년대,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은 ‘숨’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우라(αύρα)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벤야민은 예술의 장에서 이 아우라를 작품이 제 안팎으로 발하는 에너지나 분위기를 가리키는 개념으로 주창했고, 이후 아우라의 개념은 각기 다른 예술 작품들에 다양한 방식으로 내재하거나 외재하는 고유한 성정을 통상적으로 지칭하게 됐다. 그는 아우라의 의미가 본래 기대어 있던 종교 의식적인 기원에 근거해 예술을 규명하는데, 근본적으로 벤야민 미학의 논리 구조는 복제 불가능했던 작품의 형태에 깃든 유일무이의 성질로 자기 현존성을 확보했던 예술의 시대를 가려내는(curation) 것에 있다. 이와 같은 벤야민의 예술 이론을 정립한 가장 괄목할 사건이 복제를 허하는 사진 매체가 등장한 순간이었다는 사실에는 큰 이견이 없을 테다. 그토록 잘 알려진 눈부신 일련의 그 미학적 성과에서 내가 주목하는 바는 아우라 개념의 의미와 가치가 그것이 몰락하는 때에 비로소 발굴되었다는 다소 아이러니한 사실이다. 이로써 벤야민은 당대라는 조건과 함께 우리가 역사적으로 예술작품이 자신의 아우라를 견고히 형성하는 경우를 분류하게 해주었다. 그 예시는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최소한으로나마 작품의 진본성을 보장하는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며, 관람 주체로 하여금 신격화(비현실)와 세속화(현실)의 경계를 어떠한 방식으로든 초월하도록 하며 (벤야민의 용어를 빌려) 소위 “제의가치(Kultwert)”와 “전시가치(Ausstellungswert)” 간 상호 교환의 실현을 인정하는 경우를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상 벤야민의 예술론에 의하면 예술작품이 아우라, 즉 일종의 신성성을 보장받을 것인지 그렇지 못할 것인지는 ‘거리감’의 정도에 달려있다고 하겠다. 거리감이란 예술 작품과 관람자 사이의 거리감을 뜻하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 예술작품의 형식과 내용에 기인해 조성되는 아우라가 곧 대상과 주체 사이의 시공을 메워낸다고 한다면, 특정한 시간과 공간에만 일회적으로 존재하는 예술작품의 원본성은 결국 아우라의 형성에서 거리감을 토대로 이를 극대화한다는 것이다. 이때 가능한 유일의 임의 변수는 ‘당대성(Contemporaneity)’으로, 당대의 형상에 따라 현실과 비현실, 세속화와 신격화, 제의가치와 전시가치는 상이하게 결정될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과정과 물성이 그득한 이수지의 노동 집약적 작업은 기존과는 다른 동시대 유형의 아우라를 발산한다고 말할 수 있다. 마치 디자인적 결과물을 연상케 하는 작가의 작품은 도형과 타이포그래피를 기본 재료로 미적 구성을 표상한다. 서체쓰기(lettering)라는 공예적 수행의 행위로 작가는 작업의 경계 내에서 서체에 대한 디자인적 접근을 점진적으로 시도한다. 따라서 그는 문자가 놓이는 종이와 같은 바탕에서 시작해 그 위에 실제로 새겨지는 활자 획의 구조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타입페이스가 현존하는 모든 과정 및 각 과정의 단계가 요하는 매체의 제작 방식 일체를 검토함으로써 그 수행의 실천으로부터 예술적 가치와 의미를 회복하고자 한다. 주목할 것은, 과정을 조명하는 이수지의 작업이 스스로를 정립하는 가운데 꽤나 최근의 예술마저도 기존의 것으로 편입한다는 점이다.

그렇듯 이수지의 작업은 보통 단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어떤 총체를 과정의 층위로 분할하는 식의 검토를 필수적으로 전제키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 검토의 과정을 거쳐 이질(異質)해진 결괏값으로서 도출된 각 부분을 다시금 이어 붙이며 이를 작업으로서의 등질(等質)한 총체로 승화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작가의 작품은 말 그대로 그가 마련한 절차의 수행 과정에서 남겨진 흔적의 매듭이자 검토의 과정이 일시적으로 수렴하는 그 순간과 다름없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 문자 조형의 알파와 오메가는 최종적으로 수행이 도달할 목적으로서 제 의미나 가치를 찾기보다, 되려 그 수행을 주도적으로 인도함에 있어 적극 기능하는 긴요한 지침에 가까워 뵌다. 왜냐하면 이수지의 작업계 내에서 작가의 서체는 최초 그래픽 디자인의 지대 위에서 선행적으로 흩어지고, 이는 후에 작가가 고안한 도구(혹은 장치)의 작동으로 재생산되는데, 음소문자의 쓰임 과정을 극도로 분화해 다시금 활자를 재생하기 위한 장치(혹은 도구)의 구동은 작가의 작업이 그 자체로 ‘과정으로서의 수행’이라는 일면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작가는 수행을 조직한 기획의 주체, 그것을 행하는 수행의 행위 주체, 나아가 작가가 설계한 이 모든 작업의 알고리즘을 마주할 관람 주체와 서체쓰기를 두고 벌린 지난한 과정-수행의 과정을 따라 각 주체들에 그가 부여한 책임과 이들 사이의 관계 구조로 우리의 시선이 자연히 향하도록 부지런히 길을 낸다.

이제 수행성을 작업의 주요한 소재로 하는 이수지의 작업은 그래픽의 기본이 되는 도형 및 서체의 디자인적 구성을 직접 쓰기(write)의 행위로 조형토록 하거나, 또는 그러한 도형과 서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데 쓰이는(use) 공정(工程)의 토대가 되는 인쇄 재료 중 하나인 종이를 실제 제지하는 등, 공예적 접근을 통해 본래 엮인 총체를 나뉜 부분으로 풀어내는 과정 수행의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부터 작가는 점차 공예의 성향을 더더욱 명징히 드러내고자 한다. 그 경향은 실제 직조한 실을 가지고 일전의 이미지를 원단 위에 실제 수를 놓아 구현하는 식으로 제작하는 그의 근작들에서 확연히 드러나는데, 수행성의 의미와 가치를 곧 작업에서의 그것으로 치환해내는 작가에게 수공 행위에서 일으켜진 그와 같은 변화는 단순 재료(medium)나 공법(method)을 넘어선 태도의 차원에서 일으켜진 중요한 변화로 받아들여져야 하겠다. 이렇듯 한층 짙어진 공예성을 기반으로 작가가 지속해서 논하려는 수행과 과정 그리고 체계와 결과의 의의는 물론 자명하다. 다만 작업이 차용하는 공예 개념과 이를 지지하기 위해 또다시 끌어들여지는 공예적 밀도의 추구에 관해서는 의도치 않은 목적 전도의 가능성을 최대한 소거하기 위해서라도 최선의 지점을 계속해서 발견하기 위한 노력이 일부 필요할 것임을 더해 밝힌다. 작가의 작업은 여전히 그 자체로 작동하며 제 형식이 무엇을 수행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이른바 가상으로 점철된 지금의 시공을 실재로 환기하며 새로운 아우라의 형상을 현현케 한다는 점에서 이수지의 작업은 분명 흥미롭다.
 
장진택(독립기획자)

(출처 =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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