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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한상아 : 뾰족한 용기
기간| 2022.10.20 - 2022.11.19
시간| 10:00 - 18:00
장소| OCI 미술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
휴관| 일, 월,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34-044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한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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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삶으로 가득 찬 검고 하얀 풍경들

한상아의 개인전 제목에 사용된 단어들은 모두 다중적인 의미를 갖는다. ‘뾰족한’ 것은 보통 사물의 끝이 가늘고 날카로움을 말하며, 때문에 일종의 위협을 의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그럴듯한 생각이나 묘책을 가리키며 직면한 문제를 돌파하는 가능성을 뜻한다. ‘용기’는 굳센 기운이나 세상을 대하는 곧은 태도를 뜻하지만 물건을 담는 그릇을 말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러한 중의적인 단어들을 선택함으로써 양가적인 인간의 본질을 짚어내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른 크기로 주어진 인식의 범위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여러 모양의 마음은 낯설기도, 익숙하기도 한 상태로 현실에서 발현된다. 앞선 그의 작업들은 여성, 엄마, 아내의 사회적인 역할을 중심으로 겪었던 일이나 마주한 환경을 보다 구체적인 언어들로 그려냈다. 반면 이번 전시에서 그가 제시하는 문장들은 함축적이고 은유적이며, 《뾰족한 용기》 역시 그러한 이야기를 지칭하는 제목이다.
작가는 예전처럼 특정한 시간이나 사건을 중심으로 그림을 풀어가기보다, 어김없이 이어지는 일상의 면면을 사유하고 그 속에서 느끼는 정서의 편린들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그는 필자와의 대화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오롯이 나의 것이면서도 혼잣말에 머무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인간으로서 누구나 공유하는 감정들이 있을 것이다. 미래를 향한 불안함, 가족이라는 공동체로부터 피어오르는 안정감, 사회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망, 상충하는 가치들 가운데서 일어나는 마음속의 갈등. 이 모든 것은 각기 다른 시점에 저마다 다른 모양과 색채로 우리 앞에 나타나는 내면의 파장이며, 본 전시에서 다양한 무게와 크기를 가진 이미지로 가시화된다. 그는 흔들리는 주체이면서도 오늘을 균형 있게 살아내고자 하는 한 인격체로서 느끼는 진솔한 고민과 깨달음을 다수와 적극적으로 나누고자 한다.

 
대화의 화두가 이동함에 따라 그의 작품에서 도드라졌던 실제적인 표현들은 부쩍 낯선 모양들로 치환되었다. 끝이 날카로운 돌기들이 이어진 형상, 속이 까맣게 찬 동그라미, 구부러진 물방울, 둥글거나 뾰족한 기둥, 광활하게 펼쳐진 여백. 주어와 술어의 구조로 단단하게 맺어졌던 그의 그림체는 모호하고 느슨한 기호들로 변화한다. 그뿐만 아니라 기하학적인 도형들 사이로 등장하는 신체들도 그 총체를 또렷하게 파악할 수 없는 상태로 그려진다. 그들은 특정한 인물이기보다 인간이라는 개념의 시각적 대용물에 가깝다. 조금만 살펴보면 화면에 들어찬 것은 단순한 도형이기보다 하늘과 바다, 해와 달, 별과 구름, 불과 물 등 현실과 가깝게 맞닿은 실제들을 추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연적 모티프로부터 출발한 기이한 장면들은 삶의 보편적 이치를 상기시킨다. 자연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은 곧 생과 죽음의 무게를 생각하게 하며, 별이 뜬 밤하늘은 우주와도 같이 넓은 사람들 간의 관계망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작품에 등장하는 기하학적인 도상이나 상징 기호, 대칭적 구도나 상승의 구조는 작업 안으로 초월적인 서사를 끌어들이는 기제로 작동한다. 일반적으로 종교화가 담는 풍광은 실제의 차원을 넘은 미지의 힘을 지칭하며, 경외와 두려움, 치유와 믿음, 신념과 희망 같은 심리를 촉발시킨다. 그러나 작가는 신화나 종교의 코드를 끌어들여 초월적 숭배의 대상을 언급하기보다 지극히 세속적인 존재들의 행위에 주목하고자 한다. 요컨대 작가에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작은 사회를 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위치를 찾아가는 여정은 다른 어떠한 일보다 숭고하고 고귀한 것으로서 다루어진다.
 
한편 그가 사용하는 재료는 스스로가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물성을 가졌음과 동시에 필요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그에게 예술가의 삶이란 지금 여기로부터 분리된 또 다른 장소에서 형이상학적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도 일상과 맞닿은 곳에서 이어가는 지난하고도 치열한 것이다. 먹과 천은 잘 마련된 작업실이 아닌 제한적인 환경에서도 그가 예술적 실험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탱해 준 매체였음에 틀림없다. 더 나아가 이 질료들은 다층적인 성질을 가진 것으로, 그의 근작이 지향하는 메세지와도 많이 닮아있다. 본디 먹은 주어진 표면 위를 맴돌기보다 그 틈새로 깊숙이 침투하여 오래 머무른다. 또한 마냥 검기만 할 것 같은 안료는 그 배경과 농도에 따라 수많은 명암을 표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천은 날카로운 돌기 앞에서는 연약하지만 씨실과 날실로 촘촘히 엮인 질긴 재료이다. 그는 포근하고도 단단한 이 물성들을 토대로 작업을 이어간다. 머릿속에 있던 불투명한 마음의 모양은 외곽선을 가진 이미지가 되고, 이는 이내 다른 화면 위에 겹쳐지는 얇은 조각이 된다. 작가는 흑백의 파편들 사이에 솜을 채워 넣고 실로 기워내는 노동집약적인 과정을 반복하며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세계를 직조해간다.
특히 이 전시에서는 먹과 천으로 만든 오브제들을 활용한 매달기, 쌓아 올리기, 걸기 등의 적극적인 조각적 행위가 눈에 띈다. 주어진 층고의 높이나 넓게 펼쳐진 벽의 길이는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형상이 안착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모빌, 족자, 탑 등의 원리를 반영하는 설치 방식을 수용한 전시장은 일종의 연극을 위한 무대처럼 관객들 앞에 주어진다. 그는 애초에 자신이 만들어가는 대상을 평면에 머무르는 잔상이 아니라 3차원 혹은 그 너머의 공간을 점유하는 부피를 갖는 것들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의 가로축과 세로축을 따라 확장되는 검고 옅은 장면들은 광활한 하늘과 어둠 속의 달무리, 천상에 뿌려진 별들과 무수한 작은 실존들의 삶을 포용하는 울타리가 된다.
 
작가가 인생의 관문들을 통과하며 몸에 새겨졌던 강렬한 감각들은 조금 더 단단한 껍데기를 입은 진실한 존재들이 되어 풍경 안에 스며든다. 사실 한상아가 처음부터 말하고자 했던 것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오랫동안 영감을 받고 또 호기심을 가져온 영구적인 주제와 맞닿아 있다. 바로 인간의 일생에서 순환하는 심리적 반응의 기저에서 발견되는 근원적 형태들이다. 불안, 기쁨, 슬픔, 연민, 사랑의 감정들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양을 띠고 예술이라는 양식으로 옮겨져 왔음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한상아가 선택한 보다 초현실적인 알레고리는 그의 작업이 획득할 수 있는 의미의 층위를 훨씬 넓혀준다. 이제 그의 목소리는 자신에게만 머무르기보다 그가 펼쳐놓은 화폭의 마디 마디에서 타자의 경험을 함께 보듬어갈 수 있는 속도와 크기를 갖게 되었다. 이제 나의 영역을 넘어 너와 우리의 세계에 조심스레 말을 건네는 그의 용기 앞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꺼낼 차례이다.

 
 

박지형(디스위켄드룸 큐레이터)

(출처 = oci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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