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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안창석 : 色卽視□, 空卽視□
기간| 2022.10.12 - 2022.10.18
시간| 10:00 - 18:00
장소| 학고재 아트센터/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소격동 70
휴관|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20-1524 ~ 6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안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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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안창석 memory Ⅴ
    2020 acrylic and ultra thin glass imbricated on canvas 162x130cm
    (이미지출처 = 학고재아트센터)

  • 안창석 memory Ⅱ
    2020 acrylic and ultra thin glass imbricated on canvas 162x130cm
    (이미지출처 = 학고재아트센터)

  • 안창석 memory III
    2020 acrylic and ultra thin glass imbricated on canvas 162x130cm
    (이미지출처 = 학고재아트센터)
  • 			장소 : 학고재아트센터 B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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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창석: 아날로그 픽셀 회화를 통한 무의식적 기억의 사슬 
    
    
    이필(미술사/미술비평, 홍익대 교수)
    
    
    
    안창석은 지난 10여 년간 기억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다. 그의 기억 작업은 몇 가지 국면을 거쳐 최근의 디지털 픽셀 이미지 회화작업에 도달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수작업으로 그리고 붙인 비트맵(bitmap) 이미지를 선보인다. 흔히 BMP 파일 포맷이라고 부르는 비트맵은 컴퓨터에 디지털 이미지를 저장하는 데 쓰이는 메모리 저장 방식의 한 형태이다. 비트맵은 일반적으로 래스터 그래픽스(Raster Graphics) 이미지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흔히 화소(畵素) 또는 픽셀(pixel)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직사각형으로 구성된 이미지이다. 비트맵 이미지는 손으로 그린 유려한 선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와는 다르다. 픽셀의 수와 각 픽셀의 정보량이 이미지의 화질을 결정한다. 비트맵 이미지를 확대하면 사각의 픽셀이 확대되어 그리드의 그물망이 나타나며 이미지의 윤곽선은 직각으로 꺾여 계단 같은 형태로 보인다. 이미지는 확대의 강도에 따라 선명도를 소실하며 추상화한다. 
    
    안창석은 이 디지털 이미지의 픽셀 개념을 회화에 적용하여 수작업으로 일종의 ‘아날로그 픽셀’을 만들어낸다. 그는 손톱만 한 얇은 투명유리를 픽셀 단위로 간주하여 색을 입히고, 이를 밑 색을 칠한 캔버스에 하나하나 붙여 나간다. 그는 이 과정을 현미경에 사용되는 슬라이드 글라스와 커버 글라스에 비유한다. 그에게 있어 투명 유리막에 색을 입히는 과정은 마치 현미경의 슬라이드 글라스에 요오드를 떨어뜨려 커버 글라스를 덮으면 맨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의 세계가 보이는 현상과 같다. 그가 투명유리에 색을 입히고 캔버스에 하나하나 붙여 나갈 때 그의 아날로그 픽셀은 개념적으로 과거로부터 누적된 기억을 담고 있는 이미지의 단위가 된다. 
    
    그가 이미 채색되어있는 캔버스 위에 기억의 최소단위를 붙여가며 형성하는 이미지는 우연적이며 잠재적인 기억에 의존한다. 이는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추구했던 ‘무의식적 기억’과 유사한 듯 보이는데, 프루스트의 무의식적 기억은 미리 정해진 어떤 구체적인 형상이나 이야기도 지시하지 않는 추상적 이미지를 탄생시킨다. 안창석은 작업을 하면서 과거의 기억을 상기하지만, 그 기억은 픽셀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이미지의 불확실함 속에서 상기된다. 프루스트에게 있어 무의식적 기억의 상기가 4차원의 현재를 만들어내는 일로써 망각으로 사라지려는 영토를 다시 망각의 바닷속에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라면, 안창석의 아날로그 픽셀 작업 역시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안창석의 작업은 프루스트가 더 깊은 기억으로 들어가는 아날로그적 축적의 방식과 유사한데, 이는 아상블라주 기억 상기 방식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러한 기억 상기 방식은 그가 자신만의 픽셀 단위를 붙이고 축적해가는 콜라주와 아상블라주 기법에서 나온 우연한 결과물이다. 
    
    이와 같은 기억 상기 방식이 잘 드러나는 형태는 안창석의 큐빅이다. 안창석의 작업에서 큐빅 형태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이다. 그의 초기 캔버스 작업은 대체로 두터운 마띠에르로 이루어진 다양한 형태의 큐빅 폼을 실험한 이미지들이다. 이후 그는 사물과 관계된 기억론을 펼치면서 폐차의 유리 조각을 사용해 즉물적이라고 할 만큼 마띠에르가 거친 작업을 시도했다. 자동차는 탑승자와 관계된 많은 기억을 안고 있는 사물이다. 그러나 자동차를 통해 펼치는 그의 기억론은 다소 부정적이며 냉소적이었다. 사물에게 있어 기억이란 인간의 손이 닿은 흔적이다. 안창석은 이를 사물의 편에서 ‘스트레스’라고 표현하거나, 좋건 나쁘건 ‘응어리’라는 다소 부정적인 표현을 쓴다. 그는 사람과 사물의 각기 다른 접촉의 관점과 파편화된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미학적 접근을 하면서도 그 행위의 무의미함을 논하는데, 기억과 그 기억을 상기하는 이미지가 모호할 수밖에 없다는 그의 기억론이 이와 같은 냉소주의를 뒷받침한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안창석의 폐자동차 작업이 유리 조각의 큐빅 단위로 이루어진 추상화로 향해갔다는 점이다. 그의 작업은 이후 단계적으로 단위로 이루어진 추상화로 변해 가는데, 이 과정은 명백히 픽셀 작업으로의 이행을 예견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시점에 의심하기 시작한다. 기억이라는 주제와 거친 유리 조각이 조화를 이루는가? 이 고민은 두꺼운 마티에르와 거친 오브제 콜라주 방식을 폐기하고 순수한 회화적 표현 위주로 전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의 평면은 더 얇아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더 많은 레이어가 생성되었다. 이와 함께 기억이라는 주제는 더 두드러지고 살이 베일 듯 날 것의 유리 조각은 회화적 느낌 속에 자연스레 묻힌다. 픽셀이라는 의미소 개념과 그것을 붙여가는 작업 과정은 기억과 상기의 과정과 화합한다. 
    
    그의 픽셀 이미지 작업에서 컴퓨터 기억장치는 인간 기억의 은유로 작용한다. 인간은 경험을 기억하고 그 기억은 주관적 자아를 형성한다. 이 과정에서 삭제와 수정이 이루어진다. 안창석은 영상콘텐츠 회사를 운영하며 평생 영상 이미지를 삭제하거나 수정하는 일을 해왔다. 이미 제작된 국내 영상이 수출될 때, 그쪽의 정치적이고 문화적 맥락에 일치하지 않는 정보를 제거하는 일이다. 그의 삶은 기억의 삭제와 수정 작업과 함께 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안창석 스스로는 베르그송이나 들뢰즈 같은 철학적 개념을 거시적으로 논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미 그 자신의 삶은 베르그송의 물질과 시간, 들뢰즈가 말하는 비자발적인 기억과 기억의 사슬의 영역에서 작동해왔다고 할 수 있다.  
    
    안창석은 물성에 민감하다. 그의 초기작은 풍부한 물성이 넘친다. 이번 시리즈에서 그는 더욱 절제되면서도 풍부한 그림 그리는 맛을 보여주며 작업의 또 다른 국면에 접어든 듯하다. 내가 안창석의 작업을 응원하는 이유는 그의 작업에 어떤 진실성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의 작업은 개념적으로 시류에 대응한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시류에 맞는 회화작업을 추구한 결과물이 아니다. 그의 작업이 그의 삶을 대표하고, 또 그와 닮았다. 그는 사물과 기억의 사슬 속에서 성실히 본인 작업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 이러한 진실성은, ‘미리 주어지는’ 것이 아닌 ‘뒤에 나타나는’ 작업의 일관성 혹은 통일성의 기초로 작가의 귀중한 덕목 중 하나이다. 안창석의 작업을 위한 성실함과 열정이 더 깊은 미학적 진전을 이루기를 기대한다.
    
    
    
    
     
    
    “色卽視□, 空卽視□”(픽셀 언어로‘정신’을 담아내다)
    
    
    작가 노트 ( Art Statement)
    
    
     디지털에 있어서‘픽셀’은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 (Gilles Deleuze)가 이야기하는 영화의 최소 단위 프레임이라고 볼 수 있다. 프레임이 모여 하나의 플랑이 되고 평면에서는 플랑은 부분적 이미지가 된다. 사각 이미지의 집합은 2차원 평면에 펼쳐진 섬네일(Thumbnail)이지만 이는 프레임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이미지이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은 의식의‘관념론’과‘실재론’의 오랜 대립으로‘이미지’라는 대안 내 놓았다. 
    그리고, 물질은 이미지의 총체라고 했으며 이를 들뢰즈(Dekeuze)는‘시네마’에서 베르그송의 역원뿔 도식을 도입하여‘실재적인 것’과‘잠재적인 것’을 중심으로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과정을 영화로 설명하였다. 영화의 기본 단위인  ‘프레임’과 영상의‘픽셀’은 정보의 크기에 따라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디지털에서 색이 픽셀을 통해 전달되는 것이지만 색 없이 비어 있는 것 역시 픽셀로서 존재하며 이는 존재 유무 라는 철학적 개념의 사유로서도 유사하다. 사각의 픽셀 이미지를 차용, 박판 유리를 꼴라쥬 형식으로 붙여 색도 픽셀이며 빈 것 역시 픽셀 이라는“色卽視ᷧ, 空卽視ᷧ”개념의 논리로 공간에 저장된 이미지로 화면을 채웠으며 작은 사각형을 이어 붙이는 격자를 통해 픽셀 언어를 조형화 했다. 추상 이미지는 정신계에서 생성되는 모든 일들을 축적한 것이다. 즉 물질과 정신에서 생성되는 우리의 모든 일, 추억, 소망 꿈, 그리움, 회상들을 픽셀 언어로 담아내고자 하였다
    
    ‘픽셀’이란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현미경에 사용되는 커버 글라스를 기억했다. 현미경으로 미시적 정보를 찾기 위해 세포를 도려내 슬라이드 글라스에 놓고 스포이트로 착색 용액을 떨어트려 손톱만한 커버글라스로 덮어 그곳에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누적된 기억의 지층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사각 1.8cm, 두께 0.18mm 투명한 엄지 손톱 크기의 유리 비늘을 캔버스에 일일이 덮어가며 제작하는 과정은 이미 부과된 의미 이외 작업 중 교차되는 수많은 상념을 끌어내는 또 다른 기억의 행위 예술 일 수도 있다.     
    
    (출처 = 학고재 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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