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Opening : 12. 09 (금) 5-7pm - 우리는 자연을 눈앞에 놓여진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때론 몸과 하나된 자연 전체를 느끼고 그 열린 확장감을 경험한다. 갤러리JJ는 ‘그리기’를 중심으로 인간 탐구를 실천해오고 있는 작가 서용선의 개인전을 다시 마련하였다. 이번에는 소나무를 주제로 한다. 40여년전 그의 작업이 처음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련의 <소나무> 회화 연작으로, 그것은 오늘날 서용선 회화의 초석이자 출발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서용선_회상, 소나무》 전시는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작업의 근원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드로잉 2점을 포함한 2022년의 신작 소나무 풍경 그림 9점을 새로 발표한다. 전시 구성은 데뷔작이라고 할 수 있는 초기 1983년 소나무 연작을 필두로 80년대부터 최근 뉴욕에서 완성한 소나무 신작까지 19점을 선보인다. 또한 초기 드로잉들과 당시 작가가 찍은 소나무 사진 자료가 전시된다. 그동안 서용선의 ‘풍경’ 주제의 전시는 꽤 있었지만, 소나무 주제로는 이번 전시가 처음이며 초기 자료와 시기별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기대할 만하다. 전시는 초기 작가가 실험하고 모색하였던 회화적 비전으로 소나무 풍경이 어떻게 당대성을 획득했으며, 그것이 던지는 오늘날의 화두와 영향은 무엇인지 최근까지 전개된 변화 등에 주목한다. 데뷔 시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소나무 그림들 사이에서, 전시는 그동안 우리가 서용선 작업으로 익히 봐왔던 인물, 역사와 도시 삶의 이미지에서 한발짝 물러나서 어쩌면 ‘소나무’가 가진 상징성에, ‘산수’ 혹은 ‘풍경’ 그림에, 우리를 둘러싼 자연과 너머의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우리의 시선을 잠시 돌리게 한다. 그림은 소나무 너머 우리가 몸담은 자연을 연결하고 광활한 우주로 확장된다. 지금까지 서용선의 작업은 인간 삶의 조건과 현실에 관한 주제에 천착하여, 투박한 형태와 강렬한 색채로 표현한 힘있는 화면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역사화 연작과 도시사람들을 중심으로 신화와 전쟁, 풍경, 자화상 등으로 나타난다. 작가는 단종의 비극적 삶을 비롯하여 역사의 주변부 인물들과 오늘날 자신이 대면하는 현대도시 상황에 처해진 인간 존재, 부조리한 삶의 현장에 내재한 메커니즘과 보이지 않는 힘에 주목한다. 곧 역사 속 개인의 삶, 사회 시스템 속 특히 대도시인 서울, 뉴욕, 베를린, 멜버른 등 지구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끊임없이 탐색한다. 또한 철암그리기, 독도그리기, 현재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암태도의 농협창고에서 진행 중인 《암태소작항쟁 100년》 역사그리기 등의 현장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공동체 간의 상호작용이나 삶의 현장 체험이 바탕이 되기도 한다. 이는 자신이 마주하여 몸에 새겨지는 현실이자 삶의 세계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실존적 물음이라고 하겠다. 인문학적 성찰과 탄탄한 조형언어에 기초하여 80년대 이후 끈질기게 수행해온 이러한 독보적인 형상성의 작업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하여 국내외 수많은 주요 미술관들과 컬렉터들에게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재 우리 삶의 현실을 파고드는 힘과 서사적 면모를 발휘하면서 그의 작업은 나날이 주목받으며 컬렉션의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의 3년가량은 소나무 작업의 비중이 컸고 80년대 중반부터 <노산군 일지>를 비롯한 역사화와 도시인 연작들이 주로 내보이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현실 삶의 맥락에서 전개되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소나무 작업은 1991년에서 2009년으로 건너뛴다. 풍경을 테마로 하는 작업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선보였기 때문이다. 당시 <산·수(山·水)>(리씨갤러리) 전시는 작가의 풍경을 전통적 산수의 관점으로 바라보았다. 작가가 그려온 풍경 역시 작가의 화폭에서 그저 미적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거기에는 문화와 역사적 삶의 흔적이 깃든 자연 혹은 온전히 자신의 몸 감각으로 마주한 낯선 자연풍광들이다. . /전시에 나온 최근작 중 특히 담백한 구성의 <겨울소나무>(2022) 그리고 <겨울산책>(2022), <소나무 아래에서>(2022) 같은 경우, 보기에도 사람이 부재하던 예전의 소나무 작업과는 다르다. 풍경화보다 거리 인물 풍경 같고, 얼핏 자연의 소나무와 인간이 함께 있는 전통 산수화를 떠올린다면, 산수화의 현대적 버전인 듯 전통과 현대가 통합된 작업으로 보인다. 올가을에 작가는 뉴욕의 브루클린 작업실에서 머물렀다. 이 작품들은 이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떠올리면서, 그리고 소나무로 연상되는 대표적인 전통 산수화인 이상좌의 <송하보월도>를 기억하면서 탄생한 그림이다. 전체를 에워싸는 적막한 공간, 오두마니 있는 사물과 사람에게 눈길이 간다. 서용선은 주로 낯선 곳이나 여행지에서는 맨 먼저 자화상을 그리는 편이다. 나그네로서 자신을 둘러싼 이국의 낯선 환경이 불러일으키는 감정과 몸의 감각이 ‘세한도’ 속 추사의 깊은 고독감으로, 혹은 휘영청 달빛 아래 홀로 앉아있는 모습으로 포착하였으니 이들은 작가의 자화상일 수도, ‘산수화’에 대한 오마주일 수도 있다. 기억된 산수화는 자신의 몸 감각의 메타포로서 작용한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은 무한한 세계를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다.”라고 예전에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작품 속 ‘세한도’의 넓고 쓸쓸한 공간은 심상의 표현이자 작가의 몸 감각이 길어낸 시공간적 깊이, 자연의 깊이다. 이러한 산수화의 여백의 공간은 초기 흑백 소나무 작품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던 아득한 하늘의 공간감부터 시작된 일이다. 이 신작들은 이전의 소나무 풍경화와 도시 인물의 주제가 복합된 새로운 형식의 그림이다. 작가는 최근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삶의 세계에 초기의 관념적 공간을 구현하는 산수화의 결을 다시금 꺼내어 담아낸다. 작가가 프로젝트 작업 중 우연히 방문하게 된 소나무 분재농장에서 그린 <암태도 소나무>(2022), 작업실이 있는 다릿골을 배경으로 하는 <다릿골 소나무>(2022)가 있다. 작가는 분재 형식의 나무 가꾸기, 정원 문화로부터 자연의 생명력과 함께 인간의 욕망, 무한한 공간과 인간의 귀의처로서 자연을 생각한다. 여백인 듯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배경의 푸른색과 이를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굽은 소나무 가지의 강한 대비가 명쾌하게 눈길을 끈다. 이러한 구도로 뒤편의 무한한 하늘, 자연의 깊이를 예고하는 방식은 산수화의 방식이자 직선의 화면 분할의 구도로 시선을 소나무 뒤편으로 보내던 초기 흰 배경의 소나무 그림과 통한다. 그림은 인간의 시선으로 본 자연을 지나 그 너머의 세계로 향한다. 작가는 늘 그래왔듯이 눈 앞에 있는 현상을 그대로 선입견 없이 보여주려고 하며, 소나무라는 현실 속 대상을 매개로 그 뒤편에 펼쳐진 하늘, 자신을 둘러싼 우주공간을 지향한다. 이렇듯 세계를 지향하여 그 본질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40여년전 초기 소나무 그림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이러한 ‘판단 정지’의 서구 현상학적 태도는 현재까지 서용선 작업의 특징이 된다. /위의 최신작들은 제목에서 이미 인간 현실을 명시하는 듯한 반면, 초기에는 일괄적으로 <소나무>, <숲> 같이 대상에 집중한 제목이다. 화면 또한 원색 대비가 선명한 최근작에 비해 유화로 제작된 83년의 <소나무>는 나뭇가지 사이에서 전면으로 배어 나오는 듯한 은은한 빛의 느낌이 뒤쪽 공간을 멀리 확장시키면서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자연의 초월성이 예감되고 관념적이다. 2009년에는 빛의 대비가 점차 강하여 추상성이 느껴진다. 이렇게 작업의 주제가 삶의 세계로 깊이 들어가기 이전의 과도기적 소재가 소나무로, 막 등단한 청년기의 작가로서 탐색하는 조형성에 관한 전략과 특유의 인문학적 성찰은 소나무 풍경화에서부터 비롯된다. 작가는 사실 풍에 가까운 단색조의 소나무 연작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2년 동아미술제에서 상을 받은 <하늘Ⅰ>과 그 연작,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에 <소나무>(1983년) 드로잉, <소나무>(1984)가 소장품이 되었다. 이러한 초기 모노톤의 작품은 일련의 원근법이나 즉물성을 보이는 동시에 세계를 지향하는 현상학적 태도로써 소나무를 에워싸는 흰색의 공간이 번지는듯 고조되면서 은연 중에 여백이 있는 전통 산수화의 공간을 연상시킨다. 전시에 나온 흰 배경의 83년 <소나무>에서 보듯이, 당시 소나무 연작은 화면 분할로써 시선을 이동시키는 동시에 현실 공간과 평면적 회화 공간의 갈등을 해소하였고, 곧 이어서 작업은 왜곡된 터치의 형태와 원색의 색조로 이를 해결해 나간다. 작가에 의하면, 이러한 초기 흑백 소나무 작업은 전통 산수화에 대한 생각, 그리고 흑백사진 매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는 회화의 평면성에 대한 고민, 서구 정신과 한국 전통에의 갈등, 존재와 인식의 문제 같은 것이 놓여 있었다. 서양화라는 서구 매체에서 우리 전통적 정신을 다루고자 작가가 선택한 소재가 소나무였다. 우리 주위에 흔하게 보이는 소나무는 한국인의 상징체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십장생 중의 하나로 변하지 않는 색과 생명력으로 보편성,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며, 또한 사군자와 함께 문인화, 동양 수묵화의 소재로 한민족의 정서를 간직하고 있다. 당시 사회는 전통 산수화에 대한 관심이 거의 사라졌고 작가 자신 역시 서양화의 길을 선택하였으나 오히려 그때 중국 명말청초 시대의 화가인 석도의 소나무 그림, 간송미술관 전시 등을 통해 동양 산수화 정신, 그리고 우리의 진경문화, 조선성리학과 산수의 관계 등을 스스로 알아가면서 전통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었다고 회상한다. 서로 다른 사유와 경험에서 나오는 동서양의 감각 사이에서, 살면서 몸에 밴 것들에 대한 궁금증과 선택이었다. 특히 작가가 인상 깊게 체험한 석도의 소나무 그림들은 우주의 깊이를 보여주고 세계와 이를 관조하는 화가의 의식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연관에서나 미학에서나 서양의 풍경화와 동양의 산수화는 다르다. 서용선의 소나무 풍경은 유한한 대상 너머 전체 우주의 생기를 표현하려고 했던 전통 산수화의 정신이 은연 중에 반영되어 있다. 초기 소나무 풍경의 비가시적 공간은 이렇게 기운생동하는 수묵화의 먼 공간과 시간으로부터 한 갈래가 나온다. 한편 소재는 동양 정서에서 가져왔지만 초기 흑백 표현은 직접적인 한국적 정서라기보다 작가가 당시 관심을 기울였던 사진 매체에 기인한다. 그 당시 한국에 수용된 서구 미니멀리즘과 모노크롬식 회화에는 동양 선사상의 단순한 색감과 한국적 정서가 접목되어 엷고 깨끗한 색채 경향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작가는 당시 흑백 사진의 인화 과정에서 흑백 데생의 느낌이 드는 소나무 이미지의 느낌을 회상한다. 그것은 수묵산수화의 미감과 동시에 부드럽고 매끄러운 표면 감각의 현대적 새로움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학업 시기인 70년대 후반에 한국 미술계는 모더니즘의 극단에서 미니멀리즘, 포토 리얼리즘이 회화의 한 양상이었다. 이때의 초기 소나무 연작들은 드로잉도 했지만 처음에는 사진을 보고 그린 것이다. “흑백사진 매체가 렌즈를 통과하는 빛을 매개로 세계 내 현상을 거머잡는 방법”이라는 것, 기록으로서의 사진 이미지에 대한 이해차원에서다. 현상과 인식, 기록과 기억은 그의 작업에 핵심적인 요소다. “내가 그린 초기의 소나무는 실제 자연에서 그려낸 소나무가 아니고, 소나무라는 개념과, 사물을 보면서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 혹은 형태 인식에 대한 실제세계와 그것을 받아들인 지각적 감각에 대한 관계를 ‘그림 그리기’라는 과정을 통해 해결해 나가는 것이었다.” –작가노트, 2022.10- 오래지 않아 작가는 자연풍경을 개념 등의 선입견 없이, 직접 살아 움직이는 몸 감각으로 만나고 표현하면서 작품은 표현적 색채와 물성을 드러낸다. 인간이 보는 세계는 그것을 감각하고 사유하는 인간의 몸과 분리될 수 없다. 소나무 풍경화는 몸의 만남과 사유를 통해 광활한 우주공간의 깊이를 느끼고, 현실 풍경을 보편적 속성으로 재구축하고자 한다. 서용선은 이렇게 풍경 장르, 구상, 한국 전통이라는 어찌 보면 당시 모더니스트로서 가장 진부하고 취약한 조건으로, 하지만 그들을 인문적 태도로써 동서양의 시각으로 미묘하게 엮어내며 실험한 독특한 분위기의 소나무 풍경화를 통해 주위에 만연한 일련의 한국적 모더니즘을 넘어서려고 했다. 자연과 인간, 산수화 전통과 서구 풍경화, 회화공간과 현실공간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그 특유의 조형어법은 오늘날 풍경화로, 역사화와 도시 그림으로 녹아들었고 삶을 탐색하는 여정으로 여전히,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제 <겨울 소나무> 등 최근작으로 돌아와서, 새삼 산수화의 회상을 꺼내 든 것에 대해 작가는 “오랜 시간이 흐른다면, 이러한 그림에 대한 공감과 애착은 휩쓸려오는 새로운 과학문명에 대한 어떤 저항감이나 과학문명이 놓치고 있는 삶의 리듬을 유지하려는 자의식의 발동일 수도 있다.”라고 말한다. 우리 삶에 있어서 자연이라는 문제는 어떠한가. 도시화로 사람들이 잃어가는 것, 자연과의 소통이 절실해지며 더욱이 요즈음 글로벌적 자연환경 문제와 디지털 환경하에 풍경화 장르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느껴지고 또 번성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보면, 낭만주의를 지난 지 오랜 지금, 안젤름 키퍼의 새로운 낭만주의적 풍경이나 데이비드 호크니의 포스트-팝 풍경에서부터 사라 휴즈나 줄리 머레투의 추상적 지형까지 풍경에 대한 생각과 표현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작가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소나무 작품들이 말을 걸어온다. 과거와 현재,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몸과 자연 그 시공간적 깊이에서… 이번 전시는 소나무 그림을 발표한 지 40여년이 지난 지금, 서용선 작업의 축적된 깊이만큼 새로운 화두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 “최근에 나는 내 그림그리기의 방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초기의 흑백 소나무의 흰색 여백이 은연 중 산수화 여백과 나의 감각이 미치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지향성의 표현이다. 이후의 소나무 그림들은 붉은색 소나무 줄기와 짙은 녹색이 뒤섞인 강한 원색의 그림들이다. 소나무 그림들은 주관적인 표현으로 흘러갔다.” –작가노트, 2022.10- 글│강주연 Gallery JJ Director (출처 = 갤러리J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