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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성경 : 바람 그림자
기간| 2022.12.09 - 2023.01.08
시간| 화-금 13:00 - 19:00 주말 13:00 - 18:00
장소| 상업화랑 을지로/서울
주소| 서울 중구 을지로3가 240-3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10-9430-3585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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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전시전경

    (출처 = 상업화랑)

  • 전시전경

    (출처 = 상업화랑)

  • 전시전경

    (출처 = 상업화랑)
  • 			착란, (한없이 갈라지며 되풀이되는) 그림자의 제국
    
    
    
    0.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이성경의 풍경은 오직 이성경이 바라본 풍경이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보지도 않는다. 우리는 이를 누군가의 약점이 아니라, 그 사람만의 고유한 개성을 드러내 보여주는 장점, 또는 더 낫게는 장치(dispositif)로 바라보아야 한다. 
    
    
    
    1. 풍경(風景), 바람, 빛. 이는 19세기 메이지 시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서구어 landscape를 번역한 것이다. 직역일 지경(地景)이라 하지 않고 번역하는 이의 격의(格義)를 따라 풍경이라 의역했다. 혹은 scenery, 이는 어떤 일이 벌어진 장소, 곧 장면(場面)에 더 가까운 개념이다. 이성경의 그림은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인물화가 아니되, 풍경화도 아니다. 풍경화는 풍경이 주인공이라야 하는데, 이성경의 그림은 그 풍경을 보는 자가 분명한 풍경이다. 이를 이성경은 나와의 대화에서 ‘풍경을 보는 나의 뒤통수가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라고 표현했는데, 실로 정확한 묘사라 하지 않을 수 없다(이것이 이성경이 벽, 창, 문, 틀, 유리, 같은 이중 프레임, 곧 되비치는 그림자의 모습(反影像)을 자주 그리는 이유이다). 이중 프레임이라는 장치는 이성경이 사용하는 자기의 테크놀로지, 주체화의 장치이다. 이 장치를 투과하면, 이성경과 이성경이 보는 사물과 이성경과 사물이 관계 맺는 방식이 동시적ㆍ상관적으로 탄생한다. 그리고, 칸트가 밝힌 것처럼,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이성경 역시 오직 이 프레임을 통해서만 세계를 볼 수 있다. 
    
    
    
    2. 이성경의 그림에서, 실은 모든 그림에서, 보는 자는 그림 뒤에, 그림 바깥에 숨겨져 있다. 우리는 한 장의 그림을 볼 때, 마치 ‘보는 자가 없었다는 듯이 보는’ 게임을 하고 있다. 현상학의 지향성(志向性, Intentionalität) 개념이 명확히 밝힌 것처럼, 보는 자, 보이는 것, 보는 행위는 모두 묶여 있는 관계항들이다. 나에게 이렇게 보이는 것은 나에게(만) 이렇게 보인다(‘이렇게 보임’의 방식을 공유하는 자들을 ‘우리’라 부른다). 모든 것은 모든 것과 연동되어 있다. 이성경의 그림은 풍경화가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난 장소를 보는 자, 사건의 장소를 바라보는 ‘목격자’의 그것에 가깝다. 풍경화라기보다는 장면화. 나아가 모든 장면은 보는 자가 이미 개입되어 있으며, 이미 일정한 정서적 이입, 감정 이입이 일어났다는 의미에서(이성경은 이를 ‘마음속에 쨍한 느낌이 든다’고 표현했다), 늘 하나의 특정한 정경(情景)이기도 하다.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이 살던 당대의 자연 풍경화 취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요즘의 풍경은 화가들이 그리는 풍경화를 놀랍게 닮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풍경화는 자화상이다. 나의 세계는 나의 세계이다.
    
    
    
    3. 착란(錯亂), 섞여 어지럽다. 이성경은 <작가의 말>에서 자신의 난시가 (자신이 보는) 사물의 무늬(文, 얼룩)를 인상 짓는 현상을 말한 바 있다. 난시를 가진 이성경의 풍경은, 마치 고흐와 마네의 풍경처럼, 이성경이 그려내는 실경(實景) 산수화이다. 이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이성경의 세계, 이성경이 감각하고, 지각하며, 인식하는 세계이다. 이성경이 보는 이 세계는 어떤 무늬를 한없이 되풀이하며 자기 증식한다. 내가 목격한 장소를 그리는 이성경의 그림은 이성경에게 이렇게 나타난다. 이성경은 한지와 목탄이라는 소재의 특성을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자신의 의도를 한지 위에 온전히 옮겨놓을 수 있는 테크닉을 소유한 작가이다. 이성경은 그리고 지우고 문지르고 그리고 또 지우고 문지른다. 이러한 방식은 이성경이 자신에게 신경생리학적ㆍ심리학적 필터를 거쳐 자신에게 비치는 세계를 한지 위에 온전히 옮겨놓는 과정에서 스스로 터득한 기법이다(이를 단순히 작가가 자신의 관심을 외부에 투사하고 있다거나, 신경증 또는 난시에 의한 착시현상을 겪고 있다는 식으로 단순화시켜서는 곤란하다. 모든 문명은 건강/질병, 정상/비정상을 가르는 나름의 분할선을 갖고 있다. 예술과 철학의 과제는 바로 이렇게 우리에게 ‘당연한 것’으로 주어지는 분할선을 지각ㆍ사유함으로써, 이를 검토ㆍ변형시키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경이 자신이 본 세계를 일견 정확히 재현하면서도, 궁극적으로 재현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실재와는 조금 다른, 미묘한 모호함’처럼, 이성경이 직접 사용한 단어가 이를 잘 보여준다. 이성경의 작업은 고전적 재현에 그치지 않는, 그 너머, 곧 그림에 이야기, 내러티브, 서사를 부여하는 ‘미묘한 모호함’을 발생시키려는 시도이다. 이성경의 서사는 정확한 재현보다는 미묘한 모호함이, 빛보다는 그림자가, 궁극적으로는 (낮과 밤을 가르는 명쾌한 이분법보다는) 낮과 밤 ‘사이’의 저녁 어스름, ‘개와 늑대의 시간’, 곧 섬세한 어긋남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4. 목격자의 태도. 이성경의 그림은 사건이 먼저 발생하고 의미가 부여된다는 경험의 사후성(事後性, Nachträglichkeit, afterwardsness)을 증거한다. 우리 모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성경이 겪은 사건은 이성경이, 사후에, 그림을 그릴 때에야, 그 (한시적) 의미가 확정된다(이는 인간이 오직 현재만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실은 당연한 귀결이다). 이는 모든 사람이, 정도의 차이일 뿐, 겪는 반복강박의 형식을 갖는다. 이 반복강박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또는 보다 구체적으로는, (나무나 그림자와 같이) 그림 속에 나타나는 어둡고 중첩된 무늬로 표현된다. 이를 이성경은 ‘흔적’이라 부른다. 이 흔적은 그림 속에서 그리고 지우고 문지르고 또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이 흔적은 ‘지울 수밖에 없는 후회이자 부끄러움’으로, 이때, 이성경의 작업은 ‘이것’, 곧 우리 모두의 ‘이면’(뒷면), ‘솔직한 모습’을 정확히 바라보는 행위가 된다. 이처럼 나를 정확히 바라본다는 것은 ‘어두운 장면에서 시작했지만, 그것에 함몰되지는 않는’ 어떤 태도로, 그 정조는 ‘비애에 가까운 희열, 조용하고도 차분한 슬픔’의 직시와도 비슷한 무엇이다. 마치 불교의 ‘크게 사랑하고 크게 슬퍼한다’(大慈大悲)를 연상케 하는 이러한 직시는 차라리 ‘희열’, 일종의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5. 결코 거창한 담론으로 자신을 포장하지 않는 작가 이성경은 이러한 작업이 ‘사는 것에 대한 깨달음 비슷한 무엇’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성경의 이러한 작업방식은 사실상 우리가 구도(求道)라 부르는 그러한 작업과 그리 다르지 않다. 예술과 구도가 거창한 것이며 나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예술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다. 나의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무엇이 아니라, 모든 것을 나의 느낌으로 다시 보고 다시 체험하며 다시 지각한다, 다시 생각한다는 의미이다. 그리하여,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눈을 따라 모든 것과 모든 것을 바로 이렇게 연결시킨다. 달리 말해, 모든 것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하늘 아래 하늘 위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이제, 문제는 내가 누구이며 누구까지인지 어디까지인지를 아는 일이다. 이성경은 그리고 지우고 문지르고 또 그리고, 작업을 전시하고 또 내리는 과정을 통해, 매일매일 작가 자신과 관객 그리고 세계를 새롭게 빚어내는 나의 눈, 새로운 눈을 만들어내고 있다.
    
    
    
    허경
    
    
    (출처 = 상업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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