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장소 :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 - 경계 흐리기 김민영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오늘날 교통과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은 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하게 하였고 국가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시대적 흐름이 형성되었고 정체성 탐구에 대한 갈증이 생겨나는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 다양한 문화 사이에서 ‘나’ 자신 또는 개인의 정체성 확립은 삶의 중심을 잡아주는 주요한 역할을 제시한다. 정체성은 태어나면서 주어지거나 완성된 형태가 아닌 삶이라는 긴 호흡으로 만들어지고 다듬어진다. 즉 정체성은 탄생과 죽음 사이의 삶 전반에서 끊임없이 형성되는 것으로 단일적이거나 특정 시기에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탐색하고 확인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삶의 방식을 위해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공간을 변화시키는 행위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있어서 사유체계가 함께 움직이는 창조적인 사고를 수반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들에게 공간 이동에 따른 유목적인 삶은 창작을 위한 당대적인 조건이 될 정도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크리스틴 작가는 한국과 외국을 오가며 주류 문화와 소수 문화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정체성의 의미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삶의 경험은 예술작품 창작의 근원으로 수용된다. 일상적인 것들로 하여금 작품으로 구현하고 이를 통해 서로 대립되는 관계와 불화 속 새롭게 생겨나는 조화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존 작업의 레몬, 소세지 등은 동양에서 유래되어 서구에 자리 잡은 것들로 정체성의 변화와 혼란을 표현한다. 작업의 주된 재료는 점토이며 점토는 어떠한 형태로든 조형이 가능한 특성이 있기에 무한한 상상력을 가지고 몰입이 가능하다. 작품의 형상은 서로 다른 것들의 충돌을 상징하지만 점토의 물성을 이용하여 형상의 표면을 매끄럽고 부드럽게 다지고 선을 굴곡지게 표현하기 때문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불러일으키고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처럼 점토는 내재된 감정을 표현하는데 적절한 재료가 되며 표현 언어로써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대립에서 오는 새로운 탄생의 의미를 구체화 시키고 더욱 부각시킨다. 이번 신작 ‘전진하는 원리’의 사물들은 기존 작업에서 나아가 오늘날의 정체성을 투영시킨 작품으로, 메인 작품인 거대한 시멘트 화분 속 빼곡히 꽂혀 회전하는 형태의 양귀비는 일상에서 반복되는 불화 속 조화를 상징한다. 양귀비는 화분 안에서 깊이 뿌리를 내린 채 하늘을 향해 힘 있게 뻗어 저마다 존재감을 드러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내뿜는다. 또한 각기 다른 색상의 양귀비를 하나씩 보면 서로 다른 종류 같지만 섞어놓고 보니 조화롭게 어우러져 보인다. 이는 작가 자신이 속한 세계가 수많은 다양한 것들과 섞여 만들어진 대립의 결과물임을 나타낸다. 특징적으로 회전하는 양귀비 주변은 창문이 나 있는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작가의 작업 세계에서 안과 밖을 가르는 동시에 상반된 것의 대립과 연관된다는 점에서 깊은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창문은 보는 이로 하여금 들여다보기를 유발하여 안과 밖 그리고 작품과 관람객이 상호작용을 통해 교류할 수 있도록 연출되어진다. 이를 통해 각자의 지각 내부에 표상된 풍부한 사유와 상상을 도출하고자하는 시도가 드러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다양한 이동의 경험을 작품에 투영하여 본질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여러 영역에 걸쳐 경계 흐리기를 시도한다. 이는 결국 성별, 국가, 문화 등을 구분 짓는 것에 의문을 갖고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예술이라는 형태를 빌어 현대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위치를 확인하는 기회를 마련하여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자신을 개입시켜 정체성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는 작가의 유목적인 삶과 그에 따라 형성된 사상을 공유하며 다양성에 기반한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작품을 통해 상상할 수 있는 많은 이미지들을 머릿속에서 나열하고 결합한다면 일상 속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이 낯설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게 된다. 삶의 과정에서 도출되는 수많은 낯설음은 서로 대비되는 개념들로 조형화되어 존재의 메시지를 담는다. 이윽고 낯설음의 간격은 가까워지고 융화되어 대립과 충돌의 경계를 흐린다. (출처 = 갤러리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