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장소 : 갤러리 도스 제1전시관(B1) - 반복된 풍경 김민영 / 갤러리 도스 큐레이터 삶은 끊임없는 반복적인 행위의 연속이며 주로 목적에 따른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이거나 습관처럼 행하는 행위의 반복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상을 통해 바라본 삶은 보통 무기력하게 이끌려 가는 듯 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실제로 극적인 상황을 만들거나 여행, 축제 등 일시적 일탈과 같은 차이가 있는 반복을 통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반복되는 삶 속에서 차이를 발견함으로써 스스로 위안을 받게 되고 정체성과 만족감이 성립될 수 있다. 관련하여 미국의 현대 화가 비토 아콘치가 말하는 반복적인 행위는 내 자신의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며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의미라 말한다. 따라서 시각 예술 표현에 있어서 반복적인 행위는 예술가의 감성을 충족시키며 차이가 있는 또 다른 반복을 통해 언제나 변형되고 생성되어 현재를 미래로 이끌어갈 수 있는 변화를 가능하게 만든다. 이러한 반복적 조형 활동은 김소연 작가의 창조성을 발현시키는 주체적인 힘이 된다. 작품 ‘deep'은 모노크롬 느낌의 재료의 표현으로 드로잉적인 기법이 두드러지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화면에 빼곡히 그어진 선들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알 수 없는 무한한 운동성이 느껴지며 가녀린 선들의 울림이 합주를 이뤄 내 안에 잠들어있던 욕망을 깨우는 듯 짧지만 강렬한 곡을 선사한다. 작품 ’날씨들‘은 조각난 흰 종이들 위로 선이 그어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엉키고 뭉개져 검게 뒤덮혀진 감각의 덩어리를 상징한다. 정해진 순서 없이 연결된 종이 조각들은 통제로 부터 벗어나 감정을 정화하고 절제하며 이상과 현실의 영역을 넘나들며 끊임없이 유동하는 작가 내면의 이상세계로 완성된다. 맞춰지지 않은 퍼즐처럼 종이 조각들 사이 남겨진 빈 공간은 어둠만이 존재하는 우주 속 화이트홀만큼 환한 빛을 내뿜으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다양한 감각의 덩어리들의 존재를 더욱 부각시킨다. 작품 ’still stand'는 지팡이를 칠하고 깎아내기를 여러 차례 반복하는 행위를 거듭한 작품으로 짚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로운 형태를 보인다. 그러나 걷기 위한 보조도구로 사용되는 지팡이의 본래의 의미와 몸체를 부러뜨리지 않게 조심스레 깎아내는 작업 과정에서 느끼는 감각과 감정의 해석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흐리며 생의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서있는 풍경으로 나타난다. 몸체를 울퉁불퉁 깎아내린 지팡이의 표면은 색다른 시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여 다소 심오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세계를 환기시킨다. 작품 ‘black mountain', 'O’ 등은 'deep', 'still stand' 등의 주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재료의 부산물들을 모아 재창조한 작품들로, 삶의 변화와 순환을 나타내는 동적인 존재이다. 이 존재는 엄청난 인내와 힘으로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물이자 모든 작업의 과정 속 내재된 감정과 감각 흔적의 자취를 추적하는 과정의 기록물이다. 작가는 선을 중첩하고, 쓰고 지우고, 지우개를 쌓고 줍고, 오브제를 칠하고 깎는 일련의 행위로 인해 생겨난 부산물들을 뭉치는 등 반복적인 방식으로 작업을 수행한다. 작업은 중첩되고 지워지기를 반복한 흔적들과 버려지지 않고 모인 부산물들이 쌓여 하나의 기록물이 되고 시간을 표상하고 있다. 그 시간의 깊이는 작가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시간으로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기억으로 하여금 과거와 현재라는 두 시간을 연결한다. 개별 작품들이 주는 느낌들은 각각 다르지만 작품들이 나란히 놓인 모습은 하나씩 볼 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와 의미를 만들어 낸다. 작가의 대담하고 섬세한 표현력은 수백 번의 쓰고 지우기의 반복되는 과정 속 사색을 통해 깊은 울림이 있는 풍경으로 완성된다. 반복적인 행위의 향연은 우리의 삶과 닮아있으며 그 안을 들여다보면 미세한 차이들이 보인다. 그러한 차이들로 인해 또 다른 내일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이렇듯 이번 전시를 통해 일상에서 간과되기 쉬운 미묘한 차이들이 가진 힘을 느끼며 새로운 오늘을 맞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출처 = 갤러리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