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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미지들
기간| 2023.07.07 - 2023.09.17
시간| 12:00 - 18:00
장소| 하이트컬렉션/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청담동 132-12 하이트진로빌딩
휴관| 월요일, 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3219-0271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강석호, 김경태, 김수영, 김용관, 이해민선, 정경빈, 정희승, 한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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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이미지들

이성휘

 

1.

이 전시는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이미지에 대한 전시다. 이미지의 밀도를 언어로 따라가지 못하고, 이미지의 공허를 언어로는 비워내지 못할 때 기획자는 좌절하게 되며, 그의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이미지들이 이 전시를 촉발시켰다. 하나의 전시는 이미 이미지로 존재하는 작품을 두고 기획자와 작가가 수없이 반복한 상상과 시뮬레이션의 결과지만, 물리적 공간에 현시되기 전까지는 도달하지 못하는 허상일 뿐이다. 비로소 하나의 장소에서 실재하는 이미지에 도달한 전시는 그러나 일시적인 순간이자 장면으로서 존재하고 사라진다. 전시는 많은 이미지와 언어가 동원된 또 다른 이미지이자 언어이지만 실재적 대상으로서는 곧 사라지게 되는 숙명을 가지며, 전시가 사라지고 나면 전시를 구성했던 언어와 이미지는 남아서 우리의 상상 의식 일부를 떠돌며 의식의 대상으로 사라진 전시와 관계를 맺게끔 한다.

 

2.

작가는 어떻게 이미지를 발생시키는가? 이 전시에는 각기 회화, 사진, 영상을 다루는 여덟 명의 작가들이 참여한다. 그러나 이 전시는 매체성으로 환원되는 이미지 담론을 추구하지 않는다. 작금의 예술은 매체의 구분이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로 하이브리드 프랑켄슈타인이 되었고 이미 우리는 이미지가 데이터로 치환 및 통합되는 시대에 들어섰지만, 이 전시는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또한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 발달에 의한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이미지 발생을 주도한다는 관점에도 반대한다. 물론 어느 정도 작가들은 자신들이 다루는 매체의 속성으로부터 영향을 받기도 하고, 시간과 기억에 대한 경험이나 사유를 이미지로 접근하는 방식이 구분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예술로서 이미지는 작가의 인간적인 의지에 의해서 표명된다는 점은 동일하고, 따라서 이미지는 상당히 개별적인 사건으로 발생한다. 또한 예술에서 궁극의 대통일장 이론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 전시는 매체 고유의 성질을 소홀히 하지는 않되 ‘이미지는 작가가 발생시킨다’는 점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물론 이미지는 기억이나 꿈, 상상 그 자체일 수도 있으며 시각적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 표현 수단이나 방식(매체, 질료 등)을 통해서 물리적 형체를 지닌다.[1] 특히 이미지는 인간이 시공간에 대한 감각과 경험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자 물질적 수단이다. 그리고 회화, 사진, 영상은 그 방법의 일부인 것이다.

 

3.

대체로 회화는 유한한 크기의 캔버스 위에서 만들어지는 이미지라는 속성을 가지지만, 캔버스 앞에 선 화가가 사유하는 평면은 무한대의 우주에 가깝다. 화가의 사유 속 이미지는 셀 수 있는 차원도 아니고 몸을 지닌 형상도 아니나, 캔버스 위에 현현하는 회화는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기억과 감각을 구체화하거나 추상하는 힘을 가진다. 사물 그 자체가 되기를 지향하는 회화조차도 역시 인간적인 의지가 표방된 이미지의 한 방식으로 귀결된다. 사진은 대상의 스케일을 조절하는 가장 능숙한 매체인데, 대상의 스케일을 가늠할 수 없게도 하고 관람자를 압도하기도 하며, 또 부재하는 대상을 아름답게 환기시킨다. 영상은 시공간에 대한 상상력을 투사하여 시간을 함축하거나 공간을 오버랩하면서 우리의 인식을 초월하는 환상적인 세계를 제시하곤 한다.

 

4.

이 전시는 한우리의 영상 작업으로부터 시작한다. 기술 발달에 의해 사라지는 사물이자 매체인 아날로그 필름은 한 개인의 상상에 의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탄생하였다. 한우리는 사라지기 직전의 세계나 사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이것들을 어떻게 이미지로 구성할 것인가 고민해왔다. 그는 특히 사운드와 영상처럼 시간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매체를 다뤄왔는데 예전부터 16밀리 필름 영사기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공부해왔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투명한 감각>(2022)과 <베르팅커>(2022)는 개인전 《실과 리와인더》(보안여관, 2022)에서 이미 선보였던 작품들로써, 작가는 사라지기 직전의 찬란한 사물(16밀리 필름 영사기)과 이 사물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펼쳐냈다. 디지털 세대인 한우리는 16밀리 필름 영사기를 과거에 대한 향수라기보다는 낯선 기술이자 매체로 받아들인다. 그에 의하면 이 영사기에 심취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생산되지 않는 장비와 부품을 직접 제작하고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면서 사라짐을 앞둔 사물에게 헌신적으로 노력과 애정을 쏟고 있다. 한우리 역시 아날로그 필름 영사기를 직접 다루면서 사라짐을 앞둔 사물에 대한 기억, 이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기에 이르렀다. 먼저 <투명한 감각>은 16밀리 필름을 둘러싼 환경과 조건을 사라진 친구를 기억해내기 위한 세 사람의 분투로 은유한 작품이다. 한우리는 “남겨진 세 사람은 각자 자신의 조각을 덧대고 연결해가면서 서사를 작동시키고자 하며, 이 공동의 작업을 통해 비로소 잃어버린 것의 서사가 재연될 수 있다. 재연은 자명한 역사적 사실로서의 사물을 재구 축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면면에 대한 공동의 증언을 바탕으로 기억을 구성 하는 행위가 된다”고 말한다. <베르팅커>는 ‘파리자리’라는 유일한 곤충 별자리가 존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별자리가 된 사물의 삶을 은유한 작업이다. 독일 천구지도 제작자 요한 바이어가 제작한 1603년 지도 ‘우라노메트리아(Uranometria)’에는 51개의 별자리가 표기되어 있는데, 여기에 유일한 곤충 별자리인 파리자리가 등장한다. 한우리는 실제와 혼동이 되는 가상의 설화를 16밀리 필름과 디지털 화면을 병치시키는 방식으로 제시하여 사라진 사물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불러 일으킨다. 어쩌면 한 매체의 소멸은 한 유형의 이미지의 소멸과 동일시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한우리의 작업 안에서 이미지는 거듭되고, 결합되고, 다시 새로워진다.

 

5.

강석호, 정경빈, 이해민선은 회화라는 이미지의 영역에서 각기 먼 땅, 땅 속, 땅의 겉을 바라보고 있다. 강석호는 현상학에 심취해 있었던 작가였고, 시간은 우리가 서 있는 위치와 환경에 따라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다르게 흘러감으로 인지된다고 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2] 그의 달은 어느 날 오후에 관찰한 일식에 대한 그의 호기심을 상기시킨다. 강석호는 일식으로 인해 지구, 달, 태양이 만들어내는 빛의 변화, 물, 풀잎, 사물들의 반응을 궁금해하며, 평소와 지각되는 햇빛과 다른 차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을 자신은 하나의 사건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물과 사건에 대한 기억은 시간에 대한 사유로도 이어졌다. 그는 “나는 오랫동안 시간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그 본질에 다가가려 했다. 그렇게 수없이 많은 날을 보냈음에도 내가 지각할 수 있는 보통의 시간은 하루 단위에 불가하다. 하루를 24시간으로 1시간을 60분으로 1분을 60초로 나누거나 더한들 나에겐 별 의미 없이 다가온다. 그것보단 현실에 존재하는 사물로서의 이해와 사건 간의 관계로 형성된 순간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나를 발견할 뿐”이라고 하였다.[3] 한편, 정경빈에게 세계는 몸의 감각으로 지각되는 것이다. 2019년 9월 11일 정경빈은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그라운드 제로를 방문했다. 구멍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자리, 하늘로 치솟았던 빌딩 두 채가 통째로 증발한 그곳에서 작가는 어릴 적 뉴스 화면으로 9.11 테러를 목도한 기억, 그리고 오랜 투병 생활로 인해 얻게 된 자신의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가 오버랩되면서 마치 동일한 상실을 겪은 사람을 마주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작가는 누구나 트라우마, 몸의 얼룩을 크고 작게 가지고 있음이 당연하니, 완전히 없어지지 않으나 종종 어지럽게 밀려오는 감각과 이미지에 되려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그에게 ‘벽’이라는 소재는 가로막힌 벽 앞에 옴짝달싹 못하는 몸으로부터 시작해 신체적 감각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캔버스는 한 사람의 몸이 감각하는 면적이자, 매일의 몸이 눕는 자리, 그리고 최후의 몸이 눕는 땅이 되기도 한다. 또 한편, 세상을 향하는 이해민선의 시선은 관념을 배제한 상태에서 사물 보기를 흥미로워 한다. 작가는 모든 것이 동등한 물질 세계에서는 모든 존재가 각기 자기 힘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말하는데, 화가로서 그는 그러한 사물을 화면으로 불러들이고 그것이 이미지인 동시에 사물이기를 기대한다. 그는 검은 장소, 어딘지 알 수 없는 곳에서, 어떤 실체가 임시 가림막 같은 불완전한 것으로 뒤덮여 있는 그림을 그리고 <바깥>(2018)이라는 제목을 붙였다.[4] 이번 전시에 출품된 두 점의 회화가 모두 <바깥> 시리즈인데, 그는 같은 제목의 비슷한 그림을 여러 점 그렸다. 그러나 이해민선의 <바깥> 시리즈는 반복을 통해 전형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기보다 대상이 바뀔 때마다 무에서 시작한다는 각오로 매번 그리는 방식부터 의심하며 출발한 작업들이다. 그는 이미지보다 생각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한 적 있는데, 그렇지만 그의 작업은 개념적이기보다는 철저히 물질적이고 회화적이라는 역설을 가진다. 이해민선은 재료 역시 그리기의 도구로 치부하기보다는 물질로써 다룬다. 그의 <채석장>(2015)은 인화된 사진을 화학약품으로 녹여서 이 녹아내린 물질을 붓으로 밀어내어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사진의 질료가 다시 회화의 질료가 된 것이다. 여기에는 오늘날 만연한 인화 방식인 디지털 인화 역시 빛에 의한 감광이 아니라 잉크로 그려진 이미지라는 역설이 있다. 기계가 그린(인쇄한) 이미지는 사진인가 회화인가? 분명 이해민선의 의지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이 담은 이미지에 반응한 것에 더 가깝지만, 우리는 사진을 녹이는 행위가 불러일으키는 사진에 대한 ‘부정’을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6.

‘사라짐’ 또는 ‘부재’는 정희승의 사진이 오래전부터 대면해오면서 일련의 사진을 통해서 끝없이 변주하고 있는 하나의 개념이자 테마다. 먼저 <무제>(2017)는 제목이 ‘무제’이지만 작가가 전달해준 이미지 파일은 ‘you are a space57542’라는 파일명을 달고 있었다. 이 파일명은 정희승이 동료 작가 오종과 같이 선보였던 2인전의 제목 《You are a space》(누크갤러리, 2017)와 일치한다. 당시 전시는 오종의 절제된 선이 공간에서 최소한으로 존재하고, 정희승은 사진을 통해서 추상적 사유를 보여주었다. 두 작가의 절제와 추상은 공간을 아름답게 채우기에 충분했지만 정희승의 사진 하나하나는 망각, 공백, 암흑과 같이 어떤 부재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시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장미 사진에서 장미를 오려내 실루엣과 여백만을 남겨 촬영한 이 <무제>는 이미지를 예리하게 오려낸 실루엣만큼이나 부재에 대한 또 다른 감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장미는 완전히 사라졌는데 손끝을 찌르는 따가운 가시에 대한 감각을 어찌할 것인가? 무로 돌아간 공간을 보면서 반응하는 이 몸의 감각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이것은 사실 예리하게 오려진 종이 단면과 이것이 살짝 들뜨면서 만든 그림자가 불러일으킨 감각에 더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장미 가시에 찔리는 듯한 감각으로 치환된 일종의 환상통이다. 또 누군가에게는 언어로 도달하지 못하는 이미지에 대한 환상통이다. <Orb>(2020)는 백색 구형 석고 위에 파도 물결을 마치 잘 다듬어진 동물의 털처럼 색연필로 섬세하게 그린 것을 촬영한 사진으로, 이 작업에는 조각, 회화, 사진의 과정이 담겨 있다. 정희승은 종종 사진 매체의 한계와 가능성에 대한 모색을 다른 매체를 다루는 작가들과의 협업을 통해서 시도하곤 하는데 이 작품 역시 협업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대상의 본래 의미와 이면에 존재하는 의미를 탐구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이때 대상의 외연을 단편적으로 재현하는 것을 지양하며 사진 연출 시 대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편이다. <Orb>처럼 우연한 대상을 촬영한 것이 아니라 협업 작가와의 상의 및 계획하에 제작한 작업은 결코 카메라 뒤에 머무르지 않는 정희승의 적극적인 개입과 연출 방식인 것이고, 이렇게 제작된 이미지는 결국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어가는 대상의 상태로 제시되는 것이다.

 

7.

김경태의 <From Glaciers To Palm Trees>(2016)은 수백 장의 사진을 연결한 동영상이다. “From Glaciers To Palm Trees”는 스위스 관광청 웹사이트에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제안하는 관광 추천 경로 중 하나다. 김경태는 2016년 7월 18일부터 8월 9일까지 스위스의 댐을 방문하며 사진과 비디오로 촬영하였고 이 프로젝트를 〈From Glaciers To Palm Trees: Tracking Dams in Switzerland〉로 명명했다. 작가는 기록한 자료들을 배열하기 위해 당시 댐을 찾아가며 이동했던 주행 경로가 담긴 지도 데이터와 이미지, 비디오 파일의 생성 일시를 대조하며 시간 순으로 추적했고 모두 180점의 사진과 24점의 영상으로 정리하여 책으로 출간하기도 하였다.[5] 고프로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촬영 당시의 현장감을 추적할 수 있게끔 하며, 사진은 거대한 구조물과 그 주변 풍경을 바라보는 사진작가의 시선을 따라서 댐의 스케일에 대한 감각을 상상해 보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김경태는 책에 수록된 이미지 수량보다 더 많은 양의 사진을 동영상으로 편집하였는데, 하나는 5분 남짓한 속도감 있는 영상으로, 다른 하나는 30분 가량의 긴 영상으로 편집하였다. 우리 눈은 소수점 초 단위로 지나가는 이미지를 제대로 좇지 못한다. 스틸 사진은 눈의 속도를 친절하게 기다려주는 정지된 이미지이지만 동영상으로 편집된 사진은 오히려 눈의 속도를 유희하는 태도를 취한다. 사실 작가가 스틸 사진을 동영상으로 편집하게 된 이유는 수백 장에 달하는 사진의 양과 피사체의 거대한 스케일을 실감할 수 있는 이미지로 제시할 방법이 인쇄보다는 빔프로젝터를 이용한 프로젝션이 용이해 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 김경태는 이미지 스케일을 자유자재로 변형할 수 있는 사진에 대한 생각을 말한 적이 있다. 그는 꾸준하게 피사체의 크기나 거리에 따라서 인간의 눈과 카메라 렌즈가 현실감각을 초월하는 이미지를 포착, 경험하게 되는 것에 주목해 온 작가이고, 극도로 작은 사물을 거대한 크기로 확대 촬영하거나, 거대한 크기의 사물이나 풍경을 스케일감, 거리감을 가늠할 수 없게끔 원근을 없앤 이미지로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에게 이미지로서 사진은 이미 충분할 만큼 스케일로부터 자유로워 보이지만, 물리적 실재로서 사진은 여전히 작가에게 한계로 인식되는 것이다.

 

8.

김용관의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2019)와 <신파>(2019)는 <시계방향으로의 항해>(2018)와 함께 그의 아트픽션(AF) 3부작이다. <미메시스의 폐허들, 폐허들의 미메시스>는 보르헤스의 소설 <원형의 폐허들>에서 착안하여, 현실이 미메시스를 모방한다는 개념을 나타낸 애니메이션이다. <신파>는 가상의 비주얼 노벨의 게임 화면을 리플레이한다는 설정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이며 그래픽 노블로도 발간되었다.[6] 김용관의 작업에는 ‘무한’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무한만이 규칙을 벗어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만약 세상의 수많은 결과물들이 결코 필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면 세상을 바꾸는 시도 또한 당위적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러한 당위적 구조에 의문을 품으며 가치를 수평적으로 재배열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말한다.[7] 또한 그는 역사가 수많은 임의, 우연, 무작위적 결정과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며, 다른 역사와 다른 가치를 중시하는 세계에 대해서 상상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김용관의 무한 개념은 김수영의 회화가 변주를 통해 반복, 확장되는 개념을 품고 있는 것과도 비교해 볼 수 있다. 김수영의 수직, 수평 또는 사선형의 그라데이션은 오랫동안 그의 회화적 소재였던 고층 빌딩의 외피에서 출발하였다. 한밤중 불 켜진/꺼진 빌딩 창문의 실루엣이 불러일으키는 반복적 요소와 환영은 김수영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건물 파사드의 반복 요소를 공간지각적으로 받아들인 작가는 반복과 변주를 주요한 요소로 하는 음악에서 비슷한 속성을 발견하게 되었다. 특히 하나의 주제가 선율, 리듬, 화성 등의 변주를 통해 반복, 확장되는 것에 주목하게 되면서 바흐의 푸가, 그중에서도 <Art of the Fugue>에서 영감을 받아 <Mark> 시리즈(2018)를 제작하였다. 그는 모듈과 변형이 푸가 안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면서 악보(평면)가 소리(파동)로, 그 소리가 공간으로 퍼지는 동안 “비가 사선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8] 작가의 설명은 촉감, 청각, 시지각 등 공감각적인 상상을 일으키는데, 이를 회화 캔버스 위에서 시각적 규칙, 불규칙, 미묘한 질감으로 표현해 낸 것은 이미지의 무한한 변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9.

강석호는 일상에서 오랫동안 본 것들을 직접 찍은 사진이나 인터넷, 기사 사진 등을 참조하여 회화 작업으로 옮겨온 작가다. 그가 사진을 참조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작업은 루빅 큐브를 그린 다수의 작업들인데 그는 정물화를 연구하면서 큐브 역시 그 대상으로 삼았고 여러 개의 큐브를 공간에 펼쳐 놓고 큐브의 색면, 큐브들 간의 관계, 공간과의 관계에 대해서 파고들었다. 그의 몰두는 시공간에 대한 몰두로 이어져 우주 공간 상에서 천체의 공전 운동에도 연동시키기도 하였다. 흔히 정물화는 정지된 화면으로 인식되고는 하지만 강석호는 이와 반대로 무한한 시간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듯하다. 한편, 강석호는 《말없는 미술》(하이트컬렉션, 2016)이라는 전시를 기획한 적 있다. 당시 이성휘는 강석호에게 전시 만들기에 대한 고민을 상의한 적 있는데 《말없는 미술》은 여기서 발단이 된 전시이고, 강석호는 언어를 생략하고 작품만을 제시하는 전시 방식을 선택했다. 돌이켜보면 강석호 역시 언어에 대한 모종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기에 전시에서 말을 비우는 선택에 동의한 것 같다. 사실 그는 전시제목을 결정할 때 ‘말없는 코기토’라는 제목을 고수하다가 ‘말없는 미술’에 대한 이성휘의 의지를 꺾지 못했는데, 당시 그가 쓴 전시기획안 초안에서 이에 대한 생각을 추적해 볼 수 있다: “<말없는 코기토>(가제)전은 현대사회라는 시스템에 얽혀진 인간이 경험으로써 지각할 수 있는 감성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타블로에 언어가 등장한 이후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변화하는 과정만큼 미술이라는 장르의 형식과 범주의 변화 또한 복잡하고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해관계를 대변하듯 현대미술은 논리, 이성, 언어로써 작업의 방식과 전시라는 기획 형식에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술은 이성적인 생각의 이해뿐만 아니라 작품을 마주하는 이의 심상과 심미안의 교집합 또한 중요하다. 이 전시는 인문학적 언사나 개념으로 전시의 내용과 형식을 보여주기보다는 물질과 기억, 유희적(시적, 음악적)인 운동의 작품들을 선보이게 된다. 이와 더불어 관람자는 작품에 대한 모든 텍스트화된 정보를 제외한 현상학적 지각을 직간접적으로 하게 하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9] 앞서 말한 것처럼 강석호는 현상학을 중시한 작가였고 전시에 있어서도 현상학적 지각을 중시하였다. 이성휘 역시 전시를 구성함에 있어서 작품에 대한 현상학적 지각을 우선하는 바, 이는 정경빈의 <하얀벽> 연작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정경빈의  <하얀벽> 연작은 속박된 신체가 벽에 이미지를 투사하는 과정을 전제한다. 이번 전시에는 신작 3점과 함께 개인전 《다리없는산책》(상업화랑, 2022)에서 소개되었던 작품들 중 <서울22> 시리즈 일부가 포함되었는데, 작품의 제목은 이미지가 촉발된 장소와 시간 등을 암시하나 그는 사진이나 영상 등의 기록을 참조하지 않고 오로지 기억을 통해 이미지를 다루며 과거에 보았던 풍경에 자신의 심상과 감각을 투사하였다.

 

10.

“장미는 장미가 장미인 것이다.” 누군가의 언어는 이미지를 초월하기도 한다. 거트루드 스타인의 시에서 제목을 가져온 정희승의 <Rose is a rose is a rose> 시리즈(2016)는 이 자명하면서도 알쏭달쏭한 싯구를 이미지 그 자체로 현현시켰다. 이 문장에 어떤 어휘나 해석을 부연한들 군더더기만 될 뿐인데, 정희승은 이미지를 시처럼 다루면서 이미지로서의 시를 완성하였다. 사실 그는 전시공간에 따라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배치하는 일종의 공간적 편집 방식으로 시퀀스를 만들며 공감각적인 내러티브를 구축해 왔고, 이미지를 하나의 어휘처럼 다루면서 전시라는 맥락 안에서 한 편의 시처럼 작동하도록 만드는 작업에 익숙한 작가다. 그런데 이번 《이미지들》에서 그는 자신의 사진들이 하나의 시로 완전해지는 것보다는 여러 이미지들 사이에서 일시적으로 이웃하는 것을 선택했고, 각각의 고유한 리듬을 지니고 있던 이미지들은 전시의 행간에서 새로운 리듬을 찾는다.

 

11.

이제 전시는 한쪽뿐인 날개 또는 어리석음 사이에서 언어를 추가할 것인지 망설인다. 작품 제목과 이미지 파일 제목이 규정한 언어는 이미지 앞에서 한쪽뿐인 날개의 불완전함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두 가지 제목은 전시를 위한 일시적이고 편리한 약속일뿐 이미지는 자유롭다. 마찬가지로 이 전시를 규정하는 언어의 시도는 불완전함을 벗어날 수 없겠지만 이 또한 전시를 추동한 하나의 힘이다. (끝)

[1] 그렇다고 이미지는 하나의 사물로서 머무르지 않는다. 이미지를 사물과 구별하고자 했던 사르트르는 이미지가 이미 부재하는 것으로 정립된 대상을 지금 여기에 현존케 하는 역설을 지닌다고 하였다. 사르트르는 이미지를 인간의 의식이 대상과 맺는 관계이자 대상이 의식에 나타나는 하나의 방식으로 보았고, 인간의 상상 의식은 대상이 현존의 차원에서 비실재적이라는 사실을 외면하지 않으며 오히려 지향하고자 하는 대상의 비실재성을 마주침을 동기로 하여 상상하는 방식으로 대상을 지향한다고 보았다(장 폴 사르트르, 『사르트르의 상상계』, 윤정임 옮김(서울: 도서출판 기파랑, 2010), 21-45).

[2] 강석호, ‘사물과 사건의 기억’, 『3분의 행복』(파주: 미메시스, 2023), 201.

[3] 위의 글, 201.

[4] 안소연, ‘그가 찾고 있는 것과 내가 보고 있는 것, 공백이 지닌 무게와 질감에 대하여’, 《이해민선》(갤러리 소소, 2018) 개인전 리플렛에서 인용.

[5] 김경태, 『From Glaciers To Palm Trees: Tracking Dams in Switzerland』, 서울: 프레스룸, 2021.

[6] 김용관, 『신파 New Wave』, 서울: 알마, 2002.

[7] https://naver.me/FdsHz0EI

[8] https://factory2.kr/IalwaysLookataBase

[9] 강석호, 《말없는 코기토》(가제) 기획안(2016)에서 인용.


기획 : 이성휘
그래픽 디자인 : 프레스룸
주최 : 하이트문화재단
후원 : 하이트진로(주)

(출처 = 하이트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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