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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이은지 : Flickers
기간| 2023.07.22 - 2023.08.19
시간| 월-금 10:00 - 18:00 토 12:00 - 19:00
장소| 아트센터 예술의시간/서울
주소| 서울 금천구 범안로9길 23 (독산동)/예술의 시간
휴관| 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6952-0005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이은지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전시전경

    (이미지 출처 = 예술의시간)

  • 이은지 촛대 01
    2023 종이 약196×40×36cm
    (이미지 출처 = 예술의시간)

  • 이은지 (디테일)불꽃 01
    2023 종이 약70×268×60cm
    (이미지 출처 = 예술의시간)

  • 이은지 불씨
    2021~2023 종이; 화첩 가변크기
    (이미지 출처 = 예술의시간)
  • 			틈(여백)에서 타오르는 생성
    
    나무와 풀이 가득한 산에 불은 매우 위험한 불청객이다. 그리고 불은 물이 충만한 곳으로 가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산과 바다에 불이 있다. 비유적 의미에서 불꽃바위나 촛대바위로 불리우는 바위들이다. 수많은 바위 중에서 몇몇 바위만이 주목받게 된 이유는 이들이 특정한 장소를 알려주는 지표이자 매우 독특하게 형성된 외관으로 인해 기억에 남을 만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존재 당위성과는 별개로 인간에 의해 의미화된다. 이름을 부여받고 특징화를 이룸으로써 다른 대상과 구별된다. 때로 더욱 특별하다고 여겨지는 소수의 몇몇은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가벼운 예로, 바위는 무병장수의 상징인 십장생의 하나로 다뤄져 왔다. 인간의 의미화는 무지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 신비에 쌓인 현상을 명명하고 분류하여 마침내 이해한다. 그보다는 이해했다 믿고 살아간다. 작가는 이러한 인간의 행위에서 허상을 좇는 모습을 발견한다.
    
    이은지 개인전 《Flickers》는 빛이 깜박이듯, 희미하고 불분명한 허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존재를 규정하는 믿음에 내재한 허상의 측면을 드러낸다. 허상은 믿음의 모양을 흔들어 와해시킨다. 그러나 때로 이 허상은 인간이 부여한 의미화를 넘어서는 존재의 변화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하여 결코 부정이 아닌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 될 가능성을 함께 내포한다. 깜박이는 허상은 어떻게 드러나는가? 작가는 유사성과는 거리가 있는, 어쩌면 대립적인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는 대상, 곧 물질이나 개념을 작업의 소재로 소환하고 부딪혀 융합한다. 작가의 변증법에서 드러나는 것은 존재 안에 포섭되지 않고 남아있는 틈(여백)이다. 이 틈(여백)은 이미 자신 안에 들어와 있는 대립자이고, 결코 의미화되지 않는 존재의 측면이며, 믿음이 허상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주요하게 자리하고 있는 소재이자 작가가 지속해 천착하고 있는 매체는 종이이다. 작가는 종이를 설명하는 가장 큰 특징인 유약함―유연함으로 높은 변용성을 갖지만 그만큼 변질하기 쉬운―과 대비되는 대상성을 종이로 구현함으로써 종이의 특성을 강조하고, 종이 소재에 관한 작품적 시도를 수행한다. 부드럽고 파괴되기 쉬운 종이는 강인한 바위가 되고, 빛과 시간의 흔적이 분명한 변색된 종이는 자신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며 작품이 된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종이 작품들은 어쩌면 자신의 가장 큰 적인 ‘불’을 노래하고 있다. 작가가 종이 매체에서 끌어내는 감각적 특성들은 종이에 대한 보통의 인식과는 구별된다. 작가의 행위는 종이 매체에 관한 연구면서 동시에 작가로서의 지속 가능성에 관한 믿음, 혹은 희망과도 결부되어 있다.
    
    전시장은 여러 〈촛대Candlestick〉(01~03)바위와 〈불꽃Flame〉(01~04)바위가 그려내는 풍경으로 가득 차 있다. 바위로 형성되는 길은 촛대바위에서부터 불꽃바위로 이어지며, 마치 작은 불씨에서 큰불이 되는 듯한 광경을 연출한다. 모든 바위는 파쇄한 종잇조각으로 이뤄졌다. 쓰임을 다하여 버려진 종잇조각들은 쌓이고 뭉쳐 바위같이 단단해진다. 종이는 언제나 유약한가? 바위는 언제나 견고한가? 상반되는 특성을 지닌 종이와 바위의 결합체는 종이도 아니고 바위도 아닌, 부드럽지도 단단하지도 않은 제삼의 감각적 층위를 구성한다. 종이는 단단한 바위를 흉내 낸다. 견고함을 향한 이들의 협동심은 불이나 물을 만나기 전까지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바위 어딘가 작은 틈(여백)을 남겨둔다. 벌어진 틈 사이로 바위 내면에 가득 찬 종이가 내비친다. 이로써 부스러기 종이로 쌓아 올린 굳건한 바위는 자신의 태생을 숨기지 못한다.
    
    보통의 풍경이 자랑하는 드넓은 광활함은 보는 이들에게 시원함을 선사한다. 그런데 작가는 이번 전시 공간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풍경에 독특한 여백을 부여한다. 사방에 벽이 있는 전시 공간의 한쪽 면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입구가 뚫려있는 형태로 되어있다. 그렇기에 전시 공간은 열리고-닫힘을 반복하며, 자신을 드러내고-가리우는 규칙적인 틈을 가진다. 이와 같은 공간의 틈은 바위 풍경의 인식을 가능하고-불가하게 제공하며 우리의 감상을 지연시킨다. 공간의 틈(여백)은 촛대바위와 불꽃바위의 형상을 분절하고 우리의 시선을 다각도로 분산한다. 지연된 풍경은 여전히 우리 눈이 촛대바위와 불꽃바위를 보고 있는지를 묻는다. 작가는 우리 시선의 방향을 적극적으로 제안한다. 이곳에서 바라봄은 의미화가 만들어 낸 풍경(자연)의 포섭되지 못한 틈(여백)을 드러낸다.
    
    바위 풍경과 무척이나 닮은 형상이 있다. 풍경이 너무 그리워 풍경을 닮아버린 것일까? 아니면 풍경에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것일까? 작가의 드로잉 작업은 풍경으로 들어온 한 존재에 관해 말한다. 어딘가 모르게 분명하지 않은 형상은 인간의 모습 같기도 하며, 인간을 닮은 바위의 초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무심해 보이는 돌덩이에서 한 명의 인간을 본다. 어쩌면 이것은 오랜 시간 웅크려 움직이지 않아 돌이 되어버린 누군가일지도 모른다. 잠시 시선을 뗀 사이 그것은 다시 움직여 달아날지도 모른다. 여러 형상이 중첩되어 있어 마치 덩어리와 같이 된 사람은 그 자체로 부정(不定)의 상태를 나타낸다. 작가에게서 덩어리는 개별-전체, 안-밖의 경계 위에 있음을 상징하며 그 자체로 모호한, 상태가 정해지지 않은, 가능성으로 존재한다. 덩어리는 존재를 명확히 규정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존재의 틈(여백)이다. 지금 우리 앞에 존재하는 사람 또는 그 무엇은 우리와 끊임없이 상호 하며 대화를 시도한다. 이 허상의 존재 상태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시선이다.
    
    타오를 불을 꿈꾸는 이가 있다. 거대한 불의 시작도 희미한 불씨에서 비롯되기 마련이다. 〈불씨Creeper〉는 발상의 시작이자 생성의 동력이며 타오를 희망이다. 불씨를 일으키기 위한 두 형태의 동력이 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행위와 자리를 지키고 움직이지 않음을 행위 하는 상반된 동력이다. ‘움직임’은 가끔 움직이지 않는 자신을 상상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이동할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며 부지런히 나아간다. 노력 끝에 얼어붙은 성냥과 타고 남은 초를 찾지만, 움직임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멈춤’은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생각했지만, 어쩌면 무거운 무게로 자리를 지킬 수 있다면, 찰나의 스침에도 불씨가 생기리라 믿는다. 이 둘의 만남은 작고 희미하지만 하나의 불씨를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짧지만 수수께끼 같은 작가의 에세이는 존재 내면에 자리한 틈(여백)이 일으키는 생성의 힘을 묘사한다. 타인으로부터의 구분은 안정감으로 자리한다. 그러나 때로 찾아오는 회의적 의구심은 내면의 틈(여백)을 보게 한다. 어떤 의미로도 환원될 수 없는 결핍, 곧 틈(여백)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힘으로 작용한다. 결국 허상과도 같은 존재의 틈(여백)에서 새로운 불씨, 생성이 타오를 수 있다.
    
    이은지는 이번 개인전에서 견고한 믿음에 드리운 허상이 반짝이는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 허상이 결코 새로운 발견이 아님을 말한다. 믿음은 애초부터 허상과 함께하고 있었다. 믿음은 허상으로 완성되고 허상은 믿음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확고히 한다. 우리에게 영원히 결핍으로 남아있을 것은 의미화되지 않고 남아있는 존재의 한 측면이며, 의미화되기 이전에도 살아 숨 쉬었을 존재이자 세계이다. 우리는 허상의 세계에 산다. 작가는 존재에 틈(여백)을 통해 대상의 구분됨을 지워낸다. 그리하여 더욱 분명해지는 허상은 의미에 의해 억압되어 있던 대상의 경계를 허물고, 가능성의 덩어리를 보게 한다. 틈(여백)에서 타오르는 불씨는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생성의 힘이자, 작가에게는 예술을 지속하게 하는 가능성의 힘이다.
    
    /김민경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큐레이터)
    
    
    
    주최 : 아트센터 예술의 시간
    후원 : ㈜영일프레시젼
    디렉터 : 주시영
    큐레이터 : 김민경
    어시스턴트 큐레이터 : 이재희
    에듀케이터 : 유상아
    운영지원 : 설미숙
    글 : 김민경
    사진촬영 : 송호철
    그래픽디자인 : 김박현정
    운송 : 원아트
    
    (출처 = 예술의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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