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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전진표 :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Exhibition Poster
기간| 2023.10.12 - 2023.11.04
시간| 11:00 - 18:00
장소| JJ 중정갤러리/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평창동 234-33
휴관| 월요일, 일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549-0207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전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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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전진표

    (이미지 출처 = 중정갤러리)

  • 전진표

    (이미지 출처 = 중정갤러리)

  • 전진표

    (이미지 출처 = 중정갤러리)

  • 전진표

    (이미지 출처 = 중정갤러리)
  •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꽃인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 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 김춘수, 서풍부 전문
    
    
    
    1.
    김춘수의 〈서풍부(西風賦)〉는 한순간, 한 화면 구성으로 포착되기 힘든 이미지를 글로 풀어낸다. 서풍은 여름 끝에 부는 건조하고 선선한 바람인 하늬바람이다. 하늬바람이 부는 때는 복사꽃 피는 봄과 시차가 크다. 시가 묘사하는 풍경은 상충하는 시어로 인해 당장 눈앞에 이는 바람을 보고 쓴 것인지, 과거의 바람을 떠올리며 혹은 그와 관련한 기억을 떠올리며 쓴 것인지 모호하다.
    
    시 제목인 '부賦'에서 시작해 보자. 부는 한문학의 장르로 시나 산문에 가까운 글이다. 표현이 아름답거나 서정적일 수는 있으나, 비유보다는 눈앞의 경치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기가 특징이라 한다. 서풍부도 '부'이므로 작가가 어떤 시점에서 바라본 풍경을 있는 그대로 서술했다고 간주해 볼 수도 있겠으나 그 표현이 오묘하다. 김춘수는 눈앞의 풍광을 이도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여러 번의 부정으로 묘사한다. 마치 ‘~인 듯하다’는 묘사를 시도하지만, 역시나 여러 번에 걸쳐 가능성만을 제시하는 비유는 하나의 의미에 도달하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시가 묘사하는 이미지는 하나의 장면으로 포착되지 않는다. 독자는 시를 읽으며 빛의 일렁임과 풀 내음, 이야기와 울음에서 연상할 수 있을 명확하지는 않은 소리를 엮어 감각적인 장면들을 구성하고, 시의 중간에 이르러 ‘지나가다’, ‘흔들다’와 같은 술어를 통해 정확한 시점은 알 수 없으나 시공간 안에 펼쳐지는 운동성을 장면들 사이에 부여할 수 있다. 이때에 앞선 감각들은 지속하는 잔상, 잔향(殘香)과 잔향(殘響)으로 바뀌고 독자는 그 사이에서 소요한다.
    
    김춘수는 시라는 미디어 안에서 단어가 갖는 시제의 함의를 충돌시키기, 부정과 비유, 말줄임표와 문장의 도치, 운율 생성 등을 통해 결코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나 의미로 포착되지 않는 연속한 이미지를 독자가 그려낼 수 있도록 한다. 이와 비슷한 이미지를 회화라는 미디어로 그려내는 일도 가능할까?
    
    
    2.
    전진표의 회화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그가 본인의 작업에서 강조하는 바는 과정으로서의 회화다. ‘과정’이란 일이 되어가는 경로를 이른다. 과정은 어떤 일이 전개되어 가는 양상, 즉 시공간의 변화를 담지하지만 최종 결과물이나 완성의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 대개 회화라는 미디어는 눈앞에 하나의 고정된 평면을 제시한다. 움직이지 않는 물리적 화면을 보이는 동시에 내용이 미완인 상태의 회화, 즉 작가의 설명처럼 ‘과정 중의 회화’가 되려면 그는 작품 속에서 모종의 변화하는 움직임을 정지하지 않은 시공간 속에서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일터였던 가설의 파빌리온, 무대 현장에 자유롭게 드나들었다고 한다. 출입을 금한다는 문구와 조형물, 그 경계를 넘어 다니며 쌓인 공사 자재, 비계와 가림막 가득한 풍경(을 접했다). 그곳의 구조물은 임시적이며 가변적이다. 과정 중에 있는 공사장의 풍경을 한 화면에 담아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사장 풍경에서 착안해 2009년부터 시작했다는 〈Dear Process〉 시리즈는 건축가가 완성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둔 도시나 건물의 설계도와 닮았다. 그의 초기 회화에 해당하는 이 시리즈는 다시점의 원근법을 사용해 다양한 조형적 구성 요소를 배치한다. 특정한 시점에서의 원근을 피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림의 구도나 그림의 구성 요소를 명확하게 하기 위해 그은 선들은 서로를 넘나든다. 한편, 선 위를 침범하여 채색된 정형 및 비정형의 색상 면(이것을 면이라 부를 수 있다면)들은 그림의 여러 요소 간 영역을 침범하고 가로지른다.
     
    전진표의 작업은 이후 원근 자체가 사라진 형태로 발전한다. 여전히 공사장의 철탑과 같은 조형물을 확인할 수 있는 작업이더라도 2013년도 이후 제작한 〈Quality Time〉과 같은 시리즈부터는 그림에서 원근을 찾기 힘들다. 이 시점에 이르러 분홍색의 철탑과 같은 조형적 구성 요소는 감상자 눈의 존재, 그 위치를 신경 쓰지 않고 원근이 사라진 평행선상에서 들쭉날쭉 존재한다. 제각각의 크기로 병치된 조형적 구성 요소들은 앞으로 뒤로 한없이 늘거나 줄 것 같은 움직임을 상상하게 한다. 마치 가상공간 속에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수학적 함수에 따라 출력한 오브제처럼 보인다. 명암을 넣어 채색한 철탑 주변에는 다양한 색상으로 칠해진 면들이 있다. 각각의 색면은 그림판에서 색 붓기를 한 듯, 파워포인트에서 도형에 그라데이션 효과를 적용한 듯하기도 하여 현실 세계의 원근이나 입체감의 재현과는 더욱 동떨어진다.
    
    〈서풍부〉가 시 안에서 모순되는 시제를 내포하는 단어를 병치하고 움직임의 묘사를 동원해 감상자가 독해하는 풍경의 시간을 영원하게 혹은 영원히 동시적이게 만들었다면, 전진표는 보는 이의 시점을 모호하게 한 뒤, 다시 말해 원근법에 근거한 공간성을 뒤튼 후에 리드미컬한 조형적 구성 요소의 병치로 움직임을 구현하여 유사한 효과를 성취한다. 시공간 중 무엇하나가 뒤틀리면 우리는 이를 현실이거나 현실의 연장이라 체감하기 어려워진다.
    
    특정 조형 요소의 반복 및 병치와 더불어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주제일지도 모르는 혹은 질문을 던지는 면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머릿 속으로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는 시와 달리 회화는 캔버스 위에서 선과 면을 활용한 화면 구성을 통해 이미지를 직접 보여준다. 그러나 전진표의 그림은 무엇을 어디까지 면으로 보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만약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이미지를 생성하고 편집해 본 경험이 회화에도 적용된 것이라고 가정해 본다면 어떨까. 소프트웨어에서 함수와 명령을 이용해 가상공간에 만든 평면은 언제든지 손쉽게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 출력값에 불과한지 모른다. 가상공간에서 생성한 평면은 언제든 다시 선으로, 입체로, 패턴을 갖는 이미지로, 하나의 레이어를 갖는 또 다른 공간으로 변신할 가능성을 갖는다. 이런 맥락에 따라 작가가 고정되고 경계 지워진 면을 거부하고 실험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하자면 2013년부터의 〈Untitled〉 시리즈는 그라데이션으로 늘어선 색들(혹은 색면), 멀리서는 그라데이션처럼 보이지만 작은 네모칸으로 이뤄진 컬러칩의 배열(혹은 각 컬러칩의 색면), 배경과는 구분되는 동그라미 모양의 조형과 물결치는 듯한 조형 요소(혹은 하나의 요소 그 자체가 배경과 구분되는 하나의 면 또는 레이어)의 배열 등을 실험한다고 볼 수도 있다.
    
    2019년에 이르러 〈Untitled {∞×∞}〉 시리즈는 그간 실험한 요소를 한 화면에 뒤섞어 배치한다. 2022년작 〈하늘색 물감포_제목기재 요〉는 두껍게 말라붙인 물감으로 만든 포들을 잘라 캔버스 위에 붙였다. 비슷한 색상과 같은 방향으로 물결치는 패턴으로 이뤄진 여러 면 혹은 레이어를 보여준다. 감상자는 그림 속 다중의 면을 하나의 면, 레이어, 공간 등으로 상정해 보면서 어디까지를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는 장면으로 삼아 감상할지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우리는 면들의 경계와 그것들의 충돌을 이해하기 위해 이면과 저면을 잇고 떼기를 반복하며 능동적으로 보아야만 하는 놀이에 말려든다.
    
    전진표의 회화의 평면은 무한히 확장할 것 같고, 매우 매끄러울 것 같고, 앞으로 뒤로 튀어 나올 것 같기도 하고, 계속해서 물결칠 것 같다. 이차원과 삼차원을 섞어 배치해 충돌하는 효과를 준 평면들의 조합은 막상 가까이서 보면 결국 하나의 화면을 갖는 캔버스 회화이다. 거친 붓질과 탈각된 물감 흔적, 흐른 듯이 연출된 물감 자국, 분할된 면 혹은 선 사이를 뭉개는 물감의 번짐, 역시나 면을 뭉개는 스프레이를 뿌린 것과 같은 채색 효과는 감상자와 같은 차원에서 실재하는 눈앞의 회화를 인식하게 한다. 그의 그림은 감상자로 하여금 다양한 차원에서 펼쳐지는 평면의 가능성을 유희하게 하는 미디어이자 캔버스라는 면과 물감이라는 물리적인 한계를 갖는 회화가 된다.
    
    
    3.
    전진표의 회화는 평면성의 탐구라는 차원에서 이승조(1941~1990)의 회화와 비교해 볼 수도 있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서구적인 의미의 기하학적 추상회화에 가장 가까운 작가로 꼽히는 이승조는 무한히 확장하고 반복될 것만 같은 파이프의 형상을 변주해 그린 <핵> 시리즈로 유명하다. 그는 파이프 그림을 완성하게 된 계기가 기차 여행 중 망막을 스쳐가는 이미지를 붙잡아 그린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때 구상한 단순한 조형적 요소인 파이프 형태를 패턴 삼아 변주하는 시리즈를 지속했다.
    
    전진표와 이승조의 회화가 겹쳐지는 지점은 세계를 재현하지 않는 순수한 평면의 세계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승조는 ‘우주적인 시점에서 응시할 수 있는 공간’을 상상했고, 전진표 또한 현실 세계의 원근이나 입체감을 상정하지 않은 가상의 공간을 상상해 회화 속 평면을 구성한다. 또, 이승조가 회화의 평면성을 존중하면서 형과 색의 기본 요소만으로 순수 색면을 유지하고 시리즈로 변주해 나간 것처럼 전진표 또한 선과 면을 활용하며 단순화한 조형 요소 몇 가지를 패턴화하여 평면에 배치한다. 두 작가의 회화 모두 복잡하지 않은 형태의 조형 요소, 다시 말해 일정 패턴을 활용하여 원근이 사라진 평면을 구성한다는 점, 그리고 패턴을 병치하고 반복하여 평면에 움직임과 율동감을 구현한다는 점이 같다.
    
    그러나 고도의 도시화를 거쳐 디지털 미디어로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라난 세대인 전진표의 회화는 막 산업화와 도시화가 시작하던 시절에 나온 이승조의 회화와는 또 다르다. 몬드리안은 보편적인 원리는 어디에나 있을 것이라 믿으며 당장 눈에 보이는 자연물인 나무를 추상적 형태로 환원했고, 이승조는 본인이 의식했든 안 했든 빠른 기차에서 얻은 잔상이자 많은 이가 당대 산업화의 상징으로 지목하는 파이프를 패턴 삼아 기하 추상 작업을 했다. 결국 당대의 추상이 작가의 눈에 포착된 어떤 특징적인 형태에서 비롯한다면, 오늘날 추상 작업을 하는 세대에게도 지금 당신의 눈으로 무엇을 보느냐를 물을 필요가 있다.
    
    전진표는 어린 시절 눈으로 직접 본 공사장의 풍경은 물론, 게임, 영화 등 다양한 미디어가 매개하는 다시점의 풍경을 보고 자란 세대다. 이 세대는 일상적으로 스크린을 스크롤하고, 하이퍼링크로 이어진 창을 열면서 눈과 손을 함께 움직인다. 또한 단순히 이미지를 자르고 붙이기를 넘어 새로운 레이어를 통해 합성하고 왜곡하기는 물론, 저장과 불러오기가 가능한 디자인 툴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는데 익숙하다. 이런 환경에서 길러진 감각을 바탕으로 이들은 눈으로 보는 대상이 확고한 물리적 대상으로 고정되지 않을 수도 있고, 그것에 국한되지도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작가가 수년간 뮤직비디오 미술감독으로 일하면서 발견한 사실은 디지털 미디어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상호작용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보기에 영상 제작 과정에서 참조하는 디지털 미디어는 그들 사이에서 배회, 복제, 충돌, 간섭, 참조, 변형하며 확산한다. 미디어가 쉽게 변화하고 빠르게 갱신되는 과정을 목도한 작가의 눈은 이제 현 시점에서 목도하는 이미지가 완성형일 수도 고정된 상태일 수도 없음을 안다.
    
    전진표는 언어, 사물, 세계 그 어디에도 고정된 의미나 형태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 간 끊임없는 움직임과 상호 영향 관계는 쉬이 간과된다. 작가의 설명대로 디지털 미디어가 서로를 끝없는 상호 작용 속에서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면, 디지털 미디어를 경유해 포착된 이미지 또한 그 변신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생성하는 과정 중에 있으므로 그 상태를 그대로 재현하기는 불가능하다. 언뜻 고정된 듯 보이거나 임의로 경계 지운 것들을 대상으로 하여 재현하는 회화란 지난 세대의 시각성에서 비롯한다. 작가노트에서 그는 “굳은 실제에 대응하는 쉼 없는 움직임”을 언급하며 “이러한 움직임들이 서로를 ‘배회하고 복제하며’, ‘충돌하고 간섭하며’, ‘참조하고 변형하며’ 구축하는 내밀한 관계망과 여기에서 생성되는 능동적 변화가 굳은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작업을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전 세대나 옛 미디어를 통해 답습해 온 관성적인 시각성에 맞서 새로운 현실에 연동할 수 있는 역동적인 힘을 내재한 회화를 그리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된다.
    
    
    4.
    그의 그림을 앞에 두고 이 그림은 무엇을 그린 것이냐 묻는다면 아마도 그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읊을지 모르겠다. 과정으로서의 회화는 보이는 것 너머의 움직임과 그 역동성을 오늘의 현실에 연계해 발견하는 지금의 감상으로 완성될 것이기 때문이다.
    
    (출처 = 중정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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