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김주영 (파리1대학 조형예술학박사, 서울대 동국대 강사) 서울대 조소과 선후배로 구성된 ‘자전거 마실’ 그룹은 자전거를 타고 서울의 구도심 이곳저곳 골목길을 탐방한다. 그 과정에서 오늘날 서울의 모습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관찰하며 삶의 풍류를 즐기는 이들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삶의 모든 체험이 곧 작품임을 보여준다. 일찍이 ‘리차드 롱’이 도보를 통한 자연 속 여정을 작품화했던 것처럼, 이들에게 있어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과 공간을 자전거로 경험하는 과정 자체가 ‘원초적이고 보편적인 인간 행위’로부터 출발하여 하나의 은유적인 작품을 낳는 작업 형태가 된다. 차로 다니면 볼 수 없던 골목길 속 풍경과 걸어 다니면 미처 다 볼 수 없는 범위의 도심 풍경을, 자전거로 다니면 볼 수 있다고 이들은 말한다. 이렇게 이 작가들의 자전거를 이용한 ‘서울문명탐사’는 놀이이자 삶의 여정이고 예술작업이 된다. 예술가들의 자전거 마실은 풍납동의 풍경과 역사 이야기를 만나 잠시 여정을 멈추고 시각 예술품으로 기록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외국인들에게 서울은 과거와 현대가 독특한 방식으로 뒤섞여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준다고 한다. 현대적인 최첨단 도시 모습과 전통 건축물, 옛스러운 골목 풍경, 여전히 고전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독특한 분위기와 인상을 안겨 준다는 것이다. 과거와 현대가 극적인 대비와 조화를 이루는 신비로운 서울의 모습은 정작 그곳에 사는 본토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부분일 수 있다. 풍납동 또한 이러한 서울의 현재 모습을 담고 있다. 첨단 기술과 최신식 환경을 향해 수시로 뒤집히는 개발과, 옛 도시를 복원하고 들춰내는 작업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거대한 공간 서울. 그중에서 옛것을 다시 드러내고자 하는 과정 중에 있는 풍납동은 백제 초기 유물이 발굴된 이후 정치 경제 사회적 상황이 얽혀 있는 지역이 되었다. ‘자전거 마실’ 그룹은 조소과적 관찰력과 작업 습관을 바탕으로, 조용하면서도 시끌벅적한 이슈를 품고 있는 풍납동이라는 공간과 시간을 다각적이고 입체적으로 체험하였다. 로잘린 크라우스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조각은 특정한 장소에 그 장소와 연관되는 인물이나 사건을 기리는 기념물로 세워지며, 근본적으로 장소 특정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한다. 따라서 굳이 이들이 조소과 출신이라는 것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풍납동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이들의 작품은 장소 특정성을 지닌 조각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백제 시대, 고대로의 회귀를 위한 개발이라는 특별한 이슈를 지닌 ‘풍납동’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눈여겨볼 점은 크게 두 가지이다. 우선 참여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한 ‘축적(accumulation)’이라는 키워드가 각각의 작업에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를 찾는 것이다. 풍납동 골목을 유희적 태도로 탐험하는 예술가들에게 포착된 것은, 오늘날 이 지역의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낸 배경이 된 개발 과정에서의 실질적이고 현실적 문제들과는 다른 것이었다. 예술가들에게 감각적으로 포착된 풍납동 지층의 축적은 자연의 실질적 작업이기도 하지만 세월이라는 비가시적 요소를 포함하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삶과 역사가 담긴 변화하는 시간을 가득히 품은 상징적인 지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출처 = 공간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