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FIM은 2025년 3월 13일부터 4월 19일까지 슬로바키아 출생 작가 안드레이 두브라브스키(Andrej Dúbravský)의 작품을 아시아에 처음 소개하는 전시 «두 여름의 폭풍 사이 지역 철학자»를 선보입니다. 슬로바키아를 기반으로 독일 베를린과 미국 뉴욕 등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슬로바키아 남서부의 시골에 위치한 정원과 작업실의 농촌 풍경들에서 시각적 영감을 받아 환경 파괴와 역사의 잔재 속에서 발견되는 풍요와 생동감, 그리고 그것의 상실에 대해 감수성 깊은 동시에 냉철한 관점을 표현합니다. 전시 서문 전시 «두 여름의 폭풍 사이 지역 철학자»에는 날갯짓하며 꽃 위를 날아다니거나 그 위에 앉아 꽃가루를 흩뜨리는 벌, 물가에 누워 한적히 시간을 보내는 소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노년 남성, 머리 위 뿔을 단 소년의 두상이 놓인 일련의 회화가 하나의 알레고리처럼 엮어져 있다. 우리를 또 다른 시공간의 계절로 데려가는 듯한 이 회화들은 작가의 기존 작품들에 줄곧 등장하는 뿔 달린 소년들의 신화적 이미지와 애벌레, 벌 등의 자연 대상과 같이 작가 고유의 표현 방식과 관심사가 잘 드러나는 주제들로 구성되었다. 작가는 시골의 개인 정원에서 꽃과 식물을 직접 가꾸는데, 이는 벌을 포함해 주변의 많은 야생 곤충과 동물들에게 안식처가 되어 준다. 이곳에서 작가는 저만의 규칙과 체계를 지키면서도 유려하고 기품 있는 자연의 모습에 영감받고, 이들 존재의 생명력과 움직임으로부터 예술적 실마리를 찾는다. 그중에서도 전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ʻ벌’은 작가의 특별한 관심사를 드러낸다. 작가 자신으로 비유되기도 하는 이 일벌들은 그들 자체로 하나의 사회를 구성하고 더 나아가 현대의 가속화된 시간과 바쁜 삶을 대변하는 존재로 상징화된다. 벌은 또한 꽃과 식물의 번식을 책임지는 생태계의 중추 역할이자 멸종 위기에 놓인 생명체로서, 자연의 울타리를 침범해 가는 인간 문명과 기후 위기의 위협을 암시한다. 화면 속 곤충의 몸체와 꽃가루의 다채로운 질감 표현은 작가의 독창적이고 과감한 색채적 실험을 화면 위에 구현해 내고, 꽃 위를 유영하는 암컷 일벌들이 꽃가루를 흩트리는 순간의 장면은 도발적이고 끈적한 촉각적 이미지로 치환되며 생태계가 지닌 미지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더 나아가 이들이 촉발하는 감각과 명상은 사회 정치적 현상과 개인의 윤리적 삶의 혼돈 속 자연의 지치지 않는 생명력과 무심한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종종 위안이 되어준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한편, 작가의 고유한 회화적 언어인 줄무늬는 개인적이고 내밀한 삶을 함의하는 가정의 직물 그리고 몸과 가장 밀접한 속옷 등 옷감의 무늬에서 파생된 것이다. 이는 작가가 개인적 주체로서 지니는 시간과 삶이 벌, 곤충과 같은 자연 속 객체들과 교차되는 공간으로서 다층적인 기억과 서사가 서로에게 반응하고 교류하는 하나의 합성적 장면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또한 작가에게 있어 이 줄무늬 직물은 가족과의 유대와 유년기의 노스탤지어와 연결되며, 삶의 안락과 쾌락, 현실과 욕망을 횡단케 하는 해방적 장치이다. 전시의 또 다른 부분을 차지하는 여름 풍경의 그림들은 보다 이색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내륙 국가인 슬로바키아에서 작가가 실제 여름을 보내는 인공 호수를 배경으로 한다. 소박한 동유럽 시골의 호수는 사회적 지위와 나이, 그로 비롯한 관례에서 모두 자유로운 공간으로서 가장 사적이고도 순수한 만남을 성사하는 곳이다. 고전 회화의 ʻ아테네 학당’을 연상시키는 <Local philosopher at gravel pit lake>(2025)에서 자신보다 어린 이들에게 오래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듯한 나이 든 ʻ지역 철학자’의 모습은 철학적 사유와 일상의 가벼움에 대한 중의적 표현으로서, 지혜나 교도에 대한 우리의 앳된 선망과 그에 대한 위트 있는 시선을 담아낸다. 또한 몸을 둘러싼 젊음과 아름다움의 문제는 현대 문화의 미적 추구와 자본적 결속으로 뻗쳐나가는 주제들로 두브라브스키의 또 다른 주요 관심사가 되며, 해변이나 호숫가는 이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운 일종의 유토피아로서 기능한다. 특히 이 해변 풍경들은 이탈리아 중세 회화를 연상시키는 파란색과 분홍색의 색채, 그리고 두터운 질감의 표현을 통해 몽환적이고 서정적으로 묘사되었다. 이처럼 서구 미술사의 참조들을 경험적이고 미시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작가의 현대적인 접근법은 <Head of David and Goliath in one self portrait lying on pillow case which wasn’t washed the whole month of July after 4 step skin routine>(2025)에서도 잘 드러난다. 제목과 같이 ʻ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의미술사적 모티프를 참고하는 작품은 작가의 내면에 작동하는 타자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과 복합적인 감정의 층위를 강렬한 두상 초상화로 표현한다. 이처럼 다층적인 서사와 복수의 시간성을 담아내는 작가의 회화 속 우리는 여름의 폭풍 사이, 마치 멈춰진 시공간 같은 그곳에 읊조려지는 한 철학자의 아포리즘에 귀 기울인다. -이미지 제공 ,출처: FIM / Courtesy of the artist and F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