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개는 털이 있고, 표정이 있고, 움직인다. 굴은 축축하고, 껍질 안에 있고, 미끄러운 무언가를 품고 있다. 서로 전혀 닮지 않은 것들 사이에서 엉뚱한 대화를 상상하는 건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이번 전시 〈개 굴〉은 그런 상상에서 출발했다. 직관적으로 그려보고 싶은 생기를 지닌 동물들과, 알 수 없는 매력을 품은 굴. 판화는 기꺼이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몸으로 이미지를 그려 내는 작업이다. 털, 껍질, 눈동자, 질감들을 긁고, 문지르고, 덮고, 찍어낸다. 시간을 들인 만큼 색이 쌓이고, 실수는 무늬가 된다. (정확히는, 실수가 마음에 들 때도 있다.) 디지털로 빠르게 그림을 완성하는 일과 판화로 느리게 그림을 완성하는 일은 다르다. 그 차이 사이에서 나는 뭔가를 찾고 있었다. 아주 사적인 기쁨 같은 것. 동물은 늘 생기 있게 말을 걸어왔고, 굴은 비밀스럽게 내게 다가왔다. 속이 보이지 않아 더 그리고 싶은 것들.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아마 그런 데 있는지도 모른다. “The world is your oyster.” 세상은, 마음껏 열어볼 수 있는 굴 같은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이번 작업은, 내 마음대로 그리고 싶은 것들을 기꺼이 열어본 기록이다. 〈개 굴〉은 낯선 조합과 사적인 기쁨,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이야기의 조각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