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향기로운 풀 내음과 꽃향기, 무더운 날씨에 끈적이게 몸에 스며드는 습도와 온도, 순간순간 색채를 달리하는 나무들, 그리고 시리도록 매서운 바람이 온갖 가지를 흔드는 소리. 이 모든 요소들을 통해 우리는 자연을 감지한다. 외부의 자연은 오감을 통해 우리 내면으로 스며들며, 생명이 다한 신체가 결국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우리 자신도 자연의 일부임을 깨닫게 된다. 이처럼 광대한 자연의 영역은 한 문장으로 결속짓기 어려우며, 여러 갈래의 시선을 통해 다양한 의미로 정의된다. 이번 전시 〈낯익음, 낯설음〉은 네 명의 작가 정석우, 진형주, 최영빈, 로버트 톰슨이 각기 다른 감각과 사유를 통해 포착한 ‘자연’의 다양한 형상들을 조명한다. 익숙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낯선 이미지들, 혹은 설명하기 어려운 정서적 풍경들을 통해, 이들은 자연과 인간, 기억과 감각, 추상과 현실 사이의 교차 지점을 탐구한다. 작가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자연’을 사유하며, 우리가 그동안 지나쳤던 감각의 틈을 비추고, 그 안에서 되살아나는 어떤 정서적 풍경을 제시한다. 진형주는 풍경을 기억의 조각으로 재구성하는 회화를 선보인다. 그의 화면에는 풀과 나무, 햇살, 연못 같은 요소들이 등장하지만, 구체적인 재현이 아닌 색과 터치로 진형주만의 회화언어로 번역된 추상 풍경이다. 작가는 회화가 정해진 형식이 아니라 몸에 새겨진 감각을 따라가는 여정이라고 말한다. 그는 색을 미리 설정하지 않고, 형태를 규정하지 않으며, 즉흥적인 흐름 속에서 손의 감각을 따라간다. 그렇게 화면 위에 겹쳐지는 감각의 잔상들은 낯설고도 익숙한 정서적 풍경이 된다. 정석우는 재료의 표면에 축적되는 시간과 감각의 흔적을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시각적 인식을 전복한다. 시간에 따라 벗겨지고 덧칠된 표면, 반복되는 마감과 연마의 흔적은 단순한 형상을 넘어 감각적 풍경으로 작동한다. 그의 작업은 단지 ‘보이는 것’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 너머에 스며든 감정과 서사를 호출한다. 대상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감싸는 공기, 오래 머문 시간의 밀도, 마주했던 기억의 잔향은 그대로 남아 관람자와 조우한다. 최영빈은 회화를 통해 관찰자로서의 자아와 세계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가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연 속에 스며드는 감각의 상태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물감의 덩어리를 밀고, 번지는 색을 구조화하며, 반복되는 패턴 안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작업은 주체의 사라짐과 저항 사이를 오가는 과정이다. 그녀의 화면은 자연과 일치를 지향하면서도 끝내 그 경계에서 머무는 의지의 기록이다. 인위적인 제스처와 질서 속에 감각의 긴장을 가두며, 끝내는 관찰자의 눈만이 남는다. 최영빈의 회화는 완성된 이미지가 아니라, 자신을 밀어붙이는 행위 그 자체로서 존재한다. 로버트 H. 톰슨은 들뢰즈의 전제를 출발점으로 삼는다. 즉,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답뿐이다. 그에게 있어 회화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여긴 것을 다시 탐색하는 과정이며, 결국에는 그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여정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그 답을, 비록 잠시이고 부분적으로 일지라도, 눈에 보이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 전시는 ‘인식’과 ‘재인식’ 사이, ‘기억’과 ‘감각’ 사이에 위치한 작품들을 통해 관람자에게 낯익고도 낯선 자연의 면면을 다시 바라볼 기회를 제공한다. *출처 및 제공: 진선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