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불가분적 관계 안토니 곰리 개인전 ‘예술은 인간의 인식 체계를 확장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을까? 변화된 인간 본성을 자각하게 하고, 이를 의식적인 경험으로 끌어올리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예술이 우리로 하여금 현재의 순간을 보다 생생히 경험할 수 있게 만들기를 바란다. 또한 내가 지향하는 예술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과 각자의 행동, 정신, 영혼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하도록 일깨워주도록 하는 것이다. 본 전시 ‘불가분적 관계’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 속에서 신체가 주변 환경과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그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상호 연결 속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 안토니 곰리 안토니 곰리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 (Inextricable)’는 화이트 큐브와 타데우스 로팍의 공동 기획으로 양 갤러리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전시는 도시의 공적인 공간과 내밀한 안식처를 탐구하며, 인간과 도시 간의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조명한다. 두 공간의 깊이 있는 연결을 통해, 작가는 “환경이 인간을 형성한다(The world now builds us.)”라고 단언한다. 본 전시는 성찰적 사유의 장이자, 도시 건축의 재료와 방식을 논하는 실험적 공간으로 기능하며, 작가는 자신의 조형 언어를 통해 신체와 그것을 둘러싼 환경 사이에 공명하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먼저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는 안토니 곰리의 지속적인 조각 시리즈인 ‘Bunker’, ‘Beamer’, ‘Blockwork’에서 선별된 여섯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 작품들은 도시 구조의 문법을 통해 신체를 재구성하며 갤러리 외부에는 실물 크기의 주철 조각 두 점이 설치되어 신체의 정적인 순간을 형상화 한다. 특히 화이트 큐브에서는 최초로 거리 외부에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다. ⟨몸틀기 IV (Swerve IV)⟩ (2024)는 인도와 차로 사이 연석 위에 세워져 보행자의 경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며 신체 감각을 일깨운다. ‘Blockwork’ 시리즈의 ⟨쉼 XIII (Cotch XIII)⟩ (2024)은 낮은 벽에 조용히 기대 앉아 사색에 잠긴 듯한 자세이다. 두 작품 모두 주철 소재가 가진 밀도감을 통해 존재를 물리적, 개념적으로 안착시키며 인간과 지구 간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드러낸다. 마찬가지로 외부에 설치된 또 다른 작품 ⟨움츠림 (Retreat: Slump)⟩ (2022)은 높은 건물들 사이 좁은 통로를 점령한 채 자리한다. 입을 대신해 작게 뚫린 사각형 구멍은 어두운 내부를 엿보게 하여 관람자의 고요한 사색을 유도한다. 이는 작가가 말하는 ‘정지된 몸이 마주하는 무한한 어둠’이자, 신체가 고요해졌을 때 비로소 주어지는 자유의 공간임을 암시한다. ‘Beamer’ 시리즈의 ⟨용기 2 (Pluck 2)⟩ (2024)는 인체 크기의 조각으로 갤러리 유리 외벽과 내부 벽 사이의 틈에 끼워지듯 설치되어, 상업적 매대에 진열되는 예술의 현 위치를 상징정으로 비춘다. 이어지는 전시 내부 공간에서는 강철막대의 직선 구조로 구성된 ⟨대전환 III (Big Slew)⟩ (2024)과 ⟨거대 형상 III (Big Form III)⟩ (2024)이 등장한다. 반복과 축적의 조형 언어로 구축된 두 작품은, 신체의 질량을 건축 언어로 또 한번 변환해냄으로써 인간의 움직임과 행동 양식이 어떻게 우리의 행동을 형성하고, 제약하며, 통제하는지 묻는다. 그리고 타데우스 로팍 서울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신체의 내적 상태와 그것이 일상 공간에 내재되는 양상을 예리하게 탐구한다. ‘Extended Strapwork’ 시리즈의 ⟨정착 (Dwell)⟩(2022), ⟨지금 (Now)⟩(2024), ⟨여기 (Here)⟩(2024)는 조각이 신체의 경계를 넘어 그것이 점유하고 있는 공간의 가장자리까지 뻗어 나감으로써, 공간의 직각적 구조가 우리의 감각과 인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드러낸다. 영속적인 선의 구조를 가진 일련의 조각들은 뫼비우스 띠의 순환 논리를 구현하며 내부와 외부를 끊임없이 이어줄 뿐만 아니라, 형태와 장(field), 주체와 환경 사이의 구분을 무너뜨린다. 전시장을 길게 가로지르며 전개되는 두 개의 작품은 갤러리의 직선적 구조를 작품의 공간적 논리 안으로 통합시키며, 문과 창 같은 건축적 개구부를 참조하듯 안과 밖을 매개하는 장치로 기능하게 한다. 한편, ‘Open Blockworks’ 시리즈의 ⟨열린 혼란 (Open Daze)⟩(2024)과 ⟨집 (Home)⟩(2025)은 그의 기존 조각 시리즈인 ‘Blockworks’의 모듈 구조를 바탕으로, 닫힌 덩어리를 열린 세포 구조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조각들은 공간에 반응하며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 하는 유기적이고 투과적인 형태를 띠고 있으며, 관람객의 호기심과 신체적 개입을 유도하는 조형적 개방성을 지닌다. 1층 전시장에 설치된 ‘Knotworks’ 시리즈의 작품들은 신체와 공간의 관계를 지도처럼 시각화한 것으로, 상하수도, 전기회로, 교통망 등 현대 사회를 구성하고 지탱하는 연결망을 연상시킨다. 이 조각들은 인간의 신체가 복합적이고 광범위한 연결망(네트워크)의 일부임을 상기시키며, 작가의 초기 설치 작품 ⟨세계관 시험하기 (Testing a World View)⟩(1993)을 참조하듯 전시장의 바닥, 벽, 그리고 천장에 밀착되어 설치된다. 더불어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일련의 작품들은 인간을 도시에 사는 동물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반추한 결과물이며, 이는 작가의 드로잉 연작을 통해 더욱 풍부하게 확장된다. 드로잉 작품들은 신체-공간과 건축이라는 영역을 전 인류가 고유하는 인식의 장으로 보는 그의 시각을 드러낸다. 또한 우리가 이 인식의 장으로부터 빛과 그 너머의 공간을 향해 무한히 시선을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서울’이라는 도시는 작가의 예술적 탐구에 깊이를 더하는 강력한 맥락을 제공한다.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이른바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불리는 서울에 즐비하게 들어선 고층 건물과 밀집된 인프라에서 전후의 궁핍한 시기를 지나 글로벌 산업 강국으로 도약한 한국의 면모가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비단 한국만의 특성이 아니라, 오늘날 인류 대다수가 살아가는 보편적인 도시적 삶의 양식이다. 이제 도시의 지형은 단순히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몸에도 흔적을 남기며, 우리의 움직임과 내면의 감각적 지형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환경 속에서 이번 전시는 인간의 신체와 서식지가 어떻게 함께 구성되는지를 감각하도록 하는 예술적 제안이자, 나아가 변화된 우리의 인간 조건에 대해 더욱 깊이 인식하게 하는 촉매로서 기능한다. *출처 및 제공: 화이트큐브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