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개최되는 **에텔 아드난(Etel Adnan, 1925–2021)**과 **이성자(Seundja Rhee, 1918–2009)**의 2인전 **《해를 만나러 가다(To meet the sun)》**는 이주와 망명, 그리고 고향을 떠나 예술적 형상을 추구했던 두 작가의 실천적 경험을 연결합니다. 서로 다른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도 두 작가의 궤적은 놀라운 유사성을 보입니다. 두 사람 모두 성인이 된 후 파리로 향했으며, 정식 미술 교육 없이 독학으로 회화에 입문했습니다. 또한 추상, 철학적 탐구, 그리고 1960년대 우주 탐사에 대한 시대적 열망에 영향을 받아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각 언어를 구축해 나갔습니다. 이번 전시의 제목은 아드난이 1968년에 쓴 시(leporello poem)에서 따온 것으로,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위한 이 애도시는 이성자의 점진적인 우주론적 탐구와 공명합니다. 아드난에게는 태양과 달, 그리고 타말파이스 산의 실루엣이, 이성자에게는 지구와 행성계를 상징하는 기하학적 구성이 반복되는 모티프로서 두 작가의 공통된 사유를 지탱합니다. 두 작가의 시작: 파리와 추상 두 작가 모두 30대에 회화를 시작했지만, 그 배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이성자는 한국전쟁 중인 1951년 프랑스로 이주하며 삶의 큰 균열을 겪었습니다. 세 아들과 강제로 헤어져 홀로 파리에 도착한 그녀는 전후 추상 미술의 남성 중심적 기류와 개인적인 소외감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1953년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Académie de la Grande Chaumière)에 입학한 그녀는 서구 모더니즘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며 수십 년간 자신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구축했습니다. 파리 초기 시절, 이성자는 초현실주의적 방법론을 가르쳤던 앙리 괴츠(Henri Goetz) 밑에서 우주적이고 무의식적인 영역에 주목하며 추상적 어휘를 길렀습니다. 초기 구상화 단계를 거쳐 그녀의 붓질은 점차 수많은 작은 점들과 층층이 쌓인 색면으로 흩어졌으며, 재현보다는 표면과 몸짓 그 자체가 중요해졌습니다. 1950년대 후반의 작품들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며, 기하학적 형상과 질감 있는 바탕을 통해 고향에 대한 기억과 모성이라는 주제를 간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이후 1961년부터 1968년까지 이어진 '여성과 대지' 시기에는 여성성과 땅의 관계를 추상적으로 정립했습니다. 마치 경작된 땅이나 전통 화문석의 짜임과도 같은 그녀의 밀도 높은 붓질은 여성의 노동과 연계된 재료 및 공정을 회화적 언어로 치환한 것이었습니다. 아드난의 여정과 색채 아드난의 파리 행로는 좀 더 우회적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술가가 되기 훨씬 전, 소르본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 프랑스 수도를 처음 밟았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거주하며 가르치는 일을 하던 중에야 미국 서부의 빛과 섞이지 않은 안료의 즉각성에 매료되어 색채와 몸짓을 실험하기 시작했습니다. 1970년대 초 베이루트로 돌아온 그녀는 활기찬 예술적, 문학적 환경 속에서 활동했으나, 레바논 내전의 발발로 인해 다시 '절대적인 망명'의 길에 올랐습니다. 그녀는 이 시기를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폭력적으로 잃어버린 때'라고 설명했습니다. 수십 년 후 다시 파리에 정착했을 때, 이러한 단절의 경험은 기억과 풍경, 형이상학적 사유를 담아내는 정제된 추상 언어로 승화되었습니다. 탁자 위에 평평하게 놓인 캔버스에 안료를 직접 칠해 완성한 아드난의 작품들은 작은 크기임에도 강렬한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멀리서 보면 선명한 색면과 띠로 엮인 평온한 빛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한 태피스트리 작업은 이러한 색채 어휘를 느리고 촉각적인 매체로 확장한 것이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된 수공예적 실험은 이후 아틀리에 핀톤(Atelier Pinton)의 장인들과의 협업을 통해, 회화의 단순한 기하학적 구조가 더욱 복잡하고 때로는 격동적인 지형의 윤곽으로 변모하는 결과물을 낳았습니다. 우주적 지평으로의 확장 1969년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경험한 이성자는 '여성과 대지' 연작에서 이미 싹트고 있던 공간적 직관을 더욱 날카롭게 다듬었습니다. 선, 사각형, 원과 같은 근원적인 형태들이 신체와 지형의 지표로 등장하는 동시에, 지상의 관점을 넘어선 광활한 공간 질서 속에서 서로 연결됩니다. 균형과 긴장 상태를 유지하는 이러한 구성은 대립하는 힘과 문화적 유산 사이에서 평형을 찾으려는 시도였으며, 이후 그녀의 작업이 '우주'라는 거대한 지평으로 향할 것임을 예고했습니다. 1960년대의 달 탐사와 그로 인해 열린 새로운 행성적 관점은 두 작가 모두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아드난에게 우주적 상상력은 그녀의 글과 그림, 태피스트리 속에 직접적으로 들어와 천체의 형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태양과 달을 떠올리게 하는 원형과 픽셀 같은 사각형들이 강조되었고, 집중된 색면은 지평선을 색조의 띠로 단순화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타말파이스 산의 윤곽을 그렸지만, 이 시기 이후의 구성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줍니다. 특히 태피스트리에서 지평선은 완전히 사라지고, 지리적 경계를 암시하면서도 동시에 초월하는 자유로운 형태의 색면들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이성자에게도 이 시기는 훗날 '코스모스(Cosmos)'(1995–2008) 연작이 탄생할 수 있는 개념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녀의 예술적 탐구는 땅에서 도시로, 다시 하늘을 거쳐 마침내 천문의 영역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출처:화이트큐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