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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알마 펠트핸들러 «가장 최신의 것»
Exhibition Poster
기간| 2026.01.15 - 2026.03.26
시간| 10:00-18:00
장소| 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
주소|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29길 6/1층
휴관| 일요일,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49-8797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알마 펠트핸들러 Alma Feldhand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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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무제
    2025

  • ‘가장 최신의 것’
    2025

  • ‘SW1’
    2025

  • 전시전경

    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 알마 펠트핸들러 개인전
  • 			전시장에 갔을 때, 우리는 그곳의 모든 작품을 온전히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마음 속에선 이미 선택을 내리고, 나머지는 저편에 남겨둔다. 그렇게 매번 많은 작품이 잊혀지지만, 운이 좋거나 기억력이 좋다면 그중 두세 점 정도는 기억에 자리하게 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개 주의력은 단 하나의 작품에 머무르며, 그 작품은 전시 전체에 대한 당신의 감상을 대변하게 된다.
    
     
    
    우리는 이처럼 사소한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한다. 당장의 일상을 크게 바꾸지 않을 그런 선택들 말이다. 잡지 페이지를 넘기거나, 어떤 이미지에 시선이 사로잡힐 때까지 광고를 훑어보는 일, 혹은 상점에서 물건 하나를 고르는 일들이 그러하다. 상점이든 잡지든 혹은 갤러리든, 그곳에서 실제로 구매가 이루어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뒤에 남는 잔상이다. 장소를 떠난 후에도 우리는 그 드레스, 그 카디건, 혹은 그 그림을 떠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교가 조금 대담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갤러리는 그 작동 메커니즘에 있어 고급 백화점과 그리 다르지 않다. 아름다움이란 결국 노동과 비용, 그리고 그 뒤에 필연적으로 남겨지는 것들이라는 보이지 않는 실들로 촘촘히 엮여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이번 전시 «가장 최신의 것» 속 많은 작품을 대변할 단 하나의 작품을 이미 마음속에 선택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딘가로 외출하려는 한 여성을 포착한 작품이다. 화면 속 한 남자는 그녀가 코트를 입는 것을 도와주고 있지만, 정작 그녀는 그런 기사도적인 호의가 필요한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이들 뒤로는 검은 울타리가 집의 경계를 표시하고 있으며, 우편번호를 의미하는 작품의 제목 ‹W1›은 이들이 런던 중심가에 있음을 알려준다. 이곳은 메이페어, 메릴본, 피츠로비아 혹은 소호처럼 부유함과 패션, 그리고 문화 자본으로 점철된 유명한 거리들이다. 즉, 울타리 쳐진 장소들이다.
    
     
    
    그녀가 입은 프라다의 2000년 가을-겨울 컬렉션 상의에는 공장으로 향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 의복은 특권층의 신체 위에 ‘집단 노동’이라는 이질적인 이미지를 덧입힌다. 행진하는 노동자들의 행렬 속에서 그녀만은 미동 없이 서 있다. 그들이 집단이라면, 그녀는 개별적이다. 이 작품은 고요하지만 집요하게 사회적 경계를 무대 위로 끌어올린다.
    
     
    
    이 작품이 마음에 오래 머문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 있을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야외의 물리적 경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은 많지 않기에 더욱 눈길을 끈다. 대부분의 작업이 온라인 패션쇼 아카이브나 『보그』 광고 이미지에 기반을 두었다면, 이 작품은 특정한 서사를 암시하며 그 너머의 세계를 상상하게 한다.
    
     
    
    나는 패션 잡지가 발행되는 순간 그 안의 모든 이미지가 이미 지나간 시간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을 해왔다. 알마 펠트핸들러의 회화에서는 이러한 지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화면 속 인물들은 가냘프고, 지체되었으며, 생기를 잃어버린 것처럼 보인다. ‹워스›, ‹발렌시아가›, 혹은 ‹풍성한 페어리 스커트를 입은 미우미우›와 같은 디자이너의 이름을 작품 제목으로 붙이지 않을 때, 그 이미지들은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의 잔상으로 남을 뿐이다. 이를테면 ‹깊이 가라앉는›이나 ‹누구에게나 가장 젊은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와 같은 작품들처럼 말이다.
    
     
    
    ‹W1› 속 여성은 어딘지 공허한 모습으로 혼자만의 상념에 잠겨 있다. 그녀의 시선은 정처 없이 흐르며,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무언가를 아주 찰나에 목격했을 때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다. 여기서 나는 그녀가 무언가 새로운 것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고, 어떤 대상이 새롭고, 절실하며, 기대감이 서려 보이는 바로 그 순간, 그것은 거의 즉시 소멸로 접어든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다면 ‘가장 최신의 것’이란 무엇인가. 대개 이 표현은 세간의 이목을 끄는 새로운 무언가를 지칭하곤 하지만, 알마 펠트핸들러의 회화에서 진정으로 새롭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난 전시에서 어떤 관람객이 이 작품들이 유작(遺作)인지 물었다. 작가가 이미 고인이 되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실제로 어떤 작품들은 최근에 제작되었다기보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듯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설령 그것들이 다른 시대에서 온 것처럼 보일지라도, 정작 어느 시대인지는 불분명하다.
    
     
    
    작품 ‹가장 최신의 것› 속에는 빅토리아 시대와 에드워드 시대의 의복이 후기 자본주의의 패션 이미지와 공존하며, 서로 다른 시대의 양식과 지배적인 상징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이 의도적인 혼용은 기묘한 등가성을 만들어낸다. 서로 다른 세기의 옷들, 그리고 서로 다른 권력과 생산 체제에서 온 이미지들이 마치 동일한 순간에 속한 것처럼 보인다. 이전과 이후, 초기와 후기의 구분은 해체된다. 어느 시대도 다른 시대를 지배하지 않으며, 그 무엇에도 우선권이나 더 큰 권위는 부여되지 않는다. 마치 모두가 예외 없이 바래져 평등해진 채 서 있는 런웨이처럼 말이다.
    
     
    
    알마 펠트핸들러의 작업에서 새로움은 언제나 사후적(事後的)이다. 모든 것이 ‘최신의 것’일 수 있는 이유는 모든 것이 단번에, 즉 뒤늦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미지들은 참고한 광고들과 달리 그 무엇도 선언하지 않는다. 그들은 시간이라는 바다에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그저 스며든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담은 엽서를 닮은 작은 그림 하나조차, 마치 가라앉은 도시로부터 보내온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알마 펠트핸들러가 ‘최신의 것’이라는 권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그녀의 그림이 그 어떤 지배 체제에도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작품은 특정 양식이나 역사적 권위에 닻을 내리지 않는다. 아마도 앞선 관람객이 느꼈던 혼란은 여기서 기인했을 것이다. ‘최신의 것’이 휘두르는 힘은 내부로부터 무너진다. 그녀의 그림은 군림하려 들지 않기에, 결코 새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새로움이란 환상이다. 작품 속 배경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울타리들처럼, 새로움은 현재의 것과 지난 것 사이에 인위적인 경계를 세운다. 알마 펠트핸들러의 작업은 그 구분을 조용히 해체한다. 그녀는 어느 시대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이미지들을 전유하며 시대를 가로질러 항해한다. 결국, 모든 것은 울타리가 더 이상 구분 지을 수 없는 하나의 지대로 다가서게 된다.
    
     
    
    전시를 몇 주 앞두고 그녀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해적기(졸리 로저; Jolly Roger)도 그렸어야 했는데!” 붉은 깃발 위로 교차된 뼈와 웃고 있는 해골. 18세기 초 해적들이 영국 왕립 해군과 상선들에게 자신들의 의도를 알리기 위해 사용했던 표식이다. 그 메시지는 단순했다. ‘자비란 없다(No quarter).’
    
     
    
    최신의 것이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여전히 믿는 이들에게 말하건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새로움에 의해 구제되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예외는 없으며, 자비 또한 베풀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무심히 ‹자전거 거치대 옆을 지나가는 폴리›나 벌거벗은 굽은 등의 ‹광부› 정도만이 예외일지도 모른다. 결국 기억될 가치가 있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우리 곁에 늘 머물러 온 저 가장 보통의 풍경들 뿐이라는 것을.
    
     
    
    가브리엘 고티에 Gabriel Gauthier, 2025년 12월
    
     *출처:마이어리거울프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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