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025-12-02 - 2026-02-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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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화~금요일 11:00~18:30 토요일 12:00~17:00 |
| 장소| | 소울아트스페이스/부산 |
| 주소| | 부산 해운대구 우동 1398 |
| 휴관| | 일요일,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전화번호| | 051-731-5878 |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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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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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안성하, 이미지를 통한 감정의 전이 > 서성록 (미술평론가, 안동대 명예교수) 안성하의 그림에는 알록달록한 알사탕이 놓여있다. 알사탕은 유년시절 얼음과자, 달고나 등과 함께 사랑받던 군것질 중 하나였다. 다양한 색깔과 표면의 매끄러움이 보는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알사탕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유년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릴 적 알사탕은 단순히 달콤한 간식을 넘어 어려운 시절의 사치품이었다. 학교 앞에 문방구나 구멍가게의 진열장에는 눈깎사탕들이 수북이 쌓여있거나 유리병에 가득 담겨있었다. 동전 몇 닢으로 한 알의 사탕을 손에 넣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즐거움이 있었다. 쉽게 깨물어 먹기 힘든 단단한 속성 때문에 오래도록 입안에서 그 단맛을 즐기며 행복한 순간을 만끽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안성하는 이런 추억을 끄집어내어 화면에 담는다. 작가가 알사탕을 그린 이유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안성하의 알사탕은 널리 알려진 담배그림과도 관련성을 지닌다. 이러한 사물들은 이름지지는 않으면서도 다수에게 위안을 주는 양가적(ambivalent)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맛과 향보다는 사물을 선택한 동기에 의해 의미가 부여된다고 설명한다. 물론 화면에 보는 것은 컵이나 재떨이 안의 담배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작가의 가족과 내적으로 연관되어있다. 힘든 일을 하시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았던 아버지, 그러나 담배 한 모금을 들이마시거나 내뱉으시는 모습을 통해 작가는 일상의 고단함을 느끼며 사시는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런 모습을 보는 시선은 무언가 찡하고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는 눈물이 고여 있다. 물론 이것이 담배를 모티브로 선택하게 된 전부는 아닐 것이다. 담배에는 옛 시대에 대한 노스탤지어 또는 그리움이나 못다 이룬 마음이 흩어지는 듯한 쓸쓸하고 애절한 정서가 담겨 있다. 그의 작품에는 이런 감정도 어느 정도 섞여 있으리라 본다. 작가는 자신의 그림을 사물을 통한 ‘감정의 전이’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사탕을 보는 순간 존재들에 얽힌 사연을 듣게 되며, 작가는 이에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셈이다. 단단한 표면의 매끄러움(촉각)과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한 향(후각)은 시각적 묘사를 넘어선 깊은 감정을 유발한다. 작품 속 사물들은 특정한 공간 설정 없이 화면에 클로즈업되며, 모든 색과 면의 경계는 흐릿하고 모호하게 처리된다. 사실적으로 보이던 사물들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형태가 불분명해지고 오로지 감각에 의존하여 마주하게 되는데, 이는 사물들의 양가적 본질을 암시하는 동시에 시각 외 여러 감각들을 확장시킨다. 우리는 사탕을 보며 입안의 사탕이 녹아내릴 때의 맛과 향을 연상할 뿐만 아니라 유년의 순수함을 회상하게 된다. 갖가지 컬러의 사탕을 입에 냉큼 넣는 순간 ‘낯선 목소리’가 마법의 매개물에 실려 온다. 친구들과 나누어 먹던 즐거움, 문방구와 구멍가게에 얽힌 사연, 부모의 손에서 알사탕이 내 손으로 건네질 때의 설렘, 명절 때 나누어 먹던 ‘옥춘당(玉春糖)’, 금세 녹을세라 입안에 오래 머물게 하는 기술 등등. 이를 담배와 연관 지어본다면 알사탕 역시 아빠가 주신 선물과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이 물건들에 의지하여 위로를 얻었으며, 사라지기 위해 존재하는 듯한 사물의 애처로운 모습에서 묘한 동일감을 느껴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은 사물 자체가 아닌 꽁초, 녹아내린 사탕과 비누와 같은 사물 선택 동기의 흔적을 드러내며, 이는 사물이 불러일으킨 다양한 감정적 경험과 함께 사라질 감각에 대한 기록에도 해당한다. 몇 년 전에 작가는 큰 위기가 찾아와 얼마간 침상생활을 해야 했다. 너무나 힘들어 작업도 잠시 쉬어야 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그에게 삶의 변화가 찾아왔다. 그것은 사라짐과 덧없음의 화두였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문제들이었지만 이렇게 일찍 자신에게 찾아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 사고의 변화는 곧 그의 작품으로 옮겨졌다. 전시회의 출품작 중에는 유리 글라스 안에 푸른 알사탕이 들어있는 작품을 볼 수 있다. 이 작품과 함께 빈 그릇만 남아 있는 작품이 한 쌍을 이룬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사탕을 찾아볼 수 없다. 알사탕이 있었다는 흔적만이 우두커니 남아있을 뿐이다. 그의 작품의 묘사력과 눈속임 기법에 매료되어 더 깊은 의미의 층위를 놓칠 수도 있겠으나, 작가는 이 작품에서 존재의 사라짐과 덧없음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그릇에 묻어있는 설탕 자국과 기포, 액화되어가는 모습을 정교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단순히 인생의 무상함과 허무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설사 사라진다 해도 존재의 기억이 오래 간직된다는 것을 말하려는 듯이 보인다. 특히 사탕은 꿈 많았던 시절의 경험과 사연이 곁들여진 이미지이다. 그가 큰 병고를 치르면서 느꼈던 것은 그럴수록 존재의 의미가 깊어지고 기쁨과 사랑의 감정이 상대적으로 더 강화된다는 것이었다. 사라짐이 없다면 사물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는 장 샤르댕(Jean Siméon Chardin)의 작품을 보며 부엌의 낡은 그릇이 보석만큼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했다. 이런 예를 안성하의 작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담배꽁초를 소재로 한 작품이 그랬듯이 알사탕은 기억의 소환을 넘어 풍부한 의미를 선사한다. 감정이입의 능력을 부여하고 정형화된 시각을 교정해주고 삶의 주기에 대해서도 경각심을 일으킨다. “우리와 다른 시선을 가진 이들이 없었다면 이들이 표현한 세계를 마치 달나라만큼 우리에게는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을 것들이다. 예술이 존재함으로써 오로지 하나의 세상,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만을 보는 대신에 우리는 우리의 세계가 곱절이 되는 것을 볼 수 있다.” (Marcel Proust) 안성하의 작업은 삶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조명하고 있다. 밝은 면이란 사탕이 갖는 즐거움이나 소중한 추억에 관한 것이고, 어두운 면이란 우리가 반드시 거쳐야 할 운명을 직시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그의 작품은 사물과 얽힌 내력과 틈새, 움직임과 정지,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사이의 교차점이자 이번 전시의 주제인 ‘보는 것의 고요한 지점(The Still Point of Seeing)’을 가리킨다. 그때 과거와 현재의 단절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우리의 기억이 깨어나 춤을 추기 시작한다. 만일 알사탕이 지닌 스토리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면 ‘그때 나도 그랬었는데’라며 그와 함께 추억을 나눌 수도 있을 것이다. 먹는 것을 그리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다. 욕망을 부추기는 것도 그의 목적이 아니다. 출중한 묘사 실력을 자랑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 아니다. 작가는 그림을 매개로 감상자에게 말을 거는 이야기꾼이다. 알사탕의 물리적 특성을 기존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 ‘은유적 세계’로 연결하고 확대하는 것은 그의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소통 욕망을 보여준다. *출처:소울아트스페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