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 | 2026-02-24 - 2026-05-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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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 | 화~토요일 10:00~18:00 |
| 장소| | 타데우스 로팍 서울/서울 |
| 주소| | 서울 용산구 독서당로 122-1/2층 |
| 휴관| | 일요일,월요일 |
| 관람료| | 무료 |
| 전화번호| | 02-6949-1760 |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 작가| |
Kei Imazu, Juree Kim, Nosik Lim and Maria Taniguc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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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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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Distancing (거리두기) 《Distancing》은 이미지와 물질이 시간을 거쳐 어떻게 초점에 들어오는지를 탐구하는 네 명의 작가 — 이마즈 케이, 김주리, 임노식, 마리아 타니구치 — 의 신작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이 전시는 거리와 지속을 우선시하는 보기의 방식을 제안합니다. 여기서 멀리서 관찰하고 정적 속에 머무는 것은 인식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초점을 재조정합니다. 전시는 즉각성에 저항하기보다는 감각이 우리를 따라잡는 지점, 즉 즉각적인 파악에서 벗어났던 것이 거리와 시간을 통해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지점을 추적합니다. 회화와 조각을 가로질러, 참여 작가들은 반복, 찰흙의 느린 변형, 층층이 쌓인 불투명성, 그리고 이질적인 이미지 세계의 병치라는 독특한 형식적·매개적 전략을 통해 이러한 재조정에 접근합니다. 전시의 입구에서 마주하게 되는 마리아 타니구치의 회화는 이러한 태도를 가장 정제된 형태로 담아냅니다. 반복되는 벽돌 모양의 단위로 구성된 그녀의 캔버스는 특정한 서사보다 시간과 형태의 축적을 전면에 내세웁니다. 일정한 규모와 형식, 그리고 미세하게 변화하는 색면을 가진 이 작품들은 빠른 읽기에 저항하며, 대신 모듈성과 연속성에 기반한 지속적인 보기의 방식을 권유합니다. 타니구치는 2008년부터 이러한 벽돌 회화 작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각각의 캔버스는 고유하지만, 이 작업들은 마치 펼쳐지는 신체처럼 한 표면에서 다음 표면으로 연장되는 듯 보이며 — 아직 완전히 형성되지 않았고 영구적으로 진행 중인 상태입니다. 〈Untitled (2025)〉에서 시간은 반복되는 행위라는 일상적인 척도로 자신을 드러내며, 각 벽돌은 동일한 조건 아래 세심하게 수행된 행위의 증거가 됩니다. 이 작품은 명상이나 자기 성찰에 대한 은유로 작동하기보다는 일련의 규칙에 의존하면서도 결과에 대한 완전한 통제는 거부합니다. 즉, 우연과 미세한 일탈에 열려 있는 안정적인 틀인 것입니다. 반복은 예측을 유예하고, 의미가 즉각적으로 결론지어지는 것을 막으며, 인식이 제 속도에 맞춰 형성되도록 하는 방법이 됩니다. 타니구치에게 회화는 시간, 노동, 그리고 신체적 개입이 층을 이루는 물리적 상태로 존재합니다. 작업이 구축됨에 따라 그 표면은 거의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변화합니다. 미세한 불규칙성, 얕은 융기, 약간의 어긋남은 신체와 시간의 흔적을 대등하게 기록합니다. 이 회화들 앞에서 관람객들은 종종 앞뒤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며, 여기서 보는 행위는 하나의 현존 형식이 됩니다. 주의력은 서사를 해독하는 것에서 벗어나 서 있음, 호흡함, 그리고 자기 자신의 시선이 갖는 미세한 떨림이라는 순수한 감각을 향해 기울어집니다. 타니구치의 작업이 관람객의 신체와 시선을 조율한다면, 김주리의 작업은 이러한 감수성을 물질성과 물리성의 영역으로 밀어붙입니다. 신체, 물질, 공간 사이의 관계를 직접적으로 소환함으로써, 김주리는 관람객이 자신의 주변 환경과 주어진 환경 내에서 스스로를 위치시키는 방식을 재고하도록 독려합니다. 주로 찰흙으로 빚어진 김주리의 작품들은 생성, 축적, 해체의 원소적 순환을 구현합니다. 〈Wet Matter_202602 (2026)〉는 갤러리의 중앙 공간을 차지하며 전시의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 작품은 고정됨에 저항하며, 대신 서식처인 전시장의 변화하는 빛, 온도, 습도에 지속적으로 반응합니다. 김주리는 오랫동안 흙을 주요 매체로 사용해 왔으며, 생성과 소멸, 포화와 건조라는 개념이 변증법적 대립이 아닌 하나의 연속체 안에서 작동한다고 제안합니다. 전시가 끝나면 용해될 운명인 이 작품은 주변 환경을 흡수합니다. 〈Wet Matter_202602〉가 현재 속에 흙을 잠시 유예시킨다면, 김주리의 회화 시리즈 〈desert〉는 그 이후에 따르는 과정들을 탐구합니다. 작품에서 수분이 빠져나가면서 틈이 생기고, 표면이 갈라지며, 층들이 파열되고 부서집니다. 〈desert〉는 비옥한 땅이 마르고 갈라질 때 시간이 남긴 비문을 간직합니다. 그것은 귀환과 변형의 장소가 됩니다. 즉, 인간의 흔적이 어떻게 다시 흙으로 접혀 들어가 사용, 붕괴, 퇴적의 순환을 통해 형태를 바꾸는지를 보여줍니다. 김주리는 버려진 벽돌이나 부서진 흙 파편 같은 도시의 잔해들을 모아 다시 으깨고 갈고 층층이 쌓으며, 남아있는 것들의 가장자리를 따라 감각합니다. 이것은 부활이라는 거창한 몸짓이 아니라, 파편과 퇴적물을 형성의 다음 단계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층을 이룬 표면은 물질을 통과해 간 시간의 기록이자, 붕괴된 것, 축적된 것, 흔적으로 굳어진 것에 주목하며 뒤를 돌아보는 장소로서 서 있습니다. 〈Wet Matter_202602 (2026)〉가 호흡의 친밀한 통과에 대한 메아리로 존재한다면, 〈desert〉는 이 순간을 유예된 상태로 정지시킵니다. 흙과 물, 공기를 붙들고 있는 이 작품은 관람객을 그 몸체로 끌어당기며 호흡을 가다듬을 것을 요구합니다. 그리하여 김주리의 작업은 날카로운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관람객에게 정지의 순간을 발견하고 반응할 수 있는 시간과 근접성을 제공합니다. 임노식의 회화는 전시의 시작 부분에서 마주했던 포착하기 어려운 감각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신체적이고 식물적인 형태들은 선명하게 도드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연한 분홍색과 푸른색 파스텔조의 캔버스 사이로 확산하며, 기억의 잔상처럼 머뭅니다. 임노식의 주요 관심사는 공존의 묘사입니다. 주변 환경과 개인적 경험에서 끌어온 이 이미지들은 산의 침식이나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마을처럼, 가시적인 사건 너머에 남은 것들을 결정화합니다. 임노식은 회화를 통해 무형의 감각들을 관계의 심오한 층위로 재해석합니다. 대상들의 윤곽을 그린 후, 임노식은 캔버스 표면에 오일 파스텔로 반투명한 층을 쌓아 올립니다. 이 과정에서 형태들은 서로 겹치고 스며들며 친밀한 병치를 만들어냅니다. 이는 서사가 캔버스의 제한된 테두리를 벗어나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재배치하게 합니다. 임노식의 이전 회화들이 부드럽게 흐릿한 상태로 머물렀다면, 이번 신작들은 형태들이 보다 강한 현존감을 띠고 구체화되기 시작하면서 서사적 감각에 한 걸음 더 다가섰음을 암시하며 새로운 이야기들이 등장하도록 허용합니다. 캔버스 위에서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를 압박하고 스며들며, 가독성과 비가독성 사이의 위태로운 균형을 유지합니다. 여기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인공, 유기물과 무기물,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는 분리되지 않고 접촉과 얽힘의 상태에 놓입니다. 요소를 지우기보다 서로를 침범하게 함으로써, 임노식의 회화는 경계를 흐리는 동시에 활성화합니다. 작품과 마주했을 때 관람객은 더 이상 일방적인 관찰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습니다. 대신 관람객이 뿌연 지형 속에서 방향을 찾으려 함에 따라 시선은 캔버스의 경계들을 끊임없이 가로지릅니다. 이러한 전환은 '거리두기'를 단순히 신체의 위치를 바꾸는 개념 너머로 가져가, 경계들이 충돌하고 흐려지는 상태에 직면하려는 시도로 제안합니다. 여기서 '거리'는 회피나 관조의 방식이 아니라,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방법이 됩니다. 전시의 마지막 전환점에서 이마즈 케이의 회화는 앞선 작품들의 세밀하게 조정된 거리를 시간, 역사, 그리고 신체에 의해 형성된 다른 영역으로 옮겨놓습니다. 이마즈의 이미지들은 단일한 순간으로 응집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은 이질적인 조건과 서사에서 추출되어 겹쳐진, 묘하고 기이한 파편들로 다가옵니다. 여기서 회화는 과거를 되찾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지나간 것이 어떻게 계속해서 앞으로 스며 나와 현재 속에서 스스로를 재배치하는지를 기록하는 수단입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조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펼쳐 보입니다. 〈Hearth and Wreck (2026)〉에서 이미지는 안정된 요소로 자신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표면 아래에서 표류하고, 겹치고, 수집됩니다. 이마즈는 반투명한 면(cotton) 지지대 위에 작업하며, 마치 작품의 내부 골조를 노출하려는 듯 캔버스 틀(stretcher)이 희미하게 보이도록 남겨둡니다. 이 투과 가능한 평면 안에서 전교(wartime) 난파선과 일상적 몸짓을 담은 석조 부조가 동일한 회화적 지면을 공유합니다. 이들의 공존은 위계질서를 완화하고 역사를 선형적 순서가 아닌 천천히 축적된 무언가로 재지향시킵니다. 반면 〈She Who Treads (2026)〉의 표면은 완전히 불투명합니다. 신화적 신체가 산업 구조물과 만나고, 식민지 시대의 성문에서 가져온 철제 장식 문양이 해부학적 형태에 기댑니다. 이러한 모티프들이 충돌함에 따라 믿음, 신체, 그리고 권력 체계 사이의 긴장감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즉, 신체가 어떻게 보호되고 훈육되는지, 통로가 어떻게 표시되고 규제되는지, 그리고 이미지가 어떻게 반복적으로 소환되고 수정되며 역사적 현실 속에 다시 위치함으로써 지속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침식, 용해, 마모를 나타내는 이러한 양상들 사이를 이동하며, 이마즈의 회화는 기억이 현재에 어떻게 물질적으로 지속되는지를 묻습니다. 그녀의 작업은 단일한 표면 위에 여러 층의 시간성을 활성화하며, 이들이 긴장 속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정교한 거리를 유지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그녀의 회화는 전시가 제안하는 '거리두기'를 단절이 아닌 재회를 위한 조건으로 확장합니다. 전시 전반에 걸쳐 주제들은 나타나고, 겹치고, 혼합되며, 관람객은 단순히 작품을 마주하는 것을 넘어 보는 행위가 일어나는 조건 자체를 고려하도록 초대받습니다. 《Distancing》은 지연된 인식 상태의 가능성, 즉 이미지가 '이해'된 후에도 오랫동안 남아있는 잔류 감각, 혹은 마음의 눈에 응집되기 훨씬 전의 감각들을 고찰합니다. 모리스 메를로-퐁티는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라고 관찰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외부에서 세계를 관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부에서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Distancing》은 세계로부터 잠시 물러나 보기를 시도합니다. 전시된 작품들은 함께 예술에 대한 경험 자체의 전환을 제안하며, 속도와 즉각성에 대한 현대적 욕망에 맞서 점진적인 조율, 재조정, 그리고 회귀의 과정을 필요로 하는 지각적 만남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