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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감로 甘露
기간| 2019.08.20 - 2019.09.28
시간| 12:00 - 18:00
장소| 씨알콜렉티브/서울
주소| 서울 마포구 연남동 504-29/일심빌딩 2층
휴관| 일요일,월요일, 공휴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70-4006-0022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김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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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감로展> 전시전경
    2019

  • 자기이해를 위한 의례
    2019 혼합재료 가변설치

  • 자기이해를 위한 의례
    2019 혼합재료 가변설치

  • 자기이해를 위한 의례
    2019 혼합재료 가변설치
  • 			CR Collective 씨알콜렉티브는 2019년 올해의 CR 작가로 선정된 김형관의 개인전, 『감로 甘露 (Sweet Water)』를 오는 8월 20일부터 9월 28일까지 개최한다. 
    
    공간을 가로지르며 놓인 유리창들에는 괴물 같은 형상이 그려져 있고 그 유리창에 내가 비친다. 금방이라도 굿판이 벌어질 것 같은 풍경이지만 자세히 보면 벽에 붙은 그림과 탱화는 색테이프로 만든(그린) 것이고, 선반 위에는 마른 화분이나 부탄가스통 등 마치 길에서 주워온 것 같은 물건들도 놓여있다. 김형관은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주제로 삼아온 굿이나 무속신앙 등의 초자연적인 샤머니즘을 그만의 예술적 실천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이러한 작업들에서 진일보하여, 이번 개인전 『감로 甘露』에서는 '감로탱화(Nectar Ritual Painting, 甘露幀畵)'에 등장하는 '아귀(餓鬼)'를 비롯한 여러 요소들의 상징성을 동시대가 그리는 디스토피아Dystopia/유토피아Utopia간의 긴장으로 전환한다. 
    
    사찰에 가면 대웅전 왼편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그림이 바로 감로탱화이다. '감로탱', '감로왕도'라고도 부르는 감로탱화는 영혼이 지옥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불교의식 '천도제'를 묘사한 조선시대의 불화(佛畵)이다. 석가모니의 제자인 목련존자가 돌아가신 어머니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지성을 다해 기도하였다는 이야기가 경전이 되어 감로탱화와 함께 전해지고 있다. 목련의 어머니는 육도(六道) 중 하나인 '아귀도'에 떨어져 아귀가 되어, 굶주리고 목이 타는 고통을 받고 있었다. 목련이 신통력을 발휘해 음식을 공양하여도 어머니가 받아먹으려고 하는 순간에는 불꽃으로 변하여버렸다. 이처럼 아귀는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을 찾지만 음식을 먹을 수 없고, 설령 입에 음식이 들어가더라도 목이 가늘어 넘길 수 없다고 한다. 
    
    불교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인간의 죽음이란 육도를 헤매는 윤회의 운명이다. 감로탱화는 이 같은 현세의 죽음 이후를 상상하게 한다. 그림에 묘사되는 내용들은 여러 경전이 압축되어 보여지는 것이라서 현세와 내세, 극락과 지옥 등의 여러 시공간이 한 화면에 나타난다. 그림은 크게 상단과 중단, 하단의 장면으로 나눌 수 있다. 상단에는 불보살들이 구름을 타고 강림하고 있고 뒤로는 뾰족한 봉우리와 험준한 산악이 펼쳐져 있다. 중단에는 스님들이 모여 천도제 의식을 치르며 악기를 연주하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한다. 중단 주위와 하단으로는 전쟁을 비롯한 지옥에서의 온갖 종류의 보편적 죽음의 장면이 펼쳐진다. 아귀는 그림 중단 중심부, 온갖 죽음의 장면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묘사된 한 쌍의 괴물이다. 머리는 산발을 하고 있고 눈가는 퀭하지만 눈알은 툭 튀어나와 있으며 배는 부풀어 올랐지만 목은 가늘고 팔과 다리는 나무의 껍질처럼 메말라 있다. 두 손은 그릇을 받치고 구걸을 하고 있는데, 아귀가 구걸하는 것은 불보살들이 내려주는 이슬 즉 감로이며, 감로는 진리를 의미한다. 
    
    김형관은 『감로탱』(강우방·김승희 공저, 1995)에서 감로탱화에 나타나는 당시의 시대상과 불교의 세계가 절묘하게 연결 지어져 있는 도상에 흥미를 느꼈다. 조선시대의 감로탱에는 저잣거리에서 일어나는 온갖 사건들이 표현되어있고,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것에는 제식훈련을 하는 모습이나 군함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감로탱화 속 아귀의 굶주림과 욕망, 절망을 현대 사회에서 인간이 처한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의 패권과 무한해 보이는 권력, 신기술, 첨단과학... 물이 땅과 공기를 순환하여 이슬이 맺히듯, 인간이 이러한 욕망의 세계를 순환하여도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진리'나 '깨달음'일 것이라고, 작가는 생각한다. 
    
     김형관의 회화 작업에는 물감 대신 테이프가 사용된다. 「아귀도」에는 구걸하는 아귀처럼 양 손에 그릇을 들고 아귀로부터 걸어 나오는, 보다 순박하고 평범해 보이는 인물상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원래는 마치 아귀의 탈을 쓴 자들인 것처럼도 보인다. 이는 아귀와 인간 중 무엇이 본질인가 하는 질문으로 이끈다. "테이프"라는 비(非)미술적 포장 재료와 (아귀와 대비되는)평범한 인간 군상이라는 소재의 연결은 이렇듯 내용과 이미지, 본질과 껍데기에 대한 사유를 넘나들게 한다. 
    
    이처럼 김형관은 주로 색테이프를 작업의 재료로 사용한다. 방산시장을 지나본 적이 있다면 무심한 듯 켜켜이 쌓여 진열되어있는 형형색색 색테이프의 숫자와 그 종류의 다양함에 눈길이 이끌렸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완성된 작품 또한 그 색상이 매우 화려한데, 이는 무신상 등 무속 제의에 사용되는 오브제의 색을 연상시키고, 나아가 그것을 직접 지시하는 지표로써 작용한다. 제의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들의 화려한 색상이 정해지고 만들어지는 방식은 사실 산업용 색테이프나 시트지와 같이 산업 사회에서 제품 생산의 "거친" 공정에 사용되는 조색(調色)의 방식과 다르지 않다. 현대에는 제의에 사용되는 도구나 장식품들 또한 플라스틱으로 찍어내어 대량으로 생산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각하면 초자연적 영역에 자본주의와 산업사회의 맥락이 끼어들면서, 「뇌신」, 「풍신」과 같이 화려하면서도 키치Kitsch하게 재현된 자연을 관장하는 신들의 모습처럼 이들이 지니고 있던 신화적인 속성이 전복된다. 
    
    신앙의 신화가 깨어진 자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진리와 깨달음, '감로'는 무엇에서 기대할 수 있을까? 작가는 감로탱화에서 아귀와 함께, 그 뒤편에 보이는 제단에도 주목한다. 천도제 제사에 공양된 음식, 감로미(甘露米)는 아귀가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자기이해를 위한 의례」의 선반에 놓인 물체들은 작가의 이전 프로젝트, '오복시장'을 통해 구한 사물들이다. 여기에서는 작가가 (아귀처럼 굶주리고 욕망하는 현대 사회의 인간인)자신을 포함한 우리들에게 공양하는 제물의 역할을 하면서도 거대한 자본이나 환경 앞에서 연약해지는 인간의 욕망을 보여주는 "동시대판 감로화"의 도상이기도 하다. 
    
    감로탱화를 꼭 사찰에서 보아야 하는 시대가 아닌, 어디에서든 이미지를 접할 수 있는 현대의 우리에게는 더 이상 이미지가 지닌 종교적 상징성은 무용한 것 같다. 아귀가 상징하는 서사는 표상만 남아 매끄러운 유리 위에 그림으로 달라붙었다. 그러나 그것을 보는 관객은 유리창의 안과 밖, 그리고 창문과 선반을 세워 만든 공간을 함께 체험한다. 유리창에 그려진 아귀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반사되어 비치는 관객인 자신, 혹은 다른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런 체험은 현세에서 욕망하는 우리들 모두 죽으면 아귀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교적 교훈을 환기시킨다. 이로써 신화의 전복과 종교적 운명의 재인식, 탈신화와 재신화가 겹쳐진다. 작가는 아귀 같은 자본문명의 디스토피아와 극락왕생의 유토피아가 서로 긴장관계를 만들어내는 지금시대의 감로화를 지금-여기의 시공간에서 펼쳐보이고자 한다. 유리와 테이프, 발견된 사물들로 이루어진 유사-천도제는 샤먼으로서의 예술가에 의해 동시대의 감로화를 소환해냈다. 아귀의 두 손에 들린 그릇 위에 맺힐 이슬처럼 김형관의 주술 같은 이 전시가 각자에게 이슬로 남기를 기대한다. 
    
    김명지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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