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19.10.26 - 2019.11.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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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3:00 - 20:00 |
장소| | N/A 갤러리/서울 |
주소| | 서울 중구 을지로4가 35 |
휴관| |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10-2563-7499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가| |
오묘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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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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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택시더미아 TAXIDERMIA 오묘 초 Taxidermy + -ia의 합성어. Taxidermy는 박제, 접미사 -ia는 병이나 특정 상태를 의미한다. 박제는 동물의 사체를 살아있을 때보다 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다. 박제는 장식품이자 사치품이다. 산 것보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비싼 이상한 현실이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살아있는 것을 등한시하고 죽은 것에 의미를 부여한다. 찰나를 이미지화해서 그 순간을 영원히 떠받든다. SNS는 개인의 생활 중 일부만을 영원히 박제하고, 정치도 한순간의 이미지로만 기억된다. 박제된 호랑이는 언제나 포효하는 법이다. 이 과정에서 이미지와 괴리된 실제의 삶은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으므로 살해당한다. 작가는 박제된 이미지만 기억되는 현대사회를 TAXIDERMIA라 부른다. 이미지는 죽음과 함께 탄생한다. 영웅이 일찍 죽는 것이 아니라, 일찍 죽은 자만이 영웅이 된다. 죽음은 순결을, 삶은 추악함을 남긴다. 이미지는 실체가 사라지는 순간 등장하며, 실체가 사라졌으므로 오히려 변하지 않고 영원히 박제된다. 예술도 박제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예술이 현실을 이미지화한 것이라 말한다. 예술 속에 삶의 정수가 녹아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포효하는 것이 호랑이의 정수가 아니듯 예술도 삶의 정수는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렇게 믿을 뿐이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삶을 이미지화한다. 사람들은 동물원에 퍼져있는 호랑이가 아니라 보지도 못한 포효하는 야생 호랑이를 꿈꾼다. 하지만 그것은 죽은 이데아일 뿐이다. 우리는 삶을 예찬하지만, 안타깝게도 죽은 것만이 진정 의미를 가진다. 이에 작가는 작업실이 위치한 인쇄골목 일대에 매일 똑같이 버려지는 사물에 주목한다. 재생가능하고 반복가능한 사물의 죽음을 박제라는 형식으로 소환한다. 그로써 살해당한 사물들은 이미지로 박제되어 탄생하는 사건이자 장식품(전시품)으로써 전시장에 등장한다. 전시장에 설치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예술가의 실천이 박제라는 행위를 오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죽은 재료를 채집하고 흙에 묻어 불에 태우거나, 종이 위에 프린트하고 그들을 전시장에 묻는 제의적 수행을 함으로써 ‘염하는 것’과 ‘기록하는 것’이라는 죽음을 둘러싼 오래된 행위들에 질문을 던진다. 채집 되어진 사물은 작가에 의해 영원히 박제되고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다. 작가의 이러한 행위들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사물들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 인간의 기억을 넘어선 사물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