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 2019.11.01 - 2019.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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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 10:00~18:00 |
장소| | 성남큐브미술관/경기 |
주소| | 경기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 757 |
휴관| | 월요일 |
관람료| | 무료 |
전화번호| | 031-783-8142 |
사이트| | 홈페이지 바로가기 |
작가| |
김남훈, 안유리, 양유연, 유승호, 이해민선, 전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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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수정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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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성남큐브미술관은 학예인력 인턴십 프로그램의 두 번째 현장실습보고전, 2019 인턴기획전《말그림자 More than Words》를 개최한다. 인턴기획전은 미술관 및 관련분야의 미래 전문인력들에게 실무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는 현장실습프로그램으로, 성남큐브미술관의 정기학예인턴이 6개월 간의 인턴십 과정을 수료한 뒤 전시개념도출부터 개막까지 전 과정을 발로 뛰며 준비한 전시이다. 이번 전시는 거칠고 독한 말로 서로를 아프게 하는, 언어폭력과 혐오발화가 횡행하는 현대사회에서 말의 이면(裏?)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소셜 플랫폼을 통해 누구나 쉽게 ‘말’하며 그에 따른 사회적·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된 오늘날의 체제에서 말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드높다. 그러나 말이 가진 합의와 논쟁의 가치는 하락하고, 직관적이고 단편적인 가장 좁은 의미의 말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이를테면 면밀한 분석, 진중한 비평보다는 ‘사이다’같은 촌철살인의 직설적인 말이 인기를 얻는다. 비평은 부실해지고 공격의 속도전에 시달린다. 이처럼 피로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역설적으로 말하기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전시명 《말그림자》는 음운론적 형태가 유사한 ‘달그림자’를 임의로 변용한 합성어이다. 수면(??)에 비친 달그림자가 뚜렷한 형태로 결합되지 않으면서 동시에 완전히 흐트러지지 않고 일렁이는 모습에 착안한 이 단어는, 명징하고 탁월한 논리 구조를 지닌 말에도 인간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영역, 이성으로 명백하게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이 존재한다는 관념을 언어적으로 시각화하려는 시도이다. 전시는 말의 한계를 인지하고, 언어를 ‘불신’하는 태도에서 출발한다. 말 대신 ‘보여주기’의 방식에 능숙한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관습적인 언어방식을 해체하고, 우리의 담화 가운데 그림자처럼 머물고 있을 언어체계를 수면 위로 이끌어낸다. 전시에 참여하는 여섯 작가 김남훈, 안유리, 양유연, 유승호, 이해민선, 전지인은 회화, 설치, 영상, 드로잉 등 다양한 매체로 말의 ‘주변부’에서 파생된 또 다른 말하기 방식의 가능성과 의미를 탐구한다. 전시장 1층의 김남훈, 안유리, 양유연은 대화의 불가능성을 시인하지만, 타자의 언어로 부단히 소통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김남훈은 좁혀질 수 없는 대화의 간극을 3D 프린팅 조각으로 시각화하는 동시에 모스부호(Morse code)라는 최후의 신호를 통해 미약하지만 필사적인 방식으로 끊임없이 말을 건넨다. 양유연은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적 발화(기도)와 공통된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사회적 발화(집회)를 대치 구도로 보여주면서 이들의 상관관계를 드러낸다. 안유리는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는 정서적 교감을 수수께끼 같은 시어(詩語)와 서정적인 영상에 담는다. 이들 작업을 통해 관람객은 실제로 고요한 전시장 내부에 ‘침묵의 소리’가 공명(共鳴)하는 듯한 역설적인 상황을 경험한다. 2층의 유승호, 이해민선, 전지인은 텍스트의 담론적 속성을 드러낸다. 전지인은 은경 아크릴 위에 사회적 약자에 관한 속담을 새김으로써 문장의 텍스트가 어떻게 사람을 제약하고 통제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해민선의 나무 프로타주 드로잉 시리즈는 침묵이 결코 ‘죽은 언어’가 아니라 오히려 강렬하고 묵직한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생명을 ‘나오게’ 할 수 있음을 반증한다. 유승호는 깨알같은 문자를 빼곡히 적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통해 사회에 만연한 공허하고 위선적인 말을 경쾌하게 폭로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은 친숙했던 ‘말’이라는 매체가 낯설고 불편해지면서 정교한 말을 이용해 진입할 수 없었던 미지의 영역을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언어가 언제나 내 마음, 내 직관적인 사고, 내 감각과 지각 그 자체를 고스란히 외부로 드러내주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의 행로와 그것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매개체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과 근본적인 결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깊은 외로움과 상실에 빠질 필요도 없고, 말하기를 그만두자는 의미도 아니다. 말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따지기 보다는 새로운 대화의 방식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한다. 6명의 작가가 보여준 것처럼 침묵을 지키기도, 기도하기도, 신호를 보내기도, 서신을 주고받기도…, 어떤 방법이든 좋다. 다만 그것은 혼자만으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에 불편하지만 끊임없이 대화를 추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