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EXHIBITION
박지혜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
기간| 2019.11.13 - 2019.12.18
시간| 월-금요일 9:00-18:30 토요일 11:00-17:00
장소| 송은아트큐브/서울
주소| 서울 강남구 대치동 947-3/1층
휴관| 토요일,일요일, 공휴일 휴관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3448-010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박지혜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home sweet home
    2019 OSB,목봉,물고기밥 타이머,LED조명,소금 가변설치

  • home sweet home_detail


  • Say it


  • 네가 잘 되었으면 좋겠어, 정말로

  • 			송은 아트큐브 소개 
    송은 아트큐브는 젊고 유능한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재)송은문화재단에서 설립한   비영리  전시공간입니다. 
    송은 아트큐브는 (재)송은문화재단이 송은 아트스페이스와 함께 운영하고 있는 공간으로 신진 작가들의 자발 적인 전시 개최를 지원함으로써 창작 의욕을 고무하기 위한 작가지원 프로그램입니다. 대치동 (주)삼탄 사옥 내에 위치한 송은 아트큐브는 2002년 1월 개관한 이래 매년 공모를 통해 작가를 선정하고,  전시 기획을 바 탕으로 공간과 도록 제작 등을 후원하여 작가들의 전시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전시 개요 
    (재)송은문화재단은 2019-2020 송은 아트큐브 전시지원 공모 프로그램 선정작가 박지혜의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를 선보인다. 박지혜 작가는 민주적이라 불리는 다수의 행복을 위해 묵인되는 개인의 불편한 지 점을 꼬집어내며,  정상과 비정상,  성공과 실패에 대한 사회적인 경계를 다시금 깨우치게 하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시작된 고민을 통해 사회적 규범을 형성하는 “합리적인”  선택에 대해 의문 을 갖는다.  다수의 가치를 위해 정해진 원칙에 대한 의구심은 곧 “믿음"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 진다. 
    
    이번 전시 《영광의 상처를 찾아》에서 박지혜는 전시장 합리적인 믿음에 따라 개인이 가져야 하는 자그마한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삽살개 형상을 한 오브제 작업 <blind>(2019)가 송은 아트큐브의 입구를 지키고 있 다.  마포걸레로 만든 이 조금 지저분한 털을 가진 개로 보이는 이 작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흰 개는 귀 신을 본다"는 미신에서 비롯되었다.  이 작업은 윈도우 갤러리에서 전시장 전반에 대한 액운을 막아준다. <home sweet home>(2019)는 튼튼하고 안전하게 지어졌지만 결국 불에 타고 있는 오두막을 형상화한 설치 작업이다. 소금은 본디 부정한 것을 막아주고 액운을 떨쳐낸다는 미신으로 이어지는데 안타깝게도 소금이 쌓 여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두막은 불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다. 
    확실한 서사가 없이 배치된 작업들은 모두 사회적으로 부여된 의미에 따라 뜻이 달라진 상징물들과 함께 한 다.  물론,  이 상징성을 명확히 하는건 보는 이의 자유일 것 이다.  작가는 결국 맥락에 따라 통용되는 의미를 따르는 듯 하지만 결국 우리가 바라보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게 개인인지,  혹은 집단의 합의에서 도출된 의 미인지 하는 이 상황을 보여주고자 한다.
    
    작가소개 
    박지혜 작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 학사,  한국예술종합학교 입체조형전공 예술전문사를 졸업했다.  개인전 《평 범한 실패》(갤러리조선, 서울, 2018), 《between flip turns》(아웃사이트, 서울, 2017)를 개최했으며, 《다층의 기록》(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 2019), 《공감오류; 기꺼운    만남》(아트스페이스풀, 서울, 2016) 등 다수의  그룹전에 참여했다. 
    
    불확실함을 위한 교범: 박지혜 작가의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를 위한 노트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더글러스 애덤스의 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1978년 BBC  라디오 극으로 방송되었고, 1979년에 소설이 발간되었다. 한국어 번역판은 1996, 2004년에 발간되었으며 2005년에 영화가 개봉했다)에 등장하는 도시 크기의 슈퍼컴 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이 750만 년에 걸친 계산 끝에 제시하는 질문은 이렇다. 42.
    
    심오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왜 42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이론이 존재한다. (지금은 쓰이지 않는) 마이크로소프 트사의 DOS  운영체제에서 동일한 확장자를 가리키는 모든 파일을 나타내는 기호 *의 ASCII(미국정보교환표 준부호)  코드가 42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부터,  저자와 제목의 글자 수를 합치면 (30+12) 42가 된다는 의 견, 일본식 고로아와세(語呂合わせ, 독음이 비슷한 숫자나 문자로 의미를 바꾸는 것)으로 42를 읽으면 시니(死 に, 죽음)이기에 우주의 궁극적 해답은 ‘죽음’이라는 의견 등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소설의 원작자인 더글러스 애덤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덤스의 말을 빌자면, “2진수 표현, 13진법,  티베트 승려들의 신비로운 숫자들은 다 앞뒤가 맞지 않아요. 책상에 앉아서 정원을 바라보다가 42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타자기로 숫자를 입력했습니다. 그뿐이에요.” 
    수비학(數秘學, Numerology)은 숫자를 사용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려는 일종의 점술이다. 수비학적인 관점 에 따르면,  숫자는 만물의 원리를 나타내며,  우주의 모든 사물은 숫자로 계량화하여 질서를 부여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특정한 존재를 숫자로 나타낼 수도,  숫자를 특정한 존재로 치환하여 생각할 수도 있다. 예컨대,  계율상 신의 이름을 소리내 말할 수 없었던 유대교에서 신을 부르는 이름인 יהוה는 숫자 로마자 YHWH로 치환된 뒤 각 글자가 나타내는 숫자 10, 5, 6, 5를 합친 26으로 쓰였다. 말하자면 고대의 유대교 신 자들에게 26은 곧 신의 이름이기도 했던 것이다. 
    언뜻 수비학은 그저 기호에 불과한 숫자에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미신처럼 보인다. 결과는 눈 앞에 놓여 있지만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불가해한 세상의 원리를 어떻게든 인간이 이해할 수 있 는 확실한 틀에 끼워 맞춰 설명하려는 애처로운 시도인지 모른다. 하지만 21세기의 기술 가운데 가장 진보한 영역이라는 인공지능의 영역에서도 본질적으로는 수비학과 다를 바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2016년,  구글 번역기의 인공 지능을 연구 중인 과학자들은 번역기의 알고리즘이 100여 개의 언어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인 간이 이해할 수 없는 자체적인 언어를 개발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구글 번역기 서비스 안에서 작동 중이지 만 기존의 인간 언어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이 ‘중간 언어’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자들은 ‘사이 언어 (interlingua)’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내야만 했다. 
    확실히,  지금 세상은 불확실하다.  사실 세상은 언제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했지만 이른바 ‘거대서사’에 간편히 기댈 수 있던 (일부 사람들에게 꽤나 편했을지 모르는) 호시절은 끝났다. 그러나 불확실함을 선뜻 받아들이거 나 수용하기란 쉽지 않다.  불확실함 속에 놓인 이들은 외려 더 명확한 것을 갈구한다.  복잡한 사건이나 지식 이 명확한 기승전결을 갖춘 ‘서사’로 재탄생하여 유통되기도 하고 (‘넓고 얕은 지식’의 유행을 보라),  단순한 믿음에 기반한 세계관이 유튜브를 위시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정보 유통 플랫폼들을 활용해 사람들을 움 직이게 만들기도 한다 (이른바 ‘가짜뉴스’가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여러 나라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더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
    
    송은아트큐브에서 열리는 개인전 <영광의 상처를 찾아>(2019. 11.13 ~ 12.18)에서,  박지혜 작가는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불확실함을 해소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아 보이는 갖가지 오브제와 액자에 든 이미지, 모니터를 통해 선보이는 영상을 제시한다.  전시라는 틀 안에서 ‘작업’으로 제시되는 것들은 불확실함을 해소 하기는커녕 세계에 대한 혼란을 가중시킬지 모른다.  전시장 입구를 지키고 있는 강아지처럼 보이는 형상은 사실 마포 걸레를 겹쳐 만든 것이고,  아니 사실은 액운을 내쫓는다는 삽살개가 밀대 자루를 벗어난 걸레인 척 가만히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시장으로 바위를 옮겨온 것인가 싶을 큰 덩어리들은 사실 스티로폼으로 만든 ‘바위 비슷해 보이는 어떤 것’이며,  스무 마리가 넘는 까마귀가 여기저기에 놓여 관람자를 맞이한다.  그 런가 하면 전시장의 한 켠에는 ‘불타는 집’도 서 있다. 물론, 정말로 불이 붙어 연기를 내며 활활 타오르는 그런 집은 아니다. 
    
    전시장 안에 놓인 것들은 모두 무언가에 대한 의미부여를 참조하거나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떨어진 상태,  그러니까 애초에 그것이 지시하고자 했던 대상으로부터 적어도 두 단계쯤 떨어진 채 존재한다.  작가는 작품들 이 참조한 각각의 출발점에 대해서도,  의미에 대해서도 그리 자세한 설명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눈 밝은 관람자라면 마치 수비학을 통해 세상을 해석하듯 전시장에 놓인 작업들에 의미를 부여해 꽤 먼 곳까지 나갈 수 있으리라는 점을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힌트:  이번 전시 출품작 가운데 짐 캐리가 수비학 에 사로잡힌 인물로 등장하는 영화를 참조한 작업이 있다. 어떤 작업일까?)
    
    명확한 서사도, 깔끔하게 맞아떨어지지 않는 설명도 없는 상황에 답답해 할 필요는 없다.  생각해보자.  작업의 창조주 격인 작가가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것은 과연 전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  이미 지난 몇 년간 작가는 반복적으로 이런 경험을 한 바 있다. 명확히 말하면 “너무 단정적”이라는 지적을 받고, 조심스럽게 말 하면 “우물쭈물한다고”  비난받는 상황에 놓였던 거다.  따라서 <영광의 상처를 찾아>는 단정적이지도,우물쭈물하지도 않는다. 이번 전시의 작업들은 명확함의 호시절이 끝난 지금, 불확실함을 헤쳐나가기 위한 우리들을 위한 교범을 보여준다. 물론, 전시장에 놓인 교범들에서 무엇을 얻어갈지는 언제나처럼 관람자의 몫으로  남겨져있다.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팸플릿 신청
    *신청 내역은 마이페이지 - 팸플릿 신청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6부 이상 신청시 상단의 고객센터로 문의 바랍니다.
    확인
    공유하기
    Naver Facebook Kakao story URL 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