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선 선은 실재하지 않는 허구의 개념일 뿐이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사물의 외곽선은 나의 움직임에 의해 시시각각 변할 수 밖에 없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지해 있는 것은 이세상 어디에도 없다. 단지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그래서 내가 그려 놓은 선은 어쩌면 내 관념의 한 파편을 가두어 놓기 위한 약속된 기호일지 모른다. 그래서 선은 애초부터 허구이다. 즉 선은 관념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작품 속 사물들은 지극히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진 선으로만 해석돼 있다. 사물과 공간은 개성과 감정이 무시된 중립적이고 밋밋한 선으로 수학의 기호처럼 건조하게 해석돼 있다. -나는 선을 그리지 않고 쓴다. 나는 사물을 묘사하고자 할 때 드로잉(우리가 일상적으로 그린다고 생각하는) 한다는 생각보다 쓴다는 관점에서 묘사한다. 내게 있어서 화면 속의 선들은 기호이고 글씨이다 그리고 그 기호로 형태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사람들이 텍스트를 읽으면서 사물을 상상하듯이 나는 선을 쓰면서 사물을 상상하게 만든다. 빛 -숨겨진 시간과 공간의 창조자 사물의 시지각적 인식은 빛이 있기에 가능하다. 빛이 없는 세계에서는 형태와 질감을 인지하지 못한다. 빛은 그 자체로 현실이고 또 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선에 의해 연출된 사물은 허무하다. 작품 속에서 선으로 쓰여진 관념의 표상은 현실의 빛이 들어오면서 허구와 실재의 경계선을 무너뜨린다. 이 빛은 LED에 의해 만들어진 실재하는 빛이다. 즉 개념으로 규정된 작품 속 화면에 현실의 빛이 들어온다. 선과 선 사이에 그리고 선으로 규정된 공간 속에 빛이 침투한다. 그리고 선으로 한정된 사물은 그 사물 주위의 감춰진 시간을 불러오고 잠재된 사물의 현실의 몸을 얻는다. 쓰여진(드로잉 되어진) 평면에 삼차원의 공간을 얻으면서 실재의 몸을 얻는다. 빛은 선이라는 사물을 다시 규정한다. 관념의 존재였던 선을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된 사물로서의 선으로. 즉 빛이 생기면서 선은 사물이 된다 그리고 그 사물은 빛과 함께 시간을 만들어 내고 공간을 해석한다. 그리고 해석된 사물들은 현실과 가상을 넘나들면서 관찰자로 하여금 그들의 내면에 잠재된 수많은 감정들을 발현시킨다. -그림이 된 빛 빛이 드리운다. 화면은 창으로 들어온 빛과 그림자로 가득 찬다. 얼어붙어 있던 기호들 사이로 현실의 빛이 드리운다. 선과 선 사이로 공간이 생기면서 긴장감이 감돈다. 그리고 화면 속의 사물들은 실재와 가상의 이중놀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선으로 규정된 2차원의 화면은 연출된 실재의 빛을 만나면서 화면은 더 이상 이차원이 아니다. 즉 선이라는 사물과 빛이라는 사물이 만나게 되고 이 둘 사이에 실재의 공간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현실 속의 실재의 공간에 있는 빛은 다시 그림 속의 가상의 공간으로 스며든다. 즉 기호(선)로 제시된 이차원의 공간 사이로 현실의 빛(LED)이 비현실(가상)의 공간으로 침투하고 가상의 공간 속의 가상의 빛으로 다시 태어난다. 마침내 빛은 그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