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어떤 일이 벌어졌고 벌어지고 있고 벌어질 것인가 사건 현장에 서 있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그는 형사나 검시관, 기자일 수도 있고 혹은 지금 막 범행을 마친 범인일 수도 있다. 그 사람의 정체가 누구냐에 따라 현장에서의 움직임은 달라진다. 형사는 성큼성큼 현장을 훑으며 직감에 따라 단서를 연결하고 기자는 종종걸음으로 인물들을 오가며 출처가 다른 정보들을 교차/조합한다. 과학자는 미시적인 시선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며 범인은 강박적으로 흔적을 감추거나 조작하려 한다. 그러므로 현장에서는 다양한 경로의 이야기가 탄생한다. 과정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은. 하나의 결론이 존재하지 않는 현장이 있다면 어떨까. 탐정은 매일 다른 버전의 보고서를 쓰고, 범인은 그중 무엇과도 일치하지 않는 자백을 한다. 현장으로부터 설계된 이야기들은 각자의 결말을 향해 뻗어 나가고 그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단서의 의미와 역할은 계속해서 변한다. 나는 한 지점에서 생겨나 점점 복잡해지는 이야기 망을 상상한다. 그것은 각 관찰자의 움직임에 의해 달라진다. 현미경의 시선과 인공위성의 시선이 수시로 교차하고 이에 단서를 연결하는 각각의 선들은 사라졌다가 생겨나고 돌연 방향을 바꾼다. 이야기망은 이제 관찰자의 기억/습관/정서와 접속하여 그 공간 너머까지 확장된다. 그림은 행위자의 물리적/사색적 흔적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사건 현장이다. 그것은 여러 경위로 일어난다. 대상의 내부를 포착하려는 반복된 시도로 노출되거나 출처가 다른 이미지의 파편들로 직조되기도 하고 표면과 매제의 화학반응, 제어되거나 제어되지 않은 움직임을 통해 발생하기도 한다. 이때 사건은 시간이 제거된 채 평면 안으로 들어오고 그 흔적만이 공간(을 가장한 평면) 안에 흩어진다. 질서가 사라진 인과에는 온갖 헛것들이 끼어들고 우리는 자꾸만 단서를 놓치게 된다. 그럼에도 화면에 작용한 힘을 추적하거나 배후의 움직임을 떠올리는 일은 늘 흥미롭다. 우리가 찾아야 할 단 하나의 목적지란 없으며 그저 내키는 대로 헤매다 보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지도가 그려지곤 하는 것이다. 지금 소개할 5명의 작가는 각자의 방식으로 평면 안에 사건을 발생시키고 그것에 회화적 몸을 부여한다. 이 전시를 통해 이들에게 입력된 정보 더미가 어떻게 회화적 사건들로 출력되는지 살펴보고 또 그것들이 하나의 공간에 합류했을 때 어떤 작용/반작용을 일으키는지 지켜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