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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기간| 2019.12.11 - 2020.03.01
시간| 10:00 - 18:00
장소| 국립고궁박물관/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세종로 1-57
휴관| 1월 1일, 설날 당일, 추석 당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3701-7500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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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
    
    심양瀋陽 고궁故宮은 베이징[北京] 고궁과 함께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온전한 황실 궁궐 중 하나이자 청淸 황실의 발원지로서, 청 황조의 기틀을 다졌던 창시자들의 굳건한 초심을 담고 있는 장소이다. 청 황실의 문화가 깃든 귀중한 보물들을 보관해오던 중요한 장소인 심양 고궁은 궁궐 건축의 우수한 기술과 예술적 성취를 대표하는 중국 최고의 문화재로서, 1961년 제1차 전국 중점 문물 보호 단위로 지정되었고 2004년에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심양 고궁 내에 위치한 심양고궁박물원은 2016년 중국 국가 1급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
    
    “청 황실의 아침, 심양 고궁”은 국립고궁박물관과 심양고궁박물원의 교류 특별 전시로 심양 고궁의 건축적 면모와 함께, 고궁에서 간직해오던 청 황실의 복식과 무기, 공예품과 장신구 등 다양한 문화재를 선보인다. 북방의 소수 민족이었던 만주족이 대제국을 이루는 발판이 되었던 심양, 그리고 심양 고궁과 함께 긴 시간 속을 지나온 유서 깊은 보물들을 통해 청 황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심양 고궁의 역사
    
    심양 고궁은 청 태조 누르하치[努爾哈赤]와 청 태종 홍타이지[皇太極]가 사용했던 황궁이다. 1644년 청나라가 베이징으로 수도를 옮긴 뒤 심양 고궁은 ‘제2수도의 궁궐’이 되었고, 강희 康熙 · 건륭乾隆 · 가경嘉慶 · 도광道光 등 후대 황제들은 황실의 근원인 심양 고궁을 찾아가 청나라 황실의 정통성을 확인했다.
    
    심양 고궁의 건축물은 축조 시기와 기본 구조에 따라 동로東路, 중로中路, 서로西路로 나뉜다. 동로에는 누르하치가 심양으로 수도를 옮긴 초기에 건설한 대정전大政殿과 십왕정十王亭 등이 있다. 중로는 홍타이지가 즉위 후 건설한 대청문大淸門, 숭정전崇政殿, 봉황루鳳凰樓를 비롯해 홍타이지와 황후, 비의 생활공간이었던 대상오궁臺上五宮(청녕궁淸寧宮 · 관저궁關雎宮·인지궁麟趾宮 · 연경궁衍慶宮 · 영복궁永福宮)과 청 황실이 베이징으로 이동한 후에 증축된 행궁行宮과 태묘太廟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로에는 건륭 시기에 증축된 문소각文溯閣, 희대戱臺 등이 있다. 약 160년에 걸쳐 건축된 3로의 건축군은 시기별 특징을 뚜렷하게 보인다.
    
    1부   후금 일어나다
          后金崛起
          The Rise of the Later Jin Dynasty
    
    만주족滿洲族의 조상은 백두산과 헤이룽강[黑龍江] 유역에 거주하였고 명明나라 때 여진女眞이라 하였다. 당시 여진은 건주建州여진, 해서海西여진, 야인野人여진의 3대부三大部로 나뉘어져 있었다. 누르하치는 1583년에 갑옷 13벌을 가지고 병력을 일으켜 통일의 대업을 시작했다. 또한 만주족 특유의 팔기八旗제도를 수립하고 몽골 문자를 토대로 만주족의 문자를 만들었다. 1616년, 누르하치가 스스로를 ‘한汗’이라 칭하고 후금後金 정권을 수립하였다.
    
    청나라의 팔기제도 八旗制度
    The Eight Banners: Administrative and Military System
    
    팔기제도八旗制度는 행정・군사조직을 여덟 개의 기旗[깃발]로 조직하여 다스렸던 청나라 특유의 제도이다. 조직을 구성하여 무리 사냥을 하였던 만주족의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청나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백성들은 팔기제도에 따라 각 기에 소속되어 평상시에는 행정과 생산을 위한 업무를 하다가 전쟁 시에는 청나라 정예군인 팔기군의 병사로서 전쟁에 나섰다. 최초의 팔기는 1601년에 누르하치가 기존의 부족집단을 통합하고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창설하였다. ‘기旗’는 5개의 잘란[甲喇]이 모인 1구사[固山]로 이루어졌다. 잘란은 5개의 니루[牛錄]가 모인 집단이며, 기본단위인 니루는 장정壯丁 300명이었다.
    
    처음에는 정황正黃, 정백正白, 정홍正紅, 정람正藍의 4색 깃발로 구성되었다가 영토와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1615년에 양황鑲黃, 양백鑲白, 양홍鑲紅, 양람鑲藍의 4기가 추가되어 ‘팔기八旗’가 되었다. 초기에는 만주족만을 대상으로 팔기를 구성하였는데 점차 몽골인과 한족이 귀화하면서 몽골팔기와 한군팔기도 조직되었다.
    
    2부  청나라의 발흥지
          龙兴盛地
          The Cradle of the Qing Dynasty
    
    누르하치는 1625년 수도를 허투알라[赫圖阿拉]에서 심양으로 옮기고 심양 고궁의 초기 건물들을 건립하였다. 1626년, 그의 아들인 홍타이지가 한汗의 지위를 계승하였고, 1636년에는 국호를 ‘후금’에서 ‘청’으로, 민족의 이름을 ‘여진’에서 ‘만주’로 바꾸었다. 그는 심양 고궁의 대내궁궐 영역을 건축하였으며 심양을 ‘성경盛京’으로 격상시켰다. 1643년, 홍타이지의 뒤를 이어 순치제順治帝가 즉위하였고 1644년에 대륙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고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해 청나라의 부상과 번영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3부   제왕의 기상
          帝王气象
          The Spirit of the Emperors
    
    청나라 초기에 심양은 성경盛京이라 하였다. 심양에는 삼릉三陵이라 불리는 청 태조 누르하치의 복릉福陵(동릉東陵), 홍타이지의 소릉昭陵(북릉北陵), 그리고 누르하치 선조들을 모신 영릉永陵이 있다. 순치제가 수도를 베이징으로 옮긴 뒤에 성경은 제2의 수도가 되었고, 성경 황궁은 행궁行宮으로 사용되었다. 강희, 건륭, 가경, 도광 네 황제가 성경을 순행巡行하고 이곳에 있는 조상의 능에서 제사를 지낸 약 100여 년의 기간 동안 성경 황궁은 황제의 의 · 식 · 주, 교육, 오락, 이동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들이 가지고 온 행렬 의장물, 궁궐 장식품, 궁중 악기와 제사 용기, 식기, 의복과 장신구 등 다양한 황실 유물이 오늘날까지 전한다.
    
    4부  청 황후와 비의 생활
          锦绣宫闱
          The Life of Imperial Women
    
    청나라 황후皇后와 후궁에 해당하는 비妃에 관한 제도[후비后妃 제도]는 홍타이지 때 처음 수립되었다. ‘청’으로 국호를 변경한 1636년에 5궁(중궁中宮, 동궁東宮, 서궁西宮, 차동궁次東宮, 차서궁次西宮)의 후비를 책봉하여 등급을 나누었다. 이후 강희년간(1662~1722)에 8등급으로 개편되면서 세부 제도가 완비되었다. 청나라의 후비들은 깊은 궁궐에서 호화로운 일상을 누렸는데 그녀들이 사용한 의복과 장신구, 생활용품 등은 품목이 매우 다양했을 뿐 아니라 비단, 금, 은, 옥, 진주와 색색의 보석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다.
    
    5부  황실의 취향
          皇室雅赏
          Tastes of the Qing Imperial Household
    
    청나라가 베이징으로 천도한 후 강희 · 건륭 · 가경 · 도광 네 황제가 성경을 순행하면서 많은 황실 용품과 궁정 하사품이 성경 황궁에 유입되었다. 이 물품들은 모두 황제가 사용하는 물품의 제작을 담당했던 조판처造辦處, 또는 쑤저우[蘇州]와 난징[南京] 등지의 전문 작업장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지방 유지나 선교사들이 진상한 물품도 일부 섞여 있다. 이러한 물품은 엄격하게 선정된 재료를 가지고 뛰어난 솜씨로 제작된 것이며,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어 황실 생활의 호화로움과 기품을 잘 담고 있다.
    
    6부  황실의 종교
          皇室宗教
          Religion in the Qing Imperial Court
    
    누르하치와 홍타이지가 통치했던 청나라 초기에는 만주족 고유의 종교인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漢, 몽골, 티베트 등 다른 민족의 종교인 불교와 도교를 받아들였다. 베이징 천도 후 황제들은 몽골과 티베트 지역을 통치하는 강력한 도구로써 티베트 불교를 매우 중시하였다. 이러한 민족 · 종교 정책은 만주족의 정신세계를 더욱 풍요롭고 다채롭게 하였다. 또한 광활한 면적을 지닌 다민족 국가였던 청나라가 통일을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특별강연회
    
    1차 2019. 12. 11(수) 10:00~11:00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
    의례와 전통의 계승: 심양 고궁 소장 청나라 황실 유물 | 리리李理, 심양고궁박물원 부원장
    
    2차 2020. 1. 30(목) 14:00~17:00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
    청나라의 건국과 발전 | 이훈, 고려대학교
    조・청관계의 전개 양상과 교류 | 한명기, 명지대학교
    
    3차 2020. 2. 6(목) 14:00~17:30 국립고궁박물관 본관 강당
    청나라 황실 미술의 이해 | 장진성, 서울대학교
    특별전의 기획의도와 전시유물 소개| 백은경, 국립고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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