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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포즈 앤 플레이 : 죽은 사람은 왜 물에 뜨는가
기간| 2019.12.27 - 2020.01.23
시간| 11:30-18:30
장소| 인디프레스/부산
주소| 부산 해운대구 중동 461/1층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10-7397-8498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신승재
정보수정요청

전시정보


  • 구조 교육
    2019 캔버스에 유채 50×50cm

  • 구조 교육
    2019 종이에 먹 20×20cm

  • 대홍수 이후
    2018-2019 캔버스에 오일파스텔, 유채 73×100cm

  • 소생술
    2019 캔버스에 유채 65×91cm
  • 			1. 죽은 사람은 왜 물에 뜨는가
    죽은 사람이 물에 뜨는 것은 결과인가 혹은 결말인가. 결과라면 인과적인가. 결말이라면 서사적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이 둘에 가까운 현상인가. 마치 흐르는 물결을 거슬러 몸의 저항을 일으키는 것은 삶과 죽음 모두가 가지는 결과이며 동시에 결말에 가까운 현상과도 같다. 이를 테면 사람이 살기 위해 떠오르는 것과 살지 못해 떠오르는 것이 동일한 현상이지만, 결과와 결말은 이 현상을 해석과 적용의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하는 것 말이다. 두 여자는 물에 뜨는 법을 가르치고 배우며, 서로 살아 있거나, 죽어 있는 것을 목격한다. 이들에게 놓인 수면 위와 아래 사이의 경계는 일종의 생사를 판단하는 의식의 경계이며, 서로를 통해 자신이 살아 있는 것과 죽어 있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물리적 표면이다. 예컨대, 잠수한 사람이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간절한지 생각해보라. 마침내 물에서 떠올라 기다리는 사람을 보는 것은 또 얼마나 극적인가. 떠오를 것을 아는 것은 떠오르는 것을 기대하는 것은 다르니, 이 기대는 영구할 것만 같은 삶에 대한 소망이며 거부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무력한 이해이고, 이들은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1-1. 소생술 
    소생술은 테크닉이 아니다. 살려내지 못하면 무용無用한 기술이다. 한 번의 날숨을 위해 수백 번의 들숨을 연마한다. 모든 것이 늘 언제나 부족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완벽해진다. 이 모든 것은 삶과 죽음의 극적 장치이다. 살아 있는 자가 그렇지 않은 자에게 줄 수 있는 삶의 기술인가. 그러나 기술은 완성이 아니다. 완성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다.
    
    2. 해석과 해소
    말하자면, 아마도, 결과는 우리의 인식을 해석하지만 결말은 우리의 의식을 해소한다 현상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건 혹은 이야기의 보편적 인식과 개별적 상징이다. 죽음, 희생, 심판, 이 모든 것에 대한 대응과 준비는 결과로서 보여 지는 장면적 현상을 어떻게 '사건과 이야기’의 결말인 개별적 상징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보편적 일반론으로 죽음의 물리적, 생물학적 이해와 재난과 심판에 대한 인과적 과정. 희생과 행위의 정당성은 결과로서 장면화(Mise-en-scene)된다. 장면화된 이미지는 필름이나 영상의 그것처럼 그림의 영역, 도상, 구도를 통해 사건과 이야기를 해석하게 한다. 그러나, 물에 가라앉고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이 해석에 대해 서로 다른 이유로 개별적 상징을 가진다. 죽음과 희생, 심판과 그에 이르는 반응과 준비는 개별적인 사건과 이야기가 될 때 비로소 인식에 따른 해석을 해소시킨다.
    
    3.포즈 앤 플레이
    포즈 앤 플레이는 멈춤과 재생 정도로 번역이 가능하지만, 내 생각엔 번역하지 않는 것이 좀 더 직접적으로 보인다. 둘 다 수동적이라기보다는 능동적 형태를 의미상으로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가 다시 주체적으로 그 멈춤을 타파하여 다시 움직이는 정도의 형식적 의미의 출발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내 작업의 경우, 포즈와 플레이는 필름이나 영상의 작동방식에 대한 주체적인 행위에서 출발한 것인데, 주체적인 혹은 주관적인 쇼트shot의 '유보된 상태와 재생’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사건과 이야기가 잠시 멈추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진정된 구간인데, 이 속에서 장면은 시간적 순서나 인과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는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더불어, 그림 속 이미지와 텍스트간의 비껴 있는 관계는 암시적이다. 암시된 관계는 기대와 경험으로 진전되긴 하지만 결국에는 불일치한다. 그림 속의 텍스트 혹은 기호는 일종의 자막(subtitle)을 연상시키지만 이미지를 설명하거나 설명하지 않는 그려진 대상이다. 나의 대부분의 그림에서 이 관계는 멈춰 있는 상태의 이미지를 해석하는데 도움을 주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조합되거나 옆으로 치워버려도 되는 것처럼 보여 진다.
    이 자유롭고 비개연적 관계는 사건과 이야기의 결과에 대한 이해를 유동적으로 만든다. 영원히 유보된 상태로 남아 있거나,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이야기를 추가하더라도 비결정적 상태는 지속된다. 아무래도 모든 장면은 결말이거나 모든 장면은 현재이다.			
    ※ 아트맵에 등록된 이미지와 글의 저작권은 각 작가와 필자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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