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전시소개> 봉산문화회관의 기획,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전시공모선정 작가展은 동시대 예술의 낯선 태도에 주목합니다. 올해 전시공모의 주제이기도 한 '헬로우! 1974'는 우리시대 예술가들의 실험정신과 열정에 대한 기억과 공감을 비롯하여 ‘도시’와 ‘공공성’을 주목하는 예술가의 태도 혹은 역할들을 지지하면서, 동시대 예술의 가치 있는 ‘스타성’을 지원하려는 의미입니다. 4면이 유리 벽면으로 구성되어 내부를 들여다보는 관람방식과 도심 속에 위치해있는 장소 특성으로 잘 알려진 아트스페이스「유리상자」는 어느 시간이나 전시를 관람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시민의 예술 향유 기회를 넓히는 데 기여하고,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게는 특별한 창작지원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공공예술지원센터로서 시민과 예술인의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공모에 의해 선정된 참신하고 역량 있는 작가들의 작품 전시를 지속적으로 소개하고자 합니다. 올해 유리상자 전시공모 선정작 첫 번째 전시, 「유리상자-아트스타 2020」Ver.1展은 회화를 전공한 강주리(1982년생)의 설치작업 ‘살아남기 To Survive’입니다. 이 전시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의 생태적 변화들을 주목하고 그 양상을 수집하여 집적하는 행위의 흔적이며, 어쩌면 낯설고 괴기스러워서 살펴보지 않았던 생태 순환계의 변이와 진화의 실상들이 펜 드로잉의 방식으로 포획되고 겹쳐져 기이한 입체로 증식되는 상태에 관한 설계입니다. 작가는 자신이 설정한 ‘살아남기’라는 실체적 해석이 세계의 끊임없는 변화 상태와 어떻게 관계하는지, 또 이들 상황들이 우리의 감수성과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동시대 미술의 영역으로 합류하는지에 대하여 흥미로운 질문을 합니다. 강주리 작가는 4면이 유리벽으로 마감된 천장 높이 5.25m의 전시 공간 내부에 우주나 동굴에 있을법한 생태계를 조성하였습니다. 동굴의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며 자라는 종유석, 아니면 전자 현미경으로 확대한 먼지, 혹은 우주를 떠다니는 작은 유성체를 연상시키는 8개의 크고 작은 입체 덩어리로 이루어진 이 생태계는 수많은 ‘변이와 진화’의 대상과 상황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변화를 위해 한껏 움츠리고 있는 형상입니다. 이는 작가가 그동안 미디어를 접하며 주목해온 자연 생태의 변화와 그 흔적들의 수집과 증식, 또 증식한 개체간의 해체와 집합 등 진행 과정에서의 시간과 그 사태에 관한 시각적 서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가가 오랜 시간동안 펜 드로잉의 짧고 가느다란 선들을 모으고 쌓아 구축한 70여개의 자연 변이와 진화의 실상은 이렇습니다. 눈이 하나뿐인 원숭이, 다리가 여섯 개인 강아지와 양, 다리가 여덟 개인 소, 다리가 다섯 개인 양과 개구리, 머리가 두 개이거나 꼬리가 붙은 거북이, 머리가 두 개인 개와 뱀, 고양이, 병아리, 도마뱀, 다리가 네 개인 오리, 콧구멍이 세 개인 젖소, 발가락이 기형인 이구아나, 머리가 두 개에 눈이 한 개인 돼지, 날개달린 고양이, 혀가 긴 개, 귀가 네 개인 고양이, 얼굴 두 개가 붙은 고양이, 등에 보호용 눈이 그려진 개구리, 알비노 코끼리, 해양오염으로 아가미가 변형된 물고기, 박스에 많은 양을 넣기 위해 만든 네모 오이, 입시 합격을 위한 네모 사과, 발렌타인데이를 위해 만든 하트 귤, 방사능 오염으로 씨 많은 과일과 뒤틀어진 채소들 등등, 이들 개체들은 우리의 삶과 현실 속에서 차이와 구별의 시선으로 발견한 자연 생태 변화의 징표들입니다. 작가는 이 손바닥 만 한 종이 펜 드로잉들을 수백 수천 개씩 복사하고 오리고 붙여서 집합 형태로 공간에 펼쳐놓았습니다. 이게 뭘까요? 예사롭지 않은 소수 대상들의 차이와 구별로 이루어진, 이제껏 본적 없었던 거대하고 기이하며 지속적인 꿈틀거림. 그렇습니다, 그동안 볼 수 없거나 보지 않거나 보지 못했던, ‘살아남기’를 위한 생명체의 변이와 진화가 종유석이나 먼지나 유성체처럼 쉽게 보기 어려운 ‘살아있음’의 상태로 설계된 것입니다. 이러한 작가의 설계 행위는 세상을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살아있음’의 자각과 시간을 들이며 수집하고 포획하는 노동 행위를 떠올리게 하며, ‘살아있음’의 창조를 꿈꾸며 응축하는 미술행위로 읽혀집니다. 한편으로, 유리상자 안에 설치된 변화의 흔적들은 ‘살아남기’ 위해 주변의 상황에 따라서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상태의 상징이고,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자연’의 ‘살아남기’를 상징하며, 미술가로서 작가가 주목하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자연의 일부로서 세계의 ‘변화’ 자체임을 짐작하게 합니다. 작가에게 있어서 변화의 상태에 대한 관심은 인간 중심적인 자기 이해가 아니라, 우리들 현실의 삶을 숙고하고 그 대응 태도를 되돌아볼 수 있게 하려는, 그 속에 예견된 자연의 ‘실체’에 대한 경외심을 공감하여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어떤 변화의 현실을 보이지 않는 내면적 인식으로 번안하려는 이번 유리상자는 변화하는 자연을 주의 깊게 살피고, 그 속에서 예술의 유효성을 추출하려는 작가 스스로의 질문처럼 보입니다. 사실, 이 질문은 변화變化와 균형均衡을 담보하는 자연설계自然設計에 관한 것입니다. 이 자연설계와 만남은 ‘살아남기’라는 작가의 시각적 해석으로서, 모든 사물은 성질과 모양, 상태가 바뀌어 달라지며 변화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사실과 끊임없는 변화와 균형의 순간을 이어 순환한다는 보이지 않는 실체의 운용에 관한 이해와 공유일 것입니다. <작가노트> 변이와 진화, 증식, 집합, 살아남기. 나는 서로 살아남기 위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생태 환경의 변화, 생명체의 변이, 진화에 주목한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하고 드로잉과 혼합적 설치를 통해 우리의 가능성과 존엄성에 대한 이해와 고찰을 요구하고자 한다. 첫 눈의 이끌림을 넘어 시간을 들여 읽다 보면 각종 이유로 유전자 변형된 생태계, 멸종위기의 동식물, 돌연변이, 유기견/묘, 로드킬의 현장 등 다양한 현대 사회 속 생태계 모습과 그 이야기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작업의 바탕이 되는 자연사박물관이나 과학 잡지, 뉴스, 인터넷 속 생태계는 그 시대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보여준다. 그 관계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자 한다. 나는 작업을 통해 교훈이나 반성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오늘날 그 관계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을 늘어놓고자 한다. 드로잉도, 설치도 나의 작업의 시작은 종이와 펜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인 펜으로 그린 짧은 선들의 집합체, 드로잉. 작은 드로잉을 그리고 수십 개를 스캔하여 조작하고, 반복적으로 프린트하고, 오리고, 붙여서 공간에 펼치는 설치 작업. 노동집약적 작업은 곤욕스러운 과정이라기보다는 '창조'를 위한 당연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개체가 모여 또 다른 하나가 되는, 비정형이 정형이 되는, 상징적인 '생명'의 형태이다. 이 작업은 완성체로서의 의미보다는 과정과 완성 후 계속해서 증식할 수 있는 가능성의 기운이 중요하다. 그 과정과 기운을 관람객과 공유할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