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정보
고통은 실존을 경험케 한다. 평소에는 의식되지 않던 손이 칼에 베었을 때 비로소 그 존재가 의식되는 것처럼 말이다. 고통을 논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어떤 사건을 겪었는가가 아니라 실체로 드러난 자신의 존재를 실존으로 느꼈는가에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기다림은 시작된다. 기다림 한 가운데 있는 사람은 전형적인 실존의 곤경에 처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말하고자하는 기다림은 슬픔이 남기고 간 정체된 시간으로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견뎌야 하는 것이 되고, 이성보다 감성의 대상이 되는 기다림이다. 견뎌야 하는 기다림은 유한성을 환기시키는 계기로 작용한다.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유한성을 발견함은, 나의 욕망에 따라 시간과 상황을 원하는 모양대로 다룰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에 있다. 만일 우리가 유한한 존재가 아니라면 기다림은 오직 기호에 따른 선택의 문제가 될 뿐이므로 기다림은 유한의 한계에서만 작동되는 것이다. 이 한계에 이르러서야 우리는 비로소 ‘인간으로서의 삶’에 대한 질문과 ‘영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것과의 관계맺기를 시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