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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서찬석 개인전 <오류를 지나>
기간| 2020.02.19 - 2020.03.13
시간| 12:00 - 18:00
장소| 아트스페이스보안(구 보안여관, 보안1942)/서울
주소| 서울 종로구 효자로 33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20-8409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서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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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골칫덩이 존과 악어와 똥과 예술의 우화>
영광스러운 허무를 기다린다지만 이미 그 순간을 맞이한 예술가에게

오래된 건물
보안여관. 그 이름값은 꽤 하지만 이런 전시장 또 없다. 나무로 골조를 세우고 흙과 지푸라기와 모래 시멘트로 만든 건물 위에 80년 동안 덧댄 엉성한 건축재료들은 곳곳이 뜯겨나가 마지막에 붙여졌을 벽지는 거의 허공에 떠있고 한 세기 동안 모아든 먼지가 굴러다닌다. 건물이 웬만한 작품보다 연륜과 기가 세서 영리한 작가와 기획자들은 작품에 골몰하기보다 연출에 꾀를 내기 바쁘다. 그렇게 되면 결과적으로 공간의 지위만 더 높아지기 쉽다. “어차피 다 스러질 것들이야. 나처럼. 도대체 무슨 영광을 위해서 이런 짓을 하는거니?” 여관이 이렇게 외치는데도 작가들은 그 말을 듣지 못한다. 그래도 사대문 안에 이 정도 기거할 공간이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특히 허무 버무린 블랙코미디를 주로 그려온 서찬석 작가에게 이 공간은 그림 속 내용을 공간을 통해 이중으로 증명할 기회를 주었다.

‘인간 존’
서찬석은 지금까지 모아둔 이야기 보따리를 여관에 풀었다. 이전의 개인전에 비해 덜 수다스럽지만 내용은 더 알차다. 단골 소재인 평범했던 노동자 John의 이야기가 그 첫 번째. 존은 어느 날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던 악어와 맞닥뜨리게 된다. 긴 싸움 끝에 악어를 죽이고 마을의 영웅이 되었지만 팔 하나 다리 하나를 잃고 말았다. 사지가 멀쩡하지 못한 존은 결국 마을의 골칫덩이가 되었고 약과 술에 의존하다가 결국 죽는다. 작가가 마을의 부조리를 알고 있는 유일한 두 존재, 존과 악어 청동상을 함께 모신 날, 마사회 기수의 죽음을 애도하고 시스템 시정을 요구하는 행렬이 있었다.

세련된 무대
이야기를 하려면 무대가 필요하고 작품을 놓으려면 좌대가 필요하다. 그래서 준비했다. 합판으로 만들어 찌꾸색 스테인을 바른 ‘모던’한 좌대와 건축적이고 ‘세련’된 ‘다루끼’ 좌대. 그리고 무지개떡색 보온덮개는 재개발이라는 님을 기다리는 듯한 다소곳한 무대가 된다. 있는 결로도 사라질 것만 같은 두툼한 실크 벽지도 낡은 벽에 도배된다. 조명은 당연히 필수다. 댄 플래빈st의 무심한 듯 시크한 조명은 작품인 듯 조명인 듯 설치되었다. 잠시 머무는 여관이지만 서찬석은 자신의 이야기가 돋보인다면 주저 없이 노동자가 되어 주변 공사를 실시한다. 아버지의 근육을 물려받은 덕분이다. 그리고 엉성한 가짜를 만든다. 성스러운 빛을 받고 있는 청동아기천사상은 고작 플라스틱아기인형에 청동색 물감을 칠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존과 악어상도 결국엔 이야기를 위한 환상술이다. 하지만 이것들은 꽤 번드르르한 유물 혹은 예술 행세를 한다. 믿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춤을 잊은 그대
미장공이었고 타일공이었던 아버지는 새마을올림픽 시절부터 무수히도 많은 건물을 거쳤다. 이 시대의 도시를 짓느라 아버지는 춤추는 근육이 다 풀어져버렸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 승리의 트로피잔에 붉은 술을 달고 오래된 톱니‘고데’를 꽂았다. 특별히 타일로 된 패널에 그것을 받들었다. 하지만 결국 트로피잔을 아버지에게 안겨드릴 수 없을 것이다. 톱니고데는 그 잔에서 뛰쳐나와 재개발 되는 건물에 뛰어 들어가야 할 판이다. 그가 만들었던 모든 것들은 처음엔 겉이 그럴듯해 보였지만 사실은 여관의 속살만큼이나 엉성한 것이다. 아니 엉성하지 않다고 해도 부수고 다시 지어야만 한단다. 찌꾸색이 칠해졌던 모든 합판이 허물어졌다. 또 짓는다고 상황이 더 견고해지지는 않는다. 요새는 새 건물에 사는 합리적이고 세련된 사람들이 티크색 바른 합판을 좋아한다. 아직도 건축 용어는 죄다 일본말이다.

골칫덩이들
작가는 엉덩이에 번트 엄버 색 그림을 품었던 날을 고운 보온덮개에 자세히도 적어놓았다. 작가는 그날 깨달았고 새로 태어났다. “그렇게 배제하고자 했던 골칫덩이 똥은 나였다.” 화장실을 찾아 헤매는 치열한 노력 끝에 그는 포기를 할 수 있게 됐다. 노력이야말로 포기를 가능하게 하고 영광스러운 허무야말로 오류를 끌어안는다. 오류는 계속해서 허무를 낳겠지만 그 반복을 보여주는 일이 작가의 일이다. 존도 밀림을 떠나야만 했던 악어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더라면 상황이 조금 나았을지도 모른다. 골칫덩이 존뿐 아니라 악어도 마을의 일원이니까. ‘무명배우’의 서러운 눈물도 허무를 만나면 곧 마를 것이다. 보따리에는 동물들에 관한 이야기도 잔뜩 있다. 다른 이야기 속 악어인 동물들은 인간과 다르게 무시무시해 보여도 그 자체로 무심해서 이 세상을 들여다볼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비극에도 빠지지 않고 날개도 없이 비교적 가볍게 ‘낙천樂天’으로 오를 수 있는 방법은 별 게 아니라 ‘골칫덩이’ 혹은 나와 다른 것이 이미 내 안 깊숙한 데 있어 구분 지을 수조차 없는 것임을 아는 일이다.

새사람, 버드맨
날갯짓과 비슷한 리듬의 붓질을 수도 없이 하다보면 그도 언젠가 날개를 달 것이다. 다만 그 날개는 그가 만들었던(그렸던) 것과 같은 청동일 것이다. 날 수 있어 보이지만 결코 날 수는 없는, 무거운 날개다. 애초에 진짜 날 수 있는 깃털날개는 없다. 다들 가짜날개에 박수칠 뿐이다. 헐벗고 있는 보안여관도, 딱딱한 허공에 잠시 앉았던 전직 배트맨 ‘버드맨’도, 작가의 ‘드넓은 마음’도 그걸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에이풔용지는 역시나 무용지물이다.(B. 우리)

전시 서문 : 월간미술 에디터 ‘배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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