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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HIBITION
제7회 아마도전시기획상 《어스바운드》
기간| 2020.03.06 - 2020.03.26
시간| 12:00 - 19:00
장소| 아마도예술공간/서울
주소| 서울 용산구 한남동 683-31
휴관| 월요일
관람료| 무료
전화번호| 02-790-1178
사이트| 홈페이지 바로가기
작가|
송상희
염지혜
김화용,이소요,진나래,조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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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정보

			어스바운드-지구, 감염, 사변적 존재들
글. 윤민화

불안할 것이다. 두려울 것이다. 감염병이 돌고, 초미세먼지가 하늘을 뒤덮는다. 방사능 오염수가 유입된 바다, 꺼질 줄 모르는 산불, 얼음 없는 남극은 이제 현실이 되었다. 기후 변화는 기후 위기가 되어 재난이라 불린다. 이 파국의 시대를 누군가는 ‘정상성(Stationarity)의 종말’이라고도 하고, 다른 누군가는 ‘부정성(Negativity)’이라고도 한다. 우리의 일상과 질서를 순식간에 정지시키고 무너뜨리는 알 수 없는 요인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이번 재난은 바이러스의 모습으로 찾아왔다. 마스크를 낀 얼굴들은 스마트폰 너머로 얼른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재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다시 일상을 회복하고, 정상성을 탈환하며, 긍정성의 신화를 되새겨야 한다고 채근한다.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해야 하며, 국경을 봉쇄하고, 철저히 방역해야 한다는 외침이 댓글 창에 흘러넘친다.
미안하지만, 이 재난의 시작에는 인간 중심적 육식 자본주의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 세계는 인간에 의해 자행된 수많은 죽음 위에 쌓은 모래성과 같다. 인간은 인간종이 아닌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죽여 왔다. 다시 말하면 인간종이 아닌 비인간은 생명으로 감각조차 하지 않아왔다. 인간중심주의적 세계관은 인간 외 모든 것을 자원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근대 이후 인간은 언제나 플러스를 향해 달려왔다. 근대화, 발전주의, 개척으로의 도약은 한결같이 더 나은 세상을 향한 희망찬 발걸음이었다. 진보라는 무지개를 따라 우리는 전진을 거듭해왔다. 그러다 인간은 갑자기 발이 묶였다. 더는 플러스로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은 재난이라는 이름이 되었고, 극복해야 할 과제처럼 받아들여진 것이다. 바이러스는 방역해야 할 재난에 불과할까. 지난 수십여 년간 창궐한 감염병의 대부분은 여러 종을 오가는 형태로 등장했다. 인간이 비인간을 자원화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는 한,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는 끝없이 출몰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전시의 표제 《어스바운드》는 과거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를 비판하고,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제안하기 위해 고안된 용어에서 비롯되었다. 프랑스 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는 저서 『가이아를 마주하며(Facing Gaia: Eight Lectures on the New Climatic Regime, 2017)』에서 근대성에 저항하는 인간형으로서 “The earth-bound (지구에 묶인 자)”를 제안한 바 있다. ‘Earthbound’는 일반적으로 ‘물리적으로 지구에 묶여 있는 상태’를 일컫는다. 하지만 라투르는 이 용어를 통해 인간이 향해야 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였다. 플러스를 향한 진보적 인간형을 파기하고, 재난의 상황을 마이너스로만 보지 않는, 지구에 묶인 수많은 존재와 동화하는 관계 지향적인 존재의 다른 말이 바로 《어스바운드》인 것이다. 이 전시는 김화용•이소요•진나래, 송상희, 염지혜, 조현아와 함께 예술의 언어로 인간중심주의에 도전하고, 인간적인 행위로서 시각적 재현과 미적 탐구를 활용해온 지난 미술의 역사를 성찰하고자 기획되었다.
송상희는 인간의 형상을 한 생물체 아메바 ‘코오라’와 공룡 ‘플라시오사우르스’ 그리고 고래의 형상을 한 ‘리바이어던’ 사이의 사랑을 통해 인간 존재의 비인간적 기원을 환기한다. 나아가 지구 또한 하나의 생명체로 인식하면서, 석유 자원을 둘러싼 전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를 종이 다른 생명들끼리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로 풀어냈다.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 1944-)는 「반려종 선언-개, 사람 그리고 소중한 타자성」에서 다른 종과의 사랑을 종의 경계를 넘어선 헌신적인 사랑으로 묘사하며, 이들 두 세계의 타자성을 서로 민감하게 배려하는 “발달성 감염”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이 글에서 동물로 치환되는 다른 종과의 사랑은 인간에게 악영향을 끼치는 주변을 개선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의 삶의 질만을 충족시키는 인간중심주의적 관계와 거리를 둔다. 인간종이 아닌 다른 생명을 자원으로 삼는 현재의 육식 자본주의는 이미 도덕성의 임계를 넘어선지 오래다. 송상희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공격적인 지배를 합리화하는데 필요한 논리를 제공해온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을 따뜻하고 섬세한 연필 드로잉으로 그려냈다. 유사한 맥락에서 염지혜는 남극에서 여전히 과학에 대한 근대주의적 맹신에 근거한 인간 활동이 자행되는 상황을 관찰한다. 그곳에서 마주친 물개와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자문하는 작가는 우리 인간의 사유로는 결코 동물이라는 타자에게 닿을 수 없는 한계를 곱씹는다.
이제는 인간에 의해 발생한 환경적 재난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할 영웅 또한 인간이라는 근대적인 생각은 망상 혹은 정치적 모략으로만 여겨질 뿐이다. 당장 우리 눈앞에 벌어진 재난의 실체는 더는 인간의 힘으로는 명확히 알아차리기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그 수치를 확인하는 초미세먼지의 입자는 너무나도 작은 나머지 이들은 우리 몸에 쉽게 흡수되는데, 정확히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아낼 수조차 없다. 대기 중에 초미세먼지가 있다면, 바다에는 해양 생물을 위협하는 미세 플라스틱이 있다. 사람의 눈으로 식별조차 불가능한 이 플라스틱 입자들은 이미 해양 생태계에 스며들었고, 매일 우리 식탁에는 미세 플라스틱에 오염된 물고기들이 올라온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로 우리는 꾸준히 방사능에 피폭되고 있지만, 이것 또한 어떤 수준인지 체감하기 어렵다. 영국 출신 철학자 티모시 모턴(Timothy Morton, 1968-)은 이렇게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미세한 입자들을 ‘하이퍼오브젝트(hyperobject)’라고 부른다. 우리 시대의 재난은 이러한 하이퍼오브젝트들에 의한 오염으로부터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재난을 인간이 통제하고, 극복한다는 발상은 폐기되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플러스를 향하던, 이 세계의 주체이고자 했던, 근대적 인간이 아니다. 인간은 하이퍼오브젝트에 오염된 그저 여러 객체 중의 하나로서 지구에 묶인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쳐야 하는 입장에 놓인 것이다.
염지혜의 〈커런트 레이어즈〉는 동시대 문명의 층을 지구에 관한 연대기적 연구와 플라스틱이라는 하이퍼오브젝트로 다룬다. 작가가 묘사하는 지구는 단단하거나 혹은 무른 질감의 객체이다. 또한 탄소 연료에 생존을 맡긴 인간이 자연에 일방적으로 끼친 부산물로서 ‘플라스틱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는 인류가 대면하고 있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위협이 사실 인류 자신이 구축하고 무너뜨려온 결과로부터 기인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동시대의 증거물이다. 작가가 작품에서 지구와 플라스틱을 대하는 태도는, 인간적 속성으로 환원되지 않고 오히려 저항하는 기이한 객체를 대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사변적이다. 인간중심적 주체-객체 이분법에 도전하며 최근에 급부상한 ‘사변적 전회(Speculative Turn)’를 동력 삼아 인간과 비인간 존재들의 관계를 고민하는 것으로 읽힌다.
조현아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하여 당시 수많은 예술가에 의해 그려진 기이한 무늬의 튤립에 주목하였다. 후에 현미경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 아름다운 튤립의 기이한 모습은 다름 아닌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예술가들은 마치 살갗을 찢고 터져 나오는 듯한 무늬를 가진 감염된 튤립들에 매혹되어 정성껏 작품으로 남겼다. 결코 보존하거나 소유할 수 없는 감염된 튤립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담은 정물화들은 예술 행위를 다분히 인간적인 시선의 산물로서 재고하게 한다.
결국 이 전시는 인간 활동의 산물인 현대 예술이 인간 이외의 존재들을 어떻게 재현해 왔으며, 어떻게 작품 안에서 관계 맺는지에 관한 고찰로 이어진다. 김화용•이소요•진나래는 20세기 이후 국내외에서 발표된 적 있는 예술 창작물 중 살아 있는 비인간 생물을 도입한 사례에 관한 공부를 진행한 뒤, 이번 전시에서 그 첫 번째 과정이자 결과물을 텍스트와 시각 자료로 선보인다. 시각 예술은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감상의 대상, 스펙터클, 혹은 구경거리의 자리에 가져다 놓는 인간 활동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세 작가는 생명을 지닌 (혹은 한때 지녔던) 비인간 생물이 작품 안으로 들어올 때 드러나는 예술의 시각 중심적이며 인간 중심적 특성들을 각자의 사례 분석을 통해 탐구한다. 이로써 이 전시는 시각 예술을 비판적 시각에서 돌아보고, 이 대감염의 시기에 인간 또한 다른 하이퍼오브젝트에게 이미 물들고 오염되고 감염된 하이브리드로서 ‘어스바운드’한 존재임을 참여 작가들의 예술 언어로서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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